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은 고양이를 키운다

친구 셋과 고양이 둘이 삽니다

by 도우




다섯 식구는 보기 드물어졌다. 친구끼리 사는 집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드물다. 같이 사는 친구가 셋이라면 더 드물 것이고, 같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그 수는 더 줄어들고, 반려동물 수가 둘이나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게 현재 우리의 식구다. 나이가 다른 친구 세 명과 고양이 두 마리.



1. 친구 셋이 삽니다.


특별한 연은 왜 이렇게 어딘가에 계속 말하고 싶을까. 집사툰을 그리면서도 나는 항상 우리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친구 셋이 산다고 말하면 숱하게 들려오는 질문에도 전부 세세하게 대답해주고 싶다. 가장 먼저 들려오는 질문은 어느 친구냐는 것이다.


'친구'. 내가 말하면 항상 우릴 동갑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 집 첫째 언니(콘)는 나와 세 살 차이 나고, 가장 어린 셋째(정찌)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다. 나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놓는 건 이제 좀 드물지 않은 문화일까? 아무튼 우리는 이런 '친구'로 살고 있다.

윗쪽부터 나(도우), 콘언니, 정찌, 찹쌀이, 콩떡이


나이도 각각 다른 우리는 어디서 만났나? 모임 어플에서 게임을 하다 만났다. 오프라인 모임이 잦아지고 숙소를 잡는 일이 잦아지다가 기어이 언니의 원룸은 우리의 주말 아지트가 되었다. 이럴 바엔 같이 살자. 각자 이사나 독립 등을 생각하고 있던 우리는 방 세 개짜리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역시 싸우지는 않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성격과 환경이 다르니 섣불리 이러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얹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런 문제다만, 사람들이 흔히 처음으로 염려하는 부분-집안일이라던가 비용문제라던가 생활습관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콘언니의 아지트 덕분이다. 거기서 보낸 밤이 두 자릿수를 넘어가니, 이제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성격에 대한 얘기도 그곳에서 꽃 피웠다. MBTI를 기반에 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리의 차이점에 대해 얘기하다가, 서로의 집안 사정을 함께 묻어두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챕터를 내야 할 수준이다.


결론, 우리는 잘 맞았다. 콘언니와 정찌의 입장을 들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 셋이 딱 좋았다. 아직 한 번도 식구라는 말을 입으로 내뱉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식구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소속감이 내게는 있다.




2. 친구 셋과 고양이가 삽니다.


정찌는 이미 스무 살 때부터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다. 사진도 보고 영상도 보고 직접 만나기까지 했으니 우리도 역시 알고 있었고, 함께 살려면 친구에 고양이가 딸려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린 그 모든 것에 동의를 구한 적도 없이 자연스레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 고양이가 찹쌀이었다. 도도하고, 조용하며, 멀리 있다가 다가오는 듯 다시 멀어지고, 새침하게 생긴 우리의 찹쌀이.



동물과 살아 본 적 없는 나는 1년 반이 지나가는 지금도 가끔 어색하다. 그땐 고양이가 우리 집 바닥을 걸어 다니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의 카테고리에 나를 끼워 넣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선택한 건 친구와 같이 살기였는데, 어느새 난 그 카테고리에도 이름을 올린 채였다.

고양이를 온전히 선택한 과정이 없었다 보니 나를 정의하는 데 있어 반려동물 키워드를 넣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다. 기꺼이 받아들일 신선함이었다. 이런 식으로 동물을 키우게 되다니 재밌기도 했다. 가끔은 선물 같기도 하다. 혹여 찹쌀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한동안 정찌가 질색할 정도로 조심하고 다녔다.


내가 식구를 들이는 과정은 그토록 느렸다. 1) 친구 셋이 살고, 2) 고양이와 함께 산다. 그 순서가 분명했다.


그런 머리와 다르게 가슴은 역시 새로운 것에 먼저 반응하는 모양이다. 문득 날아다니는 털을 볼 때, 문득 햇빛에 비쳐 반짝거리는 찹쌀이를 볼 때, 나는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숨을 들이켜야 했다. 내가 고양이와 같이 살다니.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다니. 이토록 작고 소중한 동물이 곁에 있다니.


이전에 사진 모작 작업을 했던 찹쌀이





3. 친구 셋과 고양이 둘이 삽니다.


자, 하나가 늘었다. 찹쌀이를 키우던 정찌의 소원이었다. 어떤 고양이가 와서 어떤 사고와 사건이 있었는지는 인스타툰에 줄줄이 표현되어 있다. 그 말을 또 하자면 한 바닥이 넘게 나와야 한다.


이제 나는 고양이 병원에도 가는 어엿한 집사가 되었다. 이번엔 우리가 선택하는 과정이 있었고, 이름을 짓고 어린것을 키우는 과정에까지 함께였다. 아깽이 시절 대부분이 겪는 고난의 시기에 울기도 해 봤다. 익숙지 않은 콘언니와 나는 우리 둘째 콩떡이에게 아주 탈탈 털렸다.



콩떡이는 고양이답지도 않아서, 조용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찹쌀이와의 합사에 많은 문제를 겪어야 했다.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으니 우리 삶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고양이님 편하신 하루를 위해서.

그건 그야말로 집사의 모습인데, 웃긴 건 아직도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매번 이렇게 새삼스러울까? 이렇게 새삼스레 좋을까? 아니면 내가 '어쩌다 집사'이기 때문인 걸까.


난 아직도 이름을 붙이고 보듬어 어루만지는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너희를 이토록 소중하게 만들었다. 딱 붙어서 나눈 체온과 그 촉감과 냄새는 시각보다 강해서, 나는 결국 너희가 준 세계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다섯이 만든 세계에서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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