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

앙코르 시리즈

by 윤 한

[Holst: In The Bleak Midwinter]


수많은 얼굴과 이야기들이

아무 말 없이 오늘을 지나간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하고,

서로의 사정을 끝까지 들여다볼 수 없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마음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있고,

같은 하루를 살아도 그 하루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축복 속에서 오늘을 마무리하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품은 채

조용히 하루를 견뎌낸다.

웃음 뒤에 숨겨둔 피로도 있고,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생각도 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하루를

너무 쉽게 짐작한다.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아무 말이 없다는 이유로

그 마음까지 평온하리라 믿어버린다.

하지만 각자의 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오고,

각자의 침묵 속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오늘이라는 하루는

그렇게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채

같은 시간 위를 흘러간다.

같은 밤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마음으로

같은 밤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고

믿고 싶어진다.


특별한 말이 오가지 않아도,

화려한 장면이 없어도

오늘만큼은

서로가 같은 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만큼은

그 모든 삶들이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따뜻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축복이

다른 누군가의 버팀이 될 수 있고,

말하지 않은 마음들이

조용히 닿을 수 있기를.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반드시 기쁨만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기쁘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그저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밤이기를.


화려하지만 조용하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끝까지 알지 못하더라도

잠시 같은 방향으로

숨을 고를 수 있는 밤이기를.


진심을 담아,

이 밤이 당신에게

작은 숨 한 번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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