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드림.
안녕하세요, 누구 씨.
당신의 얘기는 종종 들었습니다. 그렇게 쉬지를 못한다고, 주변 분들이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초반부터 죄송하지만 제가 들은 말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결과물이 안 나오는 행동을 못 견뎌 해. 취미로 삼으라고 뭘 제시해줘도, 결국 잘 해내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아. 할 거 없는 연휴를 두려워 해. 학생 때는 방학보다 학기중이 좋았대.
저를 소개해드리자면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는 말에 치를 떠는 사람입니다. 전 안그래도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잘 잘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잠을 포기한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서요. 잠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잘 수 있는 것은 축복인 것을요.
네, 저는 쉼의 소중함을 믿습니다. 퍼즐을 몇 시간 가까이 걸려 맞추었다가 다시 조각으로 돌려놓는 짓을 해도, 그 시간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그저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간. 그게 무엇이든지요. 그동안 우리의 뇌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이하겠죠.
이쯤 되면 제가 누구 씨를 가르치려 연락을 했나 싶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그간 누구 씨의 얘기를 들으며 알게모르게 저와 선을 그어왔습니다. 저는 다르다고, 저는 쉬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야 저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산더미인 프리랜서 작가이지만, 스스로에게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이상은 작업 생각 안하고 쉬기.
빈 속에 커피 마시지 않기.
아무리 급해도 잠은 7시간 이상 자기.
간단하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것들이지요. 특히 생각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 첫 번째 규칙은 지키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누구 씨. 미안합니다.
저는 저런 규칙들을 정해두고서 은연 중에 당신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이제 저는 당신에게 뭐라 할 자격이 없어졌습니다.
요즘의 제 생활을 고백할게요. 하나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잠은 절대 줄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잠은 죽어서 자는 게 아니에요. 자는 건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고, 죽은 건 준비할 다음을 모두 끝마친 것입니다.
홀로 세운 목표 중 하나라면 커피를 하루에 한 잔만 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카페인에 의존하고 있는 저에게는 나름 진지한 목표였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것이 가장 먼저 깨지고 말았습니다.
아침을 깨는 커피 한 잔, 일을 위한 커피 한 잔. 빈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모자라 저는 하루에 두 잔씩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카페인 과다 섭취로 인한 건강 문제를 고백하는 게 아닙니다. 정신이 깨어있지 않은 상태를 견딜 수 없어진 제 마음의 상태를 고백하는 것이지요. 휴일에까지 카페인을 들이붇지 않으면 그 짧은 점심식사에도 집중할 수가 없거든요.
집중. 그게 문제입니다.
저는 모든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합니다. 나의 정신이 항상 또렷하길 바랍니다. 왜 제가 잠을 중요시 여기는지도 아시겠지요. 숙면을 취해야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쉴 때는 쉬는 것에 집중하고, 잘 때는 자는 것에 집중하고. 뭐가 그리 거창하게 고백이라 할 일인가 싶을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최근 저의 정신이 온통 일에 쏠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나긴 연휴를 앞두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휴가를 택하셨지만, 저는 가족들의 여행에 합류하지 않길 택했습니다. 진정으로 혼자 쉬기 위해서요. 분명 처음은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 씨.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긴 연휴동안 제가 일하지 않는 자신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연 지금까지 달린 자신을 위해 며칠이나 내어줄까요. 연휴까지 계산된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작가로서 저는 저를 가만히 둘 수 있을까요. 오늘 이렇게 쉬기로 한 날에조차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제가요.
답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누구 씨가 떠올라 뜬금없는 편지를 건네어 본 것이니, 그냥 모르는 사람의 넋두리구나 하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다만 당신의 평탄함을 바랍니다. 당신이 앞으로의 연휴에 쉴 수 있다면, 왜인지 제게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