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시작
2022년 초 주식투자로 1억 원의 자산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던 나는 꽤나 기세 등등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건방졌던 것 같기도 하다.
20대에 주식시장에서 큰 성과를 이룬 나는 안전자산으로 자금을 재분배하려 했다. 변동성을 줄임으로써 장기투자를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시드머니 규모도 커져서 부동산 투자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재테크 강연에서 우리나라 부자들의 자산 비중이 부동산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는 통계도 나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주식투자 실력을 높였을 때처럼 부동산 관련 서적, 유튜브 영상을 출퇴근 길에 틈틈이 봤다. 퇴근 후에는 물론이고 주말에도 오프라인 강의에 참석했다.
그러던 중 욕심과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나의 머릿속에 들어온 문구다.
큰 집으로 시작하면 투자 난이도가 쉽다.
자만심은 접어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야 더 간절하게 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식투자로 모은 돈의 반절은 남겨 두고 소자본 투자유형인 경매나 분양권 투자를 먼저 공부했다. 그러나 조금 알아봤을 뿐인데 겁부터 났다. 경매투자는 관련 법도 철저히 알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모르고 투자하다간 타인과 법적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많았다.
주식투자 초보시절 나는 철저한 분석을 기반으로 리스크에 맞서는 승부사 스타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한번 성과를 이루고 나니 잃는 것이 무서워졌다. 마음도 편하고 돈도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머리 아픈 경매 투자를 건너뛰고 나의 욕구에 부합하는 아파트 투자로 시작하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초심자의 노력을 반복하기 싫어 다시 주식투자로 눈을 돌렸다. 내가 본래 하던 분야에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시드머니를 빠르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집인 아파트 투자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내가 알아본 안정적인 투자처는 1억 원으로는 택도 없었다. 최소 1억 5천 정도의 자본이 필요했기에 나는 올해 목표 수익을 50%로 정했다. 지난해 500% 수익을 기록했으니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21년 말~ 2022년 초 나의 투자자산은 1억 원을 제대로 넘기질 못했다. 경매 투자를 포기하면서 도전한 것인데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욕심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자 또 다른 말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나고, 나는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투자원칙을 바꿨다. 투자원칙을 바꾸지 않아서 1 억 원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올해 자산시장의 가장 큰 이슈 키워드는 '인플레이션'이다. 주식시장은 은행의 금리인상폭을 알 수 있는 CPI(소비자 물가 지수) 발표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한 긴축정책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긴 했다. 그러나 나는 판단기준을 나에게 유리한 과거에 뒀다. 과거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장세 때는 CPI가 높게 나오면 발표 당일에만 주가가 하락했다. 다음날 CPI가 오른 이유를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내려간 만큼 바로 반등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장세가 좋으니 긍정심리가 만연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CPI 발표 3일 전 절대 주식을 팔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어기고 보유 자산의 절반을 매도했다.
그리고 CPI 발표 당일 내 예상처럼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식 매도로 마련했던 현금을 모두 위험자산에 배팅했다.
그리고 다음날 장 초반 예상처럼 주식이 반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예상이 주식시장에 통하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분명 반등하는 것을 확인하고 잠들었는데 이때까지 겪어본 패턴과 다르게 시장이 급락한 것이다.
위험자산에 비중이 높아진 나의 계좌는 하룻밤 사이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면 성공하지 못하는 법. 나의 판단을 믿고 3개월간 포지션을 유지했다.
그 결과 1달 만에 계좌가 반토막 났다. 처음 겪어보는 위기에 식은땀이 났다.
주식시장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변동성에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나는 욕심에 지배돼서 원칙도 어기고 시장을 나 좋을 대로 해석했다.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개미가 돈을 벌고 싶다면 주식을 절대 팔지 말고 장기 투자하라는 말도 있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 주식을 사랑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공부했는데 어떻게 안 팔고 버틸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은 장기투자자가 아닌, 트레이더들에게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는 주식을 팔지 않을 근거를 만들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랬더니 그 기업의 수익성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전하는 스토리에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감정을 다른 이들도 느끼는지 테슬람이라는 팬덤 문화까지 형성될 정도다.
내방 벽면에 붙어있는 사진이다. 내가 정한 기업은 테슬라다. 종목을 깊이 분석해보니 나의 사상을 대변하는 일을 폭발적인 혁신으로 현실화하는 기업이다. 그들이 만드는 세계 1등 수준의 전기차는 얼리어답터와 테슬라의 브랜드 스토리를 지지한다는 정체성까지 투영한다. 결국 나의 드림카는 테슬라가 되었고 꿈을 적어둔 벽면엔 밸류에이션식과 테슬라 사진으로 가득하다.
시장을 예상하려던 나의 전략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내가 공부한 자산에 대한 확신만은 꺾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알아버려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미련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돼버렸다. 나는 내가 결정한 기업이 좋았다. 덕분에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는 투자를 지속하는 나 자신이 좋았다.
다음은 참 괜찮은 태도라는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터뷰 내용이다.
카누 국가대표 이순자 선수는 푹 잠에 든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에 매일 밤을 지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지도 않고 매일 훈련을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보고 질문했다.
“그렇게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픈데도 카누가 좋으세요?”
“네. 제가 카누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그 고통까지도 행복의 일부분이라고 여겨요.”
나의 철학을 실현하고 성과까지 볼 수 있는 '투자'는 분명 즐거웠다. 그런데 가격이 내려간다 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투자가 싫어진다면, 내가 선정한 기업과 나의 투자방식을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복싱을 하다가 주먹에 상처가 나거나 발에 물집이 잡혀도 즐거움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하락의 과정도 내가 좋아하는 투자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다시 4개월간 투자에 임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