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망에서 영생으로

[知言3]

by trustwons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15. 사망에서 영생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 1:27)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쪽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손수 빚으신 그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온갖 나무가 땅에서 자라게 하셨다.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창 2:8,9)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해 말씀하셨다. “너는 이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17)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네게 네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네게 명령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라고 제게 주신 그 여자가 그 나무열매를 제게 주어서 먹었습니다.」(창 3:11,12)

「가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고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고 셋은 아담의 아들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누가 3:38)

「그러나 아담시대부터 모세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죽음이 왕 노릇 했다.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다.」(로마 5:14)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왕 노릇했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이다.」(로마 5:17)

「곧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을 것이다.」(고전 15:22)

「기록되기를, “첫 사람 아담은 생명이 있는 영이 됐다.”라고 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됐다.」(고전 15:45)

「무덤들이 열렸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다.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마태 27:52,53)

「그리고 빨리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 그곳에서 너희가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라. 자,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다.」(마태 28:7)

「그러자 그가 말했다. “놀라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냐? 예수께서는 살아나셨다. 이제 여기 계시지 않는다. 여기 예수를 눕혔던 자리를 보라.」(마가 16: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너희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누가 24:6)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마리아는 그 사람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말했다. “주여, 당신이 그분을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겠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하시자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어로 “랍오니!”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하여라.”」(요한 20:15,16,17)

------------------------------------------- 성경말씀 ----------------------------------------------


[다시 깨달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인간의 한 남자에 의해, 즉 처녀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라고 했다.(마태 1:20) 그리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누가 1:35)

이처럼 예수는 남자와 여자의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성령에 의해서 잉태되어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는 남자의 유전자가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7) 그러므로 첫 아담도 비록 흙을 취하여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아담은 어떤 인간의 유전자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누 3:38)라고 예수의 족보를 역으로 올라가면서 첫 사람,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사람인 아담은 선악의 나무 열매를 먹었기에 사망이 인간에게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는 인간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하게 된다. 왜 아담이란 의미를 쓰게 되는지에 대하여 말한다면, 첫 아담도 하나님이 친히 만든 사람이어서, 인간의 어떤 생물학적인 유전자에 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예수도 하나님의 성령이 친히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하였으니, 인간의 어떤 생물학적인 유전자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 아담이 있을 때에, 거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의 나무도 같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의 나누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으며,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의 나무 열매를 먹은 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에, 천사들로 생명의 나무를 지키게 하였다는 것이다. (창 3:24)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의 수명을 천년에 가까울 정도로 수명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한 아담의 후예들에게서도 역시 아담의 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그들도 영생하지 못하고, 유한적인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에 우리들도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죽음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유한적인 인생을 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을 하지 않는가? 즉 인간들의 탐욕이 그렇고, 인간들의 교만함이 그렇지 않나?

만일, 인간이 반듯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간다면, 그렇게 사악하게,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왜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지, 교만하면 안 되는지, 그것은 바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인간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 히틀러, 김일성, 네로, 진시황, 등등이 한 짓들이 무엇이었겠는가?

인간의 권력(權力)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왕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거부하고 세상적인 왕을 달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은 매우 실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말을 들은 사무엘이 마음이 언짢아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네게 하는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내가 그들의 왕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사무엘상 8:6,7)

노아 홍수 이전에는 사실 국가나 왕 같은 권력이 집중된 집단들이나 모습을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노아홍수 이후에 첫 국가를 형성하고 왕 같은 권력을 행세하였던 자가 누구이겠는가? 함의 후손 중에 나타난 영웅 니므롯이란 자가 아니겠는가?

