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 Cantata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140]
그날은 유난히도 고요했다.
세상이 마치 숨을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눈은 소리 없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창문 너머의 풍경은 말없이 하얗게 펼쳐졌고, 모든 것이 잠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자연스레 바흐의 칸타타를 틀었다. BWV 140.
익숙하면서도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곡.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고요는 조심스레 깨어났다.
“깨어나라, 부르는 소리 있네.”
처음 울리는 코랄의 가사가 가슴을 조용히 두드렸다.
누군가 내 안의 오랜 감정을 깨우는 듯했다.
차가운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감정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다급한 외침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깊은 손짓 같았다.
바흐의 선율은 말로 할 수 없는 마음의 미세한 떨림을 정확히 짚어냈다.
말 대신 음악이 마음의 결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곡에는 화려한 변화나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었다.
대신 반복되는 선율과 조심스러운 화성이 쌓여,
마치 기도를 닮은 구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단순함 속에서 느껴지는 정직함과 따뜻함.
추운 겨울날 누군가의 온기 어린 눈빛을 마주한 듯한 감각이었다.
어쩌면 음악은, 처음 사랑을 깨달았던 순간의 공기와도 닮아 있었다.
서툴고 조심스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감정.
그때였다. 이유 없는 눈물이 불쑥 고였다.
바깥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내 안은 금이 간 얼음처럼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무언가를 잃고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온 나에게,
음악이 조용히 말 걸어온 것만 같았다.
그 감정은 고백처럼 다가왔고, 떨림처럼 내 몸을 통과해 지나갔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말없이 그때를 떠올렸다.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
천천히 스며들던 마음,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의 흐름.
그 모든 것이 바흐의 음악처럼 조용히 반복되고 있었다.
칸타타의 리듬은 내게 말을 건네기보다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펼쳐 보이게 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감정들.
말보다 더 정확한 것들.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예술이다.
한 음이 울리고,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울리고, 또 사라진다.
들리는 동안에만 살아 있고,
사라진 후에는 오직 여운만이 남는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미 지나간 어떤 마음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날의 온도, 나뭇가지 위에 가만히 내려앉던 눈송이,
따뜻한 찻잔을 감싸던 두 손.
바흐의 음악은 나에게 시간과 감정을 함께 불러오는 문이 된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곡은 원래 교회력에 따라, 대림절 전 주일에 연주되던 칸타타였다고 한다.
깨어남을 노래하는 찬송.
그래서였을까.
내게 이 음악은 단지 계절의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외부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내부의 마음은 조용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고요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것들.
그 첫 번째는, 마음이었다.
겨울은 모든 것이 멈춘 계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칸타타를 듣는 순간,
나는 그 안에서 가장 깊고 순수한 시작을 마주했다.
하얀 세상 속에서 깨어나는 감정,
처음이지만 어쩐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마음.
말해지지 않은 고백 같은 것.
눈은 계속 내리고, 음악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나 내 안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
하얀 배경 위에 반짝이던 감정 하나와,
눈빛처럼 고요히 떠 있던 기억의 조각 둘.
말없이 내 마음 어딘가에, 작은 별을 그리듯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