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 6 Piano Pieces, Op.118, No.2]
창밖에선 눈이 느리게 내리고 있었다.
가끔은 공중에서 멈춘 듯 보이다가, 이내 가볍게 땅으로 내려앉았다.
벽난로의 불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고, 오래된 스피커에서 브람스의 간주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손을 난로 쪽으로 내밀었다.
네가 맞은편에서 찻잔을 감싸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익숙하게 느껴졌다.
음악은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방 안을 채웠다.
건반 위에서 흐르는 선율은 마치 오래된 편지를 펼치는 듯 조심스러웠다.
브람스가 말년에 남긴 이 곡은 화려함보다 따뜻한 속삭임에 가까웠다.
왼손의 잔잔한 화음은 불씨처럼 숨겨진 온기를 지키고 있었고,
오른손의 선율은 그 위를 가만히 걸었다.
불빛이 네 뺨을 스치고, 그 위로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 변화를 눈으로 좇았다.
우리 사이에는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짧은 거리조차 쉽게 줄이지 못했다.
혹시라도 말이 그 온기를 깨뜨릴까 봐, 우리는 조용히 머물렀다.
그 침묵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지켜주는 얇은 담요 같았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찻잔의 표면을 살짝 만졌다.
따뜻함이 손끝을 지나 팔까지 번졌다.
그 감각은 음악과 뒤섞여, 느린 템포 속에서 숨 고르듯 흘렀다.
마치 시간마저 악보의 쉼표처럼 잠시 멈춰 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네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짧게 마주친 눈빛 속에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화음 속에 숨어 있는 은근한 장조의 빛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이 오래 남았다.
다시 눈을 돌린 너의 옆모습이 벽난로 불빛에 물들어 있었다.
선율은 어느새 낮고 부드러운 음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방 안의 공기와 너의 숨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찻잔의 김이 서서히 사라지고, 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이 조심스러운 거리를 마음속에 새겼다.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만큼이 좋았다.
눈이 멈출 기미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