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소녀는 스타박스 안에 청소를 다 마치고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는 안나와 함께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소녀는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그리고 소녀는 원 달러 지폐를 보고 있었다.
“그거 원 달러 아니니?”
안나가 소녀의 손에 있는 지폐를 보더니 당연하듯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원 달러가 미국의 정신이 들어있는 거라고 생각해!”
“미국의 정신? 어째서?”
“여기를 봐~ ‘IN GOD WE TRUST', 인갓 위트러스트…”
“그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 거지.”
“맞아, 난 이렇게 해석했는데 … 우리는 신 앞에 진실하다.”
“어머, 신 앞에 진실하다? 이게 미국의 정신이라고…”
“그렇지. 그거야~ 내가 소라 섬에 있을 때 알게 된 거야.”
“소라 섬에서? 무엇을…”
“어둠 속에서 해변에 서서 기다리면 해가 떠올라와~”
“그래, 넌 아침에 해를 바라본다고 그랬지.”
“응, 해를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져.”
“음.......”
안나는 소녀의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문 채 출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 하나님은 그렇게 말했어!”
“그래, 첫째 날, 둘째 날, 그랬지.”
“그것은 창조의 진실성을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소라리자~ 넌 놀라워! 알수록 신비해~”
그때에 스타벅스 매점으로 첫 손님이 들어왔다. 타깃 백화점에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소라섬 소녀이야기 2편에서>
외딴섬, 소라섬에서 홀로 지내온 금소라 소녀는 자연의 모습 속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깨달아갔던 것이었다.
비록 소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로서 ‘소라섬 소녀이야기 2편’을 다시 읽어보면서, 저자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미국인들도 원 달러의 지폐를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원 달러의 지폐에 가치를 높이 평가를 하고 있었다. 또한 매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면서 무보수로 서비스업을 하는 그들에게 팁을 주는 문화가 있었다. 초기에는 팁으로 원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매점의 가격에 따라 비율로 주도록 변화되었던 것이었다.
오래전 미국여행을 하던 중 호텔식당에서 식사하는 중에 한 노인이 커피 서빙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에 접시에 원 달러의 팁을 놓았다. 노인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나중에서야 원 달러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는 영수증에 지불금액에 비율 해서 팁을 놓아주곤 하였다. 이제는 팁문화가 고착되면서 영수증에 금액이 정해져 있게 되었다. 그만큼 비정규직으로 서빙하는 이들에게 보다 더 대우를 해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화가 전국에 펴져나가면서 타국에서도 적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팁문화를 소녀는 미국인의 정직성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자주 원 달러의 지폐를 한 장 정도는 꼭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와 안나의 대화 중에서, 소녀는 놀라운 말을 하였다. 창조주 하나님도 정직하게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창조주도 정직성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에서 소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매일 아침, 새벽에 해변에 나와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여명을 따라 해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정직성, 진실하심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천지의 주인인 셈인데, 그지 출근하는 직원처럼 새 아침이 시작하는 때에 이르러서 천지의 창조를 하셨을까? 편안대로, 편리대로,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일하시면 될 걸, 무엇 때문에 구속받은 것처럼 그리했을까?
소녀는 그 이유를 깨달았던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정직성을 말이다. 그리고 소녀는 자연의 모습 속에서도 창조주의 정직성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정직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서 소녀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음을 말이다. 그래서 소녀는 친구들에게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왜일까? 어째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고 말이다. 그 이유를 소녀는 정직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똑같은 것을 생산해 내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즉 자동화의 효율성을 말이다. 그러면서 인간들에게도 강요하고 있다. 복제인간처럼 말이다. 미국에 깊은 산속에 홀로 사는 어느 노인의 집에 가보면 벽에 커다란 사슴의 머리가 박제되어 걸려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생물들을 박제해 보관하고 있으며, 또한 학습용으로도, 연구의 대상으로도 활용하고 있지 않는가?
인본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인간 세상은 인간을 어릴 적부터 그들의 이념으로 교육하고 균일한 의식을 갖도록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일이 있음을 번제를 드리는 노아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해주었던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하던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이처럼 인간의 세상은 근본이 거짓된 이념이나 사상에 바탕을 두고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바로 소녀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기에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여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었다. 아니 인간의 이러한 행위와 현상에 대해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을 선택한 소녀는 인간의 세상에 모든 학문 중에, 그나마 물리학이 보다 정직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소녀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철학자들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었었다. 결국엔 인간을 지배하는 수단만을 키워갔던 것 아닌가? 어떤 이유로든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의 열매를 먹은 아담의 의지에 있지 않았을까?
미국에 살면서 끝없이 의문을 버리지 못한 소녀는 자연과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일 게다.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와 인본중심의 인간 문명의 세계에게 아담이 따먹은 선악의 열매는 끝없이 질문과 해답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정직하시다, 진실하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