끼어들기

by 독나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엇인 척 무리에 끼어든다. 바로 그다. 상대들은 대단한 놈인가 보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이력이 우선 그를 다시 보게 한다. 실은 그의 이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다. 그가 내세우려 이력을 떠들어댄 것도 아니다. 그를 그들에게 소개한 친구들의 입을 통한 것이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스스로 그를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진실로 진실로 그는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일까? 그것 또한 모를 일이다.


실은 그는 자신이 여러 면에서 그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살아오면서 남들이 말하는 그 덕이란 것을 쌓아오지 못해 주위가 항상 허하게 살고 있다. 사람의 인격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지금 와서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이곳은 어느 정도는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 삶의 정의가 세워져 있는 놈들이라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곳으로 들어선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부담이 없다. 이제 절대 이 이상 그를 드러내지 않겠다. 그는 다짐한다. 그러한 방법이 어느 무리에든 적응하기가 좋다. 이제는 지나치게 그를 보여주며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다가가는 행동을 자제해 온 지 꽤 되었다. 누군가에 대해 기대하는 것을 그만둔 지 오래다. 살아오는 동안 상처를 받은 이런저런 일 탓이다.


리더는 영어가 베테랑급이다. 그는 그녀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이 단단하고 오래된 무리에 끼어든 것이다. 이놈의 영어란 것이 평생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를 애먹인다. 앞으로의 세대에는 번역기가 있어 언어를 굳이 배울 필요 없다는 말들이 있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 맞대고 대화가 가능한 것은 무엇도 따라올 수 없다. 그가 앞으로 미국인과 말할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하다가도 미국에 아이들 보러 홀로 가게 될 때 가슴 두근거릴 일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점점 한국어로 대화하는 게 어려워지는 미국 손자를 생각해도 영어 회화는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 일이 생각난다. 미국 아이들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무엇이 고장 나서 사람을 불렀는가 보다. 처음에는 누가 왔나 그도 아이들과 같이 문 앞에 나갔다. 체격이 장대 같은 두 미국인이 신발 신은 채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오는데 두려웠고, 영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아들이 나서서 응대하는데 그는 저쪽 구석방에 들어가서 그들이 나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완전 바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은 어느 곳에 어느 무리에 있는가 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미국이라는 곳에 데려다 놓으니 완전 바보가 된 것이다.


그래 오늘부터 배우는 거다. 무엇이든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도가 터 있다. 단어도 새삼스럽고 발음도 새삼스럽다.

단단히 뭉쳐진 그룹에 끼어든다. 단단한 것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서먹하고 어려운 일이다.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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