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으로의 간증]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한 2: 14,16,17)」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 2: 18,19)」
~~~~~~~~~~~~~~~ Bible ~~~~~~~~~~~~~~
유월절은 유대인에게는 중요한 절기이다. 애굽에 구속된 지 사백여 년 만에 자유 민족으로 해방된 것이다. 그것도 그들의 노력으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다.
잊혔던 하나님을 다시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칭함을 받았던 것이다. 광야 사십 년 동안에도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던 유대민족이다. 따라서 모세는 유대인에게는 절대적 지도자이며, 모세오경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의 율법도 모세의 오경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유대민족은 모세와 모세오경에 의해서 지혜로운 민족이 된 것이다.
오늘날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 큰 것이다. 그리고 다윗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처소가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러므로 더욱 유대민족은 성전이 그들의 구심점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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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어찌 그런 일을 행하느냐, 하면서 무슨 근거가 있느냐, 그 표적을 보이라 했던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했다. 사십 년 동안에 지었던 성전을 어찌 사흘 만에 지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록한 요한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의 성전은 너희가 헐라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 그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영원한 성전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큐티에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심은 단순히 흥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 또한 앞으로 있을 일을 예시한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세 아들에서 나온 민족들이 황무한 땅을 이동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늘이 인정하는 영웅, 니므롯이 나타나서 모든 민족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여 한 국가를 세우고 ‘사람의 이름을 널리 알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즉 하나의 이념으로 그들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고 획일적인 몰아갈 때에,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언어를 달리함으로써 스스로 흩어지게 하셨던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흩어지기 전에, 함의 후손인, 삼대 째로 증손자였던, 니므롯이 통치할 때이다. 한편 에벨은 셈의 후손으로, 사대 때의 증증손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에벨은 니므롯보다 아랫사람인 것이다. 그런 에벨의 이름의 의미는 ‘강을 건너온 자’란 것으로써 그는 니므롯의 지배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날 평야에 바벨탑을 쌓고 있는 무리들의 언어를 달리 함으로써 흩어지기 전에, 에벨은 그곳을 벗어나 있었다고 보아진다. 즉 에벨의 후손들은 흩어지기 전에 그곳을 떠났으므로 처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을 알게 되는데, 동쪽 산에 에벨의 후손들이 거주해 살았다는 것이다. 즉 에벨의 후손들은 동쪽으로 끝없이 이동을 하였다고 보아진다. 그러면 대륙의 동쪽 끝은 어딜까? 그것은 바로 한반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겠다. 물론 그들의 일부는 알래스카로 해서 아메리카 대륙에 까지 이동하여 살아온 인디언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민족과 너무나 같은 면들이 많다. 풍습이나 생활의식이나, 하물며 출생한 아기의 엉덩이의 붉은 반점까지도 같다.
오래전에 미국을 방문하여 인디언의 부락에 갔을 때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국과 비슷함이 많다고 했더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형님의 나라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인디언들과 한국인은 동족이란 것이 된다.
어떻든, 다시 돌아와서 에벨의 후손들은 동쪽으로 이동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셈의 후손인 벨렉과 에벨 중에서 셈을 에벨의 조상이라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어찌 벨렉도 있는데, 에벨의 조상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에벨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을까? 이는 셈의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벨은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끝없이 동쪽으로 이동해 갔으며, 동쪽 끝인 한반도에 정착을 했다는 것으로 추측을 할 수가 있겠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즉 백두산을 중심으로 거주한 민족, 한민족(동이족)은 언어가 혼잡하게 되기 전에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언어가 바로 한국인의 언어인 셈이다. 물론 그동안 언어는 변천해 가면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의 언어였을 것이다. 글자로써는 소리글자로 한글을 만들었지만, 그 언어의 뿌리는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다시 말한다면, 세계의 언어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의 언어의 뿌리는 노아가 사용했던 원언어(原言語)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이처럼 놀라운 민족이 바로 한국인, 한민족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한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전 1:8)라고 하셨다.
그 땅 끝은 어디겠는가? 바로 동쪽의 나라, 한반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는다. 아직 땅 끝인 북녘 땅에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
그날, 땅 끝까지 복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라 믿어진다. 그렇게 때문에 세계의 국가 중에 유일하게도 북한 땅에는 단절되어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의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지, 요한 사도를 말해주었다. 또한 예수는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에도 말해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10)
이 말씀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 성전을, 유대인의 성전을 헐게 되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써 새 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그 성전은 어디 있을까? 바로 예수를 믿는 자, 그리스도인, 그들이 곧 새 성전인 것이다.
유대사회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성전은 로마에 의해 산산이 무너져버렸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그 성전을 떠난 것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날까지 그와 비슷한 성전의 터, 예루살렘을 여전히 성지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예수가, 성령이, 그 안에 계시며,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인처럼, 아직도 성전을 잊지 못해, 로마의 기독교 때부터 얼마나 성전, 성당들을 짓고 세우고 하면서 성지로 섬기지 않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으며, 오직 믿는 자에게 함께 하시며, 믿는 자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 14: 20)
그러므로 교회건물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것이다. 주님은 건물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믿는 자 안에 계시며 함께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제 정리를 하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하심은 이미 그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심이며, 사흘 만에 세우리라는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심, 즉 부활하심으로 새 성전이 시작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참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전에 비유로 하신 말씀 중에 밭에 심은 곡식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또 밭에는 가라지가 있게 됨도 말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참 그리스도인이 있고, 거짓 그리스도인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거짓 그리스도인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거짓된 것을 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참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참 그리스도인 것을 잘 안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안다. 또한 예수님도 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강조해서 말한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심과 같다. 진실한 자만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한 자만이 성령이 깨우쳐주신다는 것이다.
제발, 여러분들이여! 진실한 사람이 되시오! 어린아이들에게서 그 진실성을 배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