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 넘어 환상

by 윤 한

[Schubert: Fantasie in F minor D.940]


창밖의 하늘은 흐렸고,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빛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우리는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네 손이 건반 위에서 가볍게 움직이자, 첫 선율이 흘렀다.


곧 다른 손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두 개의 선율이 서로를 찾듯 얽히고,

때로는 멀어졌다가 다시 만났다.


함께 걷는 두 사람의 발자국 같았다.

한쪽이 조금 빨라지면 다른 쪽이 맞춰 따라가고,


가끔은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른 뒤 다시 발을 맞췄다.


그 불규칙한 걸음 속에서 나는 묘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평생의 친구를 위해 썼다고 한다.


네 손을 위한 연주곡이지만, 마치 대화에 가까웠다.

질문처럼 건네진 구절이 답장처럼 되돌아왔고,


때로는 서로의 말을 덮어버리듯 힘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다 또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돌아오는,


그 변화를 나는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들었다.


피아노 뚜껑 위에는 작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이 네 손등을 따라가며 미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음악과 그림자가 한 호흡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중간에 선율이 잠시 가라앉았다.


마치 긴 대화를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같았다.


나는 그때 네 옆모습을 봤다.

집중한 표정 속에 숨겨진, 아주 작은 미소를.


그 미소는 한 박자 늦게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곡은 곧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음이 높아지고, 건반을 치는 손의 움직임이 커졌다.


그때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의 고요가 거짓말처럼 멀어지고,


마치 눈밭 위를 달려가는 듯한 숨결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부분에서 두 선율은 다시 가까워졌다.

처음보다 더 단단하게 얽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 소리가 방 안에 오래 남았다.


나는 피아노 뚜껑 위에 번진 따뜻한 빛과,

그 빛 속에서 움직이던 너의 손을 기억하려 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는 비어 있지 않았다.


아직도 두 선율이 내 안 어딘가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멀어졌다가도 다시 만나는,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