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는 어디로 가나?
철학자는 고양이를 키운다. 사르트르도 그랬고 데리다도 그랬으며, 루푸스는 고양이 철학자로 유명하다. 물론 실제 철학자가 이 제목을 본다면 기함을 할 것이다. 명백히 틀린 명제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철학자로서, 고양이는 그야말로 알맞은 단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영 고양이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1 - 철학과는 어디로 가나? 일단 저는 집사입니다.
대학 때 어쩌다 철학과로 흘러 들어갔다. 서론 본론을 다 뛰어넘어서 결론
: 대부분의 '지식'이랄 건 다 잊어버렸다.
전공을 살려서 일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많은 위안이 될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나는 어쩌다 철학과에 흘러들어 가서 다시 한번 시각디자인 대학원에 도전했다가 결이 맞지 않아 스스로 뛰쳐나갔다. 그 뒤에 또 어쩌다 집사가 되었다.
동물과 사는 건 신기한 경험이다. 특히 나처럼 어쩌다 고양이를 마주한 경우는 더욱이.
집사로서 맞지 않는 신념을 밝히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원래 고슴도치였다. 고슴도치, 다람쥐 등 조그맣고 콩알을 닮은 눈으로 오도도 달려가는 동물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양이의 매력은 눈이라며, 인스타툰 캐릭터를 만들 때도 대표적으로 쓰이는 콩알눈을 멀리 하고 있다.
떠다닐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운 털,
세모난 입,
행성을 닮은 눈동자,
깊은 아이라인,
살랑거리는 꼬리.
분명 고양이에 대해 작은 호감만 갖고 있던 나는, 같이 살게 된 순간 고양이의 모든 걸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체 하나를 인지하고 나면 우리의 인식 상태에 큰 변화를 준다 했던가. 내가 손수 키운 소나 닭이 있다면 그 아이를 먹는 건 끔찍한 행위가 될 터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소와 닭을 먹는 건 상관없을지라도. 너무나 위선적이지만 사람은 그렇게도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름을 부르고, 밥을 준다. 가끔 다가와 내 옆자리에도 앉는다. 쓰다듬은 털이 손가락 사이에 부드럽게 감긴다. 이 모든 상호작용에 내 인식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장 사랑스러워하던 것이 크게 뒤바뀔 정도의 진동이다.
2 - 철학과는 어디로 가나? 저는 그림을 그립니다.
예술과 철학의 조합이라니!
내가 지원했던 대학원에 모두 붙은 이유는 내 전공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특히 학술적인 부분을 다루는 교수님들께 내 전공은 어딜 가나 인기였다.
우스갯소리로 엄마께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지나온 에피소드를 풀면 분명 인기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특정지어질 만큼 내 이야기를 하긴 두려우니 그건 그냥 우스갯소리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그냥 그림에 치중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철학을 했던 사람이 커다란 진동을 느꼈다.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내 사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달라졌다. 철학인으로서는 줄줄 새어 나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하게도 그것이 그림에 훤히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은 그냥 고양이를 그리고
고양이를 그리다가,
둘째가 생긴 이후로 인스타툰으로 넘어갔다.
그림 한 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잔뜩이었고, 하고 싶은 말도 잔뜩이었다.
그러나 인스타툰의 특성상 많은 줄글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 내가 이 아이들로부터 어떤 변화를 겪는지, 또 다른 삶이 어떤 의미인지, 거기에 함께 집사 생활 중인 친구들의 이야기까지도.
3 - 철학과는 어디로 가나? 글을 씁니다.
결국엔 글이다. 대학원에서도 글과 그림을 함께 다루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글로 표현해야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그림만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물론 철학과에서 쓰던 글과는 아주 많이 다른 글이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 아무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온전히 나의 생각만을 담은 글.
그러면 철학과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휴학을 포함해 4년 넘게 다닌 대학에서 내가 가장 마음 깊이 새기는 말은, 철학은 배우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수많은 철학자의 생각을 배워서 내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것. 그래서 결국 앵무새처럼 그들의 말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내 시각으로 계속 세상을 탐구하는 것. 스스로 모든 것에 물음표를 붙여 내 대답을 써 내려가는 것.
그러니 내 글에 철학자가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우주를 내 철학으로 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테니까.
거창하게 우주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집사로서의 얘기 말고도 많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독립해 살고 있고, 그야말로 어쩌다 집사가 됐으며, 어쩌다 둘째까지 들이게 되었다. 내 전공과 하는 일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듯이,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은 삶이다.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철학자,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 많은 이에게 닿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