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반려동물이 좋다구요

내가 이전까지 혼자 산 이유

by 도우




어딘가에서 들었다. 반려동물과 나누는 온기, 상호작용 등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나도 우울증이 심했던 시절에는 밤마다 따듯하고 보드라운 걸 껴안고 싶었다. 난 거의 초등학생 때부터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반려동물이 우울증을 감소시킨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게 내 특효약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집사가 된 건 같이 살기로 한 정찌가 우연찮게 집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동물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내게 필요성을 느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 마치 내 병을 낫게 하려는 이유로 그 아이를 이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당연히 보편윤리적인 문제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어떤 계기든, 자신이 충분히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난 그럼에도 -책임질 자신도 없었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동물을 수단적으로 쓴다는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반려동물을 들여도 그 아이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내 곁에서 자지 않으면, 내 불면증이 낫지 않으면 실망할 것만 같아 무서웠다.




1 - 우울증이라는


내게 책장이 있다. 나는 거기서 책을 하나씩 꺼내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을 한다. 그 책은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일상들이다. 때로 아주 두껍거나 얇은데도 무거운 책이 있다. 앞으로의 관한 것이나 내 일생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한 손에 들어오던 책은 책장 크기로 변해버렸다. 난 이제 한 가지 생각, 한 마디를 하려면 책장을 지고 옮겨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책을 끼워 넣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말하던 것이 철근의 무게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내가 겪은 우울증의 단면이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손가락에 눌린 벌레처럼 으스러져버린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자극을 찾지 않는다. 가끔 들 수 있는 가벼운 책이라고는 작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부정적인 이야기뿐이다. 생각을 나누려 오가는 게 힘드니 나는 혼자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생각이란 건 멈출 수가 없어서, 그 생각에 눌린 가슴은 뻐근하고 고통스러웠다. 그게 공황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잠자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생각을 했다. 아주 정신없고 긴 꿈을 꾸었다. 꿈풀이를 보면 대부분 아주 단편적이고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던데, 내 꿈은 3시간짜리 정신없는 영화였다. 그만큼 무의식이 팽팽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울증은 마치 만성 후유증과 같아서, 많이 나아졌다가도 친구들과 함께 사는 도중에 많이 심해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상담과 병행한 약물치료를 통해 가장 호전된 상태다. 이 모든 걸 활자로 옮겨, 책장 밖으로 꺼내어 모두가 볼 수 있게 떠들 수 있을 만큼.




2 - 온기라는 것


수단이 될까 봐 두려워 반려동물을 택하지 않았던 내가 '어쩌다 집사'가 되었다.


고양이를 마주하고도 많이 울었다. 힘들어 울고 있을 때 아주 가끔씩 내 앞에 찾아온 찹쌀이를 보고 신기하고 애틋했다. 우울증에 반려동물이 좋다는 말을 실감한 건 그때 즈음인 것 같다. 예민한 찹쌀이를 비로소 쓰다듬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집사 방으로 가지 않고 내 방에 머물러 뒹구는 찹쌀이를 보았을 때. 우울증이 다시금 절정에 들어설 때쯤, 내 배 위에 폭 안겨서 자는 콩떡이의 온기를 느꼈을 때.




드림웍스의 <와일드 로봇>을 보지 않았다면 감히 한 번 추천해 본다. 새가 로봇의 목에 뺨을 비볐을 때, 그리고 그 자리를 로봇이 한 번 쓸었을 때의 기분.



결국 사람은, 그 영화의 주인공은 로봇이지만 그걸 생각해 내고 만들어낸 사람은, 다른 생명체의 온기로 살아간다.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느끼면 더 이상 다른 것으론 대체할 수 없는 것. 한 생명체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 오면 속절없이 그의 온기에 빠져들고 만다.

우습게도 내가 조금 나은 뒤에야 그 온기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콩떡이가 더 이상 잠을 방해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침대 주변을 거니는 작은 발소리와 내 침대 아래에서 잠들었다가 뒤척이는 소리. 꼭 내 옆에 붙어있어야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보살필 수 있을 때 즈음이면 반려동물은 나를 낫게 하는 최고의 온기가 될 수 있다. 혹은 나처럼 '어쩌다 집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케어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조금 더 나을 테다. 사람은 온기로 살고, 상호작용으로 산다. 더 이상 사람이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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