비록 니므롯의 지배하에 시날평야 중앙에 높은 탑, 바벨탑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힘, 권력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높이 탑을 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권력아래 굴복된, 노예처럼, 즉 인간의 고유한 자유의지가 박탈된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인간들은 같은 언어끼리 뭉쳐서, 또는 힘이 강한 자에 의해, 그의 권력에 복종하는 양상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이러한 국가권력이 악에 속하는지 아는가? 쉽게 살펴보면, 동네 깡패들의 구조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직장에서 계급사회 등, 하물며 가정에서도 가장(家長)으로써, 공포의 가정을 만들게 되는지 뉴스에서도 많이 듣게 되지 않는가? 오늘날에 가정폭력이 어디에서 온다고 보는가? 지역사회에서는, 국가에서는, 반드시 인간들의 집단 속에는 권력이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국가는 국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정이나 사회는 윤리로 인간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AI로 ‘공자의 윤리사상’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인(仁)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인간내면에 도덕성을 형성하게 하고, 예(禮)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인간외면에 규범을 형성하게 하고, 그리고는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여, 올바른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인간들의 집단을 다스리고 유지할 수가 있다는 사상인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인간들의 집단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방법론인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 씨 조선에서는 중국의 유학을 종교적인 유교로 둔감해 백성들을 오 백 년간 지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교정신을 가진 자를 군자라고 하고, 못 가진 자를 천민(賤民), 또는 민초(民草)로 취급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를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나, 천민은 글을 배워서는 안 된다는, 인격적인 인간과 짐승 같은 존재로 나누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실 인간사회를 살펴보면, 선악의 논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진다. 즉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나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란 인간을 인본주의적인 바탕에서 본 사상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은 인간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교육제도를 국가와 사회 속에 투입시킨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인간집단, 인간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어간다,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사회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교육할 진정한 의미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양육하는 것에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어미는 새끼를 양육한다. 그리고는 독립하도록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 세상은 첫 아담에 의해서 선악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인간사회는 항상 불안과 갈등과 고통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가인과 아벨은 해마다 하나님께 재물을 받쳐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인의 제물을 응답하지 않았으며, 동생인 아벨의 제물에는 응답을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가인은 분노했으며, 그 분노가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동생에게 향한 것이다. 결국은 어찌 되었겠는가? 돌로 동생을 쳐 죽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시작에 있어서 일어난 비극이 아닌가? 이러한 인간갈등이 빚어진 세상이 인간세상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인간 세상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냈을 때에,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내용이 거룩한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비참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나온다. 즉 인간세상이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첫 아담을 통해 인간세상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그분은 가인의 핏줄이 아닌, 셋의 핏줄에서 노아의 때에 인간세상을 물로 멸하시고, 그리고 노아의 제단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창 8:21)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홍수 이전보다 더 악하다는 것을 말하신 것이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악하다, 즉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오늘날에 이 인간세상이 말이다. 얼마나 악한지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파리라고 해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인간들을 파리보다 못하게 무자비하게 죽일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러고도 마음이 편히 잘 수가 있을까? 조선시대에 백정을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았다. 왜? 그들은 도살업(屠殺業)에 종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에 의해 도살된 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이것이 인간들이 생각하는 선악의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세상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끝없이 간섭주관하시면서 노아와 같은 사람을 의롭다 칭하시고는 그를 구원하셨으며,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의롭다 여기시며, 인류의 구원의 통로를 이루어 가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두 번째 아담으로서 오셔서 영생의 길을 만드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것도 아담에게, 에녹에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그리고 선지자들에게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가 오심을 말이다.

그래서 예수는 30세가 되어서 구원의 활동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 인생을 ‘예수의 공생애’라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첫 아담에 의해서 사망이 찾아왔고, 예수에 의해 영생이 열린 것이다. 그 귀한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할 일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때에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어둠이 덮어졌지만, 그때에 무덤들이 열렸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냈다고 했다. 즉 죽음의 담이 무너지고 영생의 문이 열린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첫 아담에 의해 사망의 권세 붙잡혀 있던 인간들이, 둘째 아담인 예수의 부활로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먼저, 예수 부활직후에는 무덤에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하였으며, 이제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부활의 복음이 전해지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깨달음은, 믿다가 죽은 후에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무덤 속에 있다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한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2, 53절의 말씀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32.Genesis(창세기)-15장1절~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