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샤콘느

by 윤 한

[Bach/Busoni – Partita for Violin Solo No. 2 in D minor, BWV 1004 V. Chaconne]


피아노의 저음이 천천히 떨어졌다.

반복되는 화음은 빗줄기처럼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오래 묻어둔 말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봄비는 꽃을 피우지만, 내게는 후회를 키우는 물이었다.


변주처럼, 이 감정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흐가 이 곡을, 사랑하던 아내를 떠나보낸 뒤에 썼다는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선율 속엔 억눌린 울음과도 같은 고요한 슬픔이 있었다.
부조니의 편곡은 그 슬픔에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음은 땅속 깊이 스며드는 물처럼 무겁게 울렸고,
오른손의 선율은 흩날리는 빗방울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길게 내려앉았다.
간헐적으로 바람이 불면, 빗물은 창문 위를 흘러내리다 물결처럼 퍼졌다.
그 흐름은 음악의 변주와 닮아 있었다.
한 번 부드럽게 풀렸다가, 이내 단단하게 조여 오는 흐름.
그 안에서 나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보았다.


너와의 날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히 쌓이고, 다시 흩어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 단순함 속에 오래 머물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믿음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샤콘느의 후반부가 다가오자,
선율은 잠시 밝아지는 듯했으나, 그 빛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마치 빗줄기 사이로 스친 햇빛처럼, 곧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남았다.
음악이 끝나고, 방 안에는 빗소리만 남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 한쪽을 서서히 적셨다.
봄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아무 대답도 기다리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