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scu: Impressions d’enfance, Op. 28]
바이올린이 아주 가느다란 숨으로 시작했다.
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방 안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선율은 부드럽지만, 어쩐지 금방 사라질 것 같았다.
따뜻하게 다가왔다가도 곧 식어버리는 온도.
그 변화가 어째서인지 편안했다.
창밖에서는 꽃잎이 바람에 실려 흩날렸다.
나는 그 움직임을 오래 바라봤다.
꽃잎이 바람을 따라가는 건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필연이 슬픈지, 아름다운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선율이 조금 높아졌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그 안에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내가 붙잡으려 애썼던 날들의 감정처럼, 손을 뻗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사라짐마저도 나는 미워하지 못했다.
나는 네가 웃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웃음은 나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웃는 행위 자체를 즐겼던 것일까.
문득,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고 있다는 상태를 사랑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질문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음악 속에 묻혀 흘러갔다.
바이올린이 다시 낮게 내려왔다.
음과 음 사이에 남은 침묵은 빛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 고요는 이별 직후의 공기처럼 차갑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감싸는 담요 같았다.
나는 그 안에서 묘한 안도를 느꼈다.
마치 놓는 것이 곧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처럼.
잠시 구름이 햇빛을 가렸다.
방 안이 조금 서늘해졌지만,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오히려 가벼웠다.
그 바람 속에는 우리가 함께 있었던 날들의 무게가, 이상하게도 덜어져 있었다.
슬픔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옆에 작게 피어난 자유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바이올린은 아주 조심스럽게 끝을 향해 걸어갔다.
남아 있는 음들은 붙잡으려는 힘 대신, 보내는 힘으로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사랑의 끝이 꼭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끔은 그 끝에서 비로소 사랑의 형태가 완성되기도 한다는 것을.
음악이 멈추고, 방 안에는 봄의 냄새만이 남았다.
창밖에서는 꽃 한 송이가 빛 속에서 활짝 폈다.
봄은 그렇게, 한 손에는 꽃을 쥐고,
다른 손에는 이별을 쥔 채 찾아왔었다.
만개한 꽃을 보고 나는 알았다.
사랑은 지나가지만, 사랑했던 행위의 온도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온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