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정의해야만 사는 사람들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by 도우





난 수없이 나에 대해 생각해 왔다. 상담을 받을 때도 나에 대해 생각하는 힘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강력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어떤 측면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무엇이 있어야 살아가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살 수 있는지, 나의 사고방식, 결핍, 버릇, 내뱉는 말투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복잡한 과거도 한몫했다. 내 인생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고, 너무 많은 관계가 얽혀있었다. 지독한 불면증과 우울증은 나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철학과까지 이르렀으니, 어쩌면 사실 내가 본래 타고난 기질인지도 모른다.




1 - 움직이는 것을 붙잡는 일


생각을 정의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난 이런 사람인 줄 알고 살고 있었는데, 고새 1년이, 2년이 나를 바꾼다. 주체는 사실 완전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철학에서는 주체가 허상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주체는 계속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영향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누구보다 자극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의 말을 읽고 한순간에 가치관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한순간에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주체는, 자아는 그렇게 쉽게 변모한다.


나는 그럼에도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를 매번 기록하는 일을 택했다. 장면을 담을 수 없다면 흐름을 담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고양이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말하지만, 그 아이들의 삶을 우리의 수명만큼 곱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우리보다 7배 빠른 삶을 사니, 하루 만에 우리가 겪을 일주일의 변화를 겪는 셈이다. 인간도 그만큼 변덕스럽다. 생각과 마음은 그만큼 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움직이니 기록도 그래야 했다. 초등학교 때만 서른 권 넘는 일기장을 썼던 나는 이제 다이어리를 사놓고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일기(日記)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의 일기는 쓰기 간편한 핸드폰 메모장에 더 많이 담겨있다. 담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담은 생각들을 읽다 보면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깨닫는다.




2 - 왜 살아갈 수 없는가


'나를 찾아가는 것', '나를 아는 일'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올 정도로 인간의 오래된 과제이지만 사실 그 깊이는 모두가 다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와 같이 사는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자신을 정의하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이다. 혹은 자기 정의가 단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삶은 파도에 떨어진 나뭇배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돌아갈 항구가 있는데 나는 1인용 나뭇배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육지인지도 모르는 채로 떠도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매번 뱃멀미를 했다. 그게 편두통이었고, 공황이었다.

뿌리내리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가? 애초에 나는 어디 사는 생물인가? 이 나뭇배에 기대어 뿌리를 내려 파도를 떠다니는 생명체일 수도 있고, 결국 어느 육지를 찾아가 땅과 햇빛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물속으로 떨어져 바닷속에 자리 잡는 생명일 수도 있다. 나의 자아는 물인가 땅인가?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나를 정의해야 했다. 내 자아가 이 파도를 타는 일인지, 아니면 육지에 도달해야 하는 일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안정될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뱃멀미를 안 하고 사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인생은 원래 혼란스러운 것, 그러니 꾹 참고 사방을 향해 눈을 돌려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이었다. 내 근간을 모르고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 무작정 발을 내디뎠다가 '아, 이게 아니었구나' 하고 늪에서 발을 빼내려 했다간 그대로 침잠해 버릴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소망한다. 나도 정의, 성찰, 자아 찾기 따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를, 어느 정도 현실을 살고 나서 뒤늦게 그런 것에 빠져도 되는 사람이기를. 하지만 몇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나는 그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것 없이는 숨 쉴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

분명 존재할 나 같은 사람들에게, 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1인용 나뭇배를 타고 나는 왜 이런 것일까 하는 질문에 손발이 묶여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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