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는 괴로운가요?
MBTI는 유구한 소재가 됐다. 철학과로 본인을 설명하면서 심리학에서도 고개를 젓는 MBTI 얘기를 하면 웃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MBTI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단편적이고 극단적으로 반반 나눠놓는 MBTI는 싫어하지만, 그건 본래 그런 검사가 아니니까. 그에 대한 전문적인 얘기는 각설하고, 왜 지나도 한참 지난 MBTI를 꺼내드는지 말하는 것이 좋겠다.
단순히, 우리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건 없기 때문이다.
'T 사이에 F가 끼다니, 너무 힘들겠다!'
그런 말을 주구장창 들은 탓이다.
나는 예술가 중 가장 흔하다는 INFP, 콘언니는 ISTJ, 정찌는 ISTP이다.
특히 나와 정찌는 매우 극단적인 편이라 모두의 차이점에 대해 얼마나 떠들었는지 모른다. 흔히 말하는 T와 F의 차이점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해서. 나는 모든 행동에 감정이 영향을 주는 편이고, 다른 친구 둘은 일만 해결되면 남은 감정은 싹 사라지는 편이다.
그래서, 높은 T 지수를 자랑하는 친구 둘 사이에 낀 극단적인 F는 힘든가? 심지어 같이 살고 있는 사이라면?
우리의 모든 게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F 셋이 살아도 당연히 벌어질 일이었을 것이다.
1 - 누군가는 스며들고, 누군가는 알아갑니다.
한쪽은 공감을 잘하고 한쪽은 논리력이 좋고. 그런 식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심리학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영상을 보고, 많은 글을 읽었다. 에니어그램까지 섭렵할 정도로 우리는 성격검사를 즐겨했다.
우선 정찌는 처음부터 주변에 INFP가 많았다. 그는 내가 본 사람들 중 MBTI를 가장 적극적으로 잘 쓴 사람일 것이다. INFP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MBTI를 알고 나서 틀린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특히 16가지 유형 중에도 INFP가 가장 흥미로웠는지 주변에 많은 질문을 하고 다녔다고. 그 와중에도 내가 제일 답을 잘해준다며, 콘언니가 놀랄 정도로 많은 질문을 해왔다.
콘언니는 질문하는 정찌와 반대로, 잘 듣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얘길 해도 콘언니는 곧잘 리액션을 해준다. 본인 왈, 예전부터 많이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언니는 그야말로 사회생활 만렙인 사람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T의 면모가 있다. 본인은 그게 무엇인지 아리송해 하지만.
반면 나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질문이 들어오면 답변을 잘했다. 훌륭하게 했다는 게 아니라 빼지 않고 곧잘 대답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설명하기도 했다.
요즘은 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F처럼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어쩌면 이건 내 전공이 한몫을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추상적인 개념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일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엄마도 나를 T로 오해했다. 난 F와 있으면 F의 방식대로, T와 있으면 그들의 방식대로 반응하고 얘기하게 된다. 그것도 공감의 하나일지도 모르지.
2 -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솔직히, 중요하다.
일이 해결되어도 감정이 남아 그걸 나름대로 풀어가는 것까지가 마무리인 사람인지, 일만 해결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하다. 힘들 때 혼자 있어야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인지, 같이 얘기를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하다. 함께 사는 데 있어 그런 것이 서로 오해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친구와 살면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친구이기만 했을 때는 항상 놀 생각을 가지고 만났다. 나는 오늘 너희와 만나서 시간을 가질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살게 되면 내가 피곤에 찌들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들을 마주한다는 뜻이다. 딱히 친구를 만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그 어느 순간에도 그들과 함께 있다는 뜻이다.
한때 콘언니와 정찌는 회사로 괴로웠고, 나는 다시 심해져 가는 우울증 때문에 괴로웠다. 둘은 지쳤고 나는 예민해졌다. 그때 우리 사이에 특정한 일이 있진 않았지만 내겐 그때가 -나로 인해 생긴- 첫 번째 위기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나를 배려해서 혼자 있게 두었고, 누구라도 붙잡을 사람이 필요했던 나는 그대로 동떨어졌다.
그래서 난 정찌에게 요청했다. 내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게 말을 걸어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나는 계속해서 비관적으로 나아가는 내 사고에 갇혀 있을 테니까.
그때 특정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건 우리가 오롯이 셋뿐이 아니라 찹쌀이와 콩떡이까지 있었던 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콩떡이는 우릴 지치게 하는 원인으로서 사건을 만들 뻔했지만.
물론 이건 이제 지나간 한때의 얘기다. 오랜 상담에 정신과 약을 더한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지금은 그저 모두 일상처럼 흘러가는 과로에 지친 세 사람일 뿐이다.
3 - 당연히 힘듭니다.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T 둘 사이에 낀 F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본래 사람과 맞추어 나가기란 어렵고 힘든 것이다.
만일 F가 더 많았다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바뀌었을 것이다. 동시에 각각 다른 네거티브한 감정에 빠져들면, 그야말로 방도가 없다. 만일 F와 T가 같은 비율로 있었더라면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우지 않게 중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같이 사는 건 그런 문제다. 성격을 아는 것은, 각자 삼각형인지 원형인지 사각형인지도 모를 자신의 방에서 말로만 내 방을 설명해 주는 것과 같다. 누구는 침대가 있는 게 당연해서 설명하지 않았는데, 누구는 서재처럼 쓰이고 있어 책상 밖에 없을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네모난 방에 살았으니 네모난 방만 있는 줄 알고 말하지 않았는데, 세모지붕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내 방-내 성격을 내가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걸 아무런 설명도 어떠한 이해도 없이 맞추어가는 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창문은 어디에 붙어있고 어떤 모양이며, 방 안은 어떤 모양의 어떤 색의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을 택했다. 그건 아마 내가 T 사이에 낀 F여도 그들과 그만큼 친하고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의 대답은 절대로 N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