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파편들

by 독나리

창 밖에서 쏟아져 반짝이는 하얀빛이 까마득한 날들을 소환한다.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깨지고야 마는 유리로 된 실험도구들. 우리는 그 기구들을 깨뜨릴까 봐 집중하곤 했다. 커튼을 젖힌 실험실은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빛이 사방으로 흩어져 벽 여기저기가 어른어른했다. 그때는 나도 눈부신 시절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실험실은 교수님 두 분이 같이 교수실로도 사용하셨고 그중 한 교수님의 논문을 위한 실험은 그 교수님 밑에 있는 내 담당이었다.


실험실은 많이 넓었고, 각종 유리기구들로 비커, 시험관, 플라스크, 피펫, 깔때기, 실린더, 알코올램프 등 비교적 간단한 도구들로부터, 그 외에도 눈으로 보기에도 복잡한 분리깔때기, 유자관 등등의 기구들이 선반 위아래 실험대에 꽉 차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 좋은 날 실험실 커튼을 젖히면 빛과 만난 유리들의 산란으로 우리들의 눈은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눈이 절로 감긴다. 날이 서늘한 이른 아침 서리가 풀 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채 빛을 만나 조그만 다이아몬드 같이 반짝이는 그런 황홀함과는 또 다른 압도적인 번쩍임이다.


그 실험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대학동창인 친구와 내가 모시는 교수님의 위엄은 대단했다. 다른 교수님들도 어려워하시는 분이셨다. 그분 지도하에 나는 실험을 진행하며 실험대에 앉아 길게 위로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리 도구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조그만 볼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기록하고 실험 후엔 그 도구들을 깨끗이 세척해서 다시 조립해 놓는 것이 나의 의무였다. 머리를 많이 쓸 필요도 없는 간단한 일의 반복이었다.


하루하루는 항상 너무 바쁘게 돌아갔고 그날도 아침부터 바빴다. 나는 실험도구들을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세척해서 실험대 위 흰 수건 위에 건조하기 위해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같은 실험실에 있는 그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그녀는 아주 착하다. 한마디로 티 없이 맑고 천진난만했다. 넉넉한 집안의 막내. 이 한 마디로 대충 설명이 되겠다. 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급하고 조심성이 부족한 면도 있긴 했다. 또한 아주 착하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는 사람을 질리게 하거나 피해를 주기도 한다.


점심시간 직후 일이 벌어졌다. 친구가 내가 세척해서 건조하기 위해 수건 위에 올려놓은 작은 유리 기구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수건을 확 들어 올린 것이다. 흰 수건 위 투명한 조그만 유리기구들이 내는 쨍그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미 그것들은 실험실 바닥에 박살이 난 채 널려 있었다. 그 당시는 세밀한 측정을 요하는 도구들은 대부분들 수입품을 사용했다. 지금이야 주문하면 곧 받을 수 있겠으나 그때는 해외로 주문해서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빨라도 보름 이상은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교수님은 하루빨리 실험을 마치셔야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버린 거였다.


나와 친구는 초주검이 되었다. 미안해서 쩔쩔매는 그 친구에게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미리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하는 내 책임도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친구는 자기가 그랬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리겠다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때의 그 심정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도 또 나에게도 온통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심하게 자책하기 시작했다. 멀리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와 있게 된 것까지 원망하고 있었다. 교수님을 어떻게 뵐 것인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싸아 해지다 두근거리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우왕좌왕 헤맸다. 친구는 계속 미안하다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릴 순 없었다. 그 후 교수님의 어처구니없어하시던 그 표정, 한동안 중단되어 버린 중요한 실험. 교수님과의 숨 막히는 과정이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실험결과는 잘 나오지 않고 시간만 계속 흐르니 고심을 하며 나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아들의 말을 듣고는 그때 당시 교수님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실감했다. 그때 교수님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셨을까 싶다. 실험결과란 어떤 상황에서는 시간이 곧 생명인데. 돌이켜보면 교수님은 그렇게 크게 꾸중하셨던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 교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그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유리기구들의 눈부신 반짝임과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들, 하얀 수건, 친구가 수건을 휙 잡아 빼던 그 손의 움직임이 자꾸 아른 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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