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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stwons Dec 18. 2024

87. 다 날 앎이라

[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87. 다 날 앎이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 8:10,11,12)

~~~~~~~~~~~~~  Bible   ~~~~~~~~~~~~~~     


  이스라엘 민족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됨을 어찌 볼까? 이 세상적인 생각으로, 인본주의적 이념으로 바라본다면, 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쉬운 예를 들면, 인간이 홀로 있을 땐 선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둘이 함께 있으면 선악은 이기심이나 이타심으로 보이기 되고, 셋이 함께 있으면 선악은 편 가르기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누군 선하고 누군 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관계에 의해 선악의 행태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수가 늘어날수록 거미줄처럼 매우 복잡하고 교활하게 인간관계에 있어서 선악의 기술을 통해 인간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 인간만이 가진 이성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다. 이런 인간은 잘 알고 있다. 모든 도구 중에 인간이란 도구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만들어지고 산업화해 온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노예제도가 없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너무나 인간의 잔인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잔인함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분열된 이유를 다시 살펴본다면, 아주 간단하다. 이들은 모세로부터 주신 언약의 법을 흠집을 내고 왜곡시켜서는 결국에는 인본주의적 이념에 섞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첫 언약이 무흠 하지 못하며, 온전함이 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북이스라엘은 초기부터 음란함으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 남유다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방나라의 것들을 흠모하고 더 신뢰를 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고 하는 심리현상, 즉 교만함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한때에 외제품을 더 선호하거나 고급스러운 상품으로 자신을 돋보이려는 심리가 바로 교만함에 있다는 사실을 알까? 어릴 적부터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교만함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까? 한국교육의 병폐가, 아니 사악함은 바로 경쟁심을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심은 인간차별을 넘어 인간말살에 까지 이르게 만들고 만다. 이러한 현상들은 인류역사 속에서 많이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노아홍수 이후에 인류는 니므롯의 이념을 바탕으로 번성해 갔다. 언어혼란으로 흩어진 인류는 오늘날에 다양한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선악의 파도물결 속에서 다양한 이념에 따라 법들(laws)을 만들어내고 인간들을 다스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다양한 법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강이 조정되고 상실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후예들에게 긍휼함으로 한 민족을 세우려고 아브람을 택하였으며,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믿음의 민족,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던 것이었다. 그런 나라를 모세로 이끌어내었지만, 결국은 음란한 여인처럼, 인본주의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민족으로 달려가자 이웃나라에 종이 되게 하시고 망국의 길로 가게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셨으며, 첫 언약을 쇠하게 하시고 말씀하시길, 그날이 이르리니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으로 새 언약을 세워주신다고 하셨다.

  그날에 이르는 새 언약은 이스라엘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주신 언약과는 다르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저희들이 내 언약에 머물러 있지 아니함으로 외면하시고 돌아보지 아니하셨던 것을 중단하시고는 새 언약으로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12월 18일에 다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던 하늘 아버지, 여기서 하늘 아버지라 함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첫 글에서 깨달음에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1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태초부터 작정하신 뜻을 따라,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을 따라, 많은 선지자로 증명해 주신 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 마리아로써 태어나신 예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적인 셈이다. 그것도 결코 부정할 수 없도록, 동방의 박사들로 이스라엘에 알리시고, 들에 목동들에게까지 소식을 알려주었고, 역사에 지워지지 않도록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살해하는 사건까지도 기록되게 하셨으며, 예수의 나신 날을 명확히 하시려고 로마의 가이사의 령으로 호적을 등록해하였으며, 이날을 새로 쓰게 하사 예수 탄생일로 기원전후를 정하심도 놀라운 일이 아닌가?

  또한 모세로 시작된 선지자의 발자취도 세례 요한까지로 끝을 맺으시고, 그 후로는 어떤 선지자도 세우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약속한 구약의 진리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로 끝났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 이유를 히브서에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그래서 예수는 말씀하시길,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무슨 말씀일까?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유대인들만이 메시아를 알고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오신 후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에 대하여는 각 나라, 각 형제에게는 이미 알려진 바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를 알면서도 그를 믿지 아니함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온 인류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믿는 자가 얼마나 될까?

  여기서 더욱 놀라운 말씀이 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을 전하고 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 세상은 어떠한가? 온갖 불의와 사악함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날에 이미 온 인류가 예수의 복음을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예수는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이제는 문명이 발달해서 직접 제자들이 전하지 않아도 활자로나 인터넷으로도 예수의 복음에 대해서는 알 수가 있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북한 같은 폐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온 인류는 예수에 대해 얼마든지 여러 채널을 통해 알 수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석가와 같이 성인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일반 종교적인 인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오기 전까지는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르치며, 올 메시아에 대해 가르쳐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를 알라!’라고 가르치지 말라고 하셨다. 이미 그들은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나를 앎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증명해 보이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강의하듯이 말이다. 이미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데, 언제든 자료를 찾으면 다 알 수가 있는데 말이다. 이에 꼭 맞는 말을 히브리서는 이렇게 지적을 했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히 8:9)     


  그들은, 이스라엘은 율법을 알고 있지만 그 율법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다 알면서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법)을 저희 생각에 두지 않고, 저희 마음에 기록해 놓지 아니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인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은 이렇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태 28:20)     


  예수가 어떤 분인지, 신구약을 들쳐가면서 가르치나 이미 그들은 다 알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아니함은 그의 가르침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신약의 사복음서에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는 이미 구약에서 선지자로 말씀하셨고, 동방박사와 들에 목동들과 로마의 칙령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셨음을 증명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온 인류가 기원전후의 기점을 예수 나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로도 이미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공동체에서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예수는 실제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그들은 예수가 생전에 하신 말씀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예수가 분부하신 말씀들을 가르쳤던 것이었다.

  우리가 동향철학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 군자들의 이름을 증명하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르쳤던 것을 강의에서 듣지 않는가? 그런데 그리스도에 대해 복음을 전할 때에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가르치려고 하니,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듣고 들어도 깨달음이 없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예수님의 실존은 누구도 믿곤 안 믿곤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 예수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 14:26)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으나,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알지도 못한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은 세상적인 지식으로만 예수를 알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이원론적 신앙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세상적인 이념과 예수 복음을 함께 품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법을 두고 있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인지 아닌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니 얼마나 애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모르니 말이다. 끝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치려고 한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15:14)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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