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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관념

[요한복음으로의 간증]

by trustwons

세상을 보는 관념


「요한복음에서 가장 마음을 깊게 흔들리게 하는 말씀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2)”이다. 이 말씀을 입안에 담고 되새김하면 할수록 흘러나오는 고소함이란, 내 영혼에 희열이 넘치게 할 뿐 아니라, 벅차오는 가슴을 누를 길이 없다.

얼마나 세상 인간들이 자유를 외쳤던가? 얼마나 인간들은 이 자유를 원하였던가? 아담과 여자가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자유를 알지 못한 인간들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였던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특별히 인간에게만 이 자유를 갈망하게끔 허락했다. 그런데 여자가 에덴에서 선악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그의 반려자 아담도 함께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를 소유할 줄 알았는데, 실제 얻은 것이라고는 자신의 부끄러움뿐이었다. 그들은 바위 뒤에 숨었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그들은 사람 뒤에 숨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므로 두려움의 종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고, 두려움을 잊으려고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며 위로를 받으려고 했고, 인간의 우두머리를 세워 권력의 그늘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권력의 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바벨탑을 세우다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간세상은 언어가 다른 세상, 다양한 세상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인간세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능을 바탕으로 세상지식을 쌓아갔는데, 진화론 사상을 만들어 하나님이 없고, 세상은 스스로 생겨났다고 한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스스로 있는 분이라 하였거늘, 인간은 세상이 스스로 있었다고 한다. 점점 인류는 진화론 사상의 바탕에서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문명이라 불렀다.

세상 학문은 말한다. 인류는 물에서 시작하였고, 원시인간에서 원시사회로 진화하였고,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진화하였고,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진화하였고, 공업사회에서 기술사회로 진화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처음부터 인간은 지혜로웠다고 말한다. 아담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짓을 때에 지혜로움을 보였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에 노아의 지혜를 보이셨고, 세상에 기근이 올 때에 요셉의 지혜를 보이셨고, 다윗의 지혜를 보이셨고, 솔로몬의 지혜를 보이셨다. 지혜를 하나님의 은혜 중에 나타내는 것임을 예시하였다.

요한복음 첫 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였고, 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에 의해서 시작된 것을 의미하며, 말씀 속에서 모든 지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말씀이 또한 세상에 왔다고 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 하셨으니, 곧 구원의 길을 놓으셨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깊은 뜻을 보이셨다.

이 진리를 어찌 알겠는가? 성령께서 우리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도우신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 거짓 목자들에게 물어보아라! 진리가 무엇이냐고 그리고 자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아라! 그들은 틀에 박은 말을 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그러하였고, 지금은 자칭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세상 부귀를 누리는 자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이 요한복음의 큐티(QT)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으로 성령이 인도하시도록 열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요한복음 큐티의 머리말에서>



오래전, 이천삼 년에 책으로 엮은 것을 다시 열어 읽어보다가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뭉클해져서 홀로 은혜를 받기에 하나님 앞에 죄스러워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려고 글을 올립니다.

훨씬 오래전에 평신도의 입장에서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문서선교로 계간지 문서를 만들어 서점에 무료 배급을 해오던 중에, 사정상 중단된 후에 다시 인터넷 문서선교로 활동하던 중에 미국에 계신 노목사(老牧師)님의 권고로 책으로 해서 보내달라는 요청으로 시작된 말씀묵상의 책으로 펴낸 요한복음을 다시 읽게 되어, 그동안 식어진 신앙을 되살려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한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받았던 쪽지복음의 소책자의 요한복음이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책보다는 소책자로 된 쪽지성경도 소장하기엔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대체로 목사님이나 선교사에게만 두꺼운 성경책이 있었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소책자로 된 쪽지성경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복음에는 남달리 친근감이 있어서 자주 읽지는 않았지만 자주 접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요한복음을 성인이 된 후에 두꺼운 성경책으로 요한복음을 다시 읽으며 묵상을 해오던 것이 문서선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8장 32절에 말씀은 눈먼 제 신앙을 깨우쳐준 은혜의 구절이었습니다.


“너희는 진리를 알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이 말씀의 심오함에 감동을 받았으며, 이 말씀으로 성경을 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진리를 알라!’라는 말씀은 곧 예수를 알라는 말씀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낸 이유를 알라는 것입니다. 또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태초에 말씀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에서도....... 무엇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지, 그리고 자유하게 됨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이념, 즉 인본주의 사상으로 의식화된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것과 자유하게 됨에는 세상에 종노릇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業報)라든지, 관념(觀念)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더 놀라운 것은 그 자유에서 진실을 얻으며, 진실할 수가 있으며, 진실을 분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을 객관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자주 부탁한 말씀인, “깨어 기도하라!”, “깨어 있어라!”라는 것에서도 진리로 자유하게 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로 자유하게 되면 세상을 바로 이해하게 되고, 정확히 분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또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 10:15)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요한 10:38)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한 14:11)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 14:20)


이상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됨에는 바로 진리이신 예수를 알게 될 때에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이 도우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하면 진리로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과 세상을 제대로 알고, 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세상의 지식에 길들여져서 생각하는 것이나 기억하는 것도 세상 지식에 구속되어, 편향적인 생각이나 기억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반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고, 단지 저장된 의식에 의해 생각하고 기억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인들은 그것조차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부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을 그들은 세상지식에 세뇌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 때에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진리를 알라. 그리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요한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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