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백수 십 년 된 노인의 그림자

[안데르센 동화의 창작 편]

by trustwons

9. 백수 십 년 된 노인의 그림자


이른 아침에 한적한 공원에 있는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노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의 한 구석에 보다만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어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노인은 손에 있던 커피가 들어있는 보온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벤치에 한 팔을 걸치고는 푸르른 공원에 잔디들을 둘러보았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어 적적하였다. 그래도 노인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서 다시 벤치에 있던 책을 들었다. 그리고는 책의 글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듯이 읽고 있었다.

사실 노인이 읽고 있는 책은 누가 쓴 유명한 분의 책이 아니었다. 노인이 하나하나 노트북을 열어서는 노인의 생각들을 써나간 글들을 모아 자신이 직접 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책은 노인이 직접 책의 제목을 정해놓은 ‘내 삶을 시로 읽다’라는 부제를 붙인 시집인 「나는 살고 있구나」 란 시집이었다.


「나는 살고 있구나!

오늘도 숨을 쉬고 있지

숨 가쁘게 산을 오르고서야

덧없이 고마움이 들어

씩씩대며 숨을 들이쉰다.

...............

나는 살고 있구나!

오늘도 마포대교에 왔지

걸음마다 난간에 문구들이

얼마나 힘드시냐고

속삭임에 깊은숨을 쉰다.


나는 살고 있구나!

오늘도 편지를 쓰고 있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고 싶다! 사랑한다!

애절한 마음에 숨을 길게 쉰다.」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산들 흔들리는 노인은 한절의 시구를 읽고는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덧 하늘 위로 온 해는 노인의 그림자를 짧게 그려놓았다.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다시 책장을 넘기며 읽고 있었다. 봄 날씨인지라 흰나비랑 노랑나비가 노인의 주변을 맴돌 듯이 나풀나풀 춤추듯이 날아들다가 멀어졌다가 한다. 노인은 책에서 눈을 떼고는 나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 너희들이라도 내게로 다가와 놀아주는구나!”


노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에는 공원에 있는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직원은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노인도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흔들어주었다. 이 공원은 노인이 직장을 그만두고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거의 십 년을 함께 해준 노인의 유일한 장소였다. 비록 머리를 하얗게 백발이 되어있어도 아직은 정정한 노인은 육십이 넘어서는 날에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아 졸지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든 활동을 멈추게 하는 제도가 생겨났을까? 고전에 글들을 읽어보면, 그렇게들 말한다. 인생의 고달픈 생활을 그만하시고 편히 쉬셔야 한다고 하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인간의 삶에 배려해줘야 한다고들 했었던 건가? 마치 신의 명령인 듯이 사상과 이념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들로 전통이니 문화이니 하면서 한 인생의 일부를 잘라놓아 그만 쉬라고 했던가?

노인은 종종 낮은 산을 등산하기도 하였다. 젊었을 때에는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거침없이 홀로 산행을 해 온 노인이었다. 이제 노인은 낮은 산이나 둘레 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하며 산을 가까이하려고 했다. 이제는 칠십을 넘어서다 보니 노인은 낮은 산이라도 오르다 쉬고 또 오르다 쉬고 한다. 그럴 때마다 노인은 앉아 쉬는 곳에 있는 늙은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면서 노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저 늙은 나무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그러니 젊은 나무들도 든든히 잘 자라고 있는 거지. 때로는 자신의 몸마저 내주어 거름이 되게 하기도 하고 수많은 벌레들에게도 거침없이 내주어 그들의 먹이가 되어주고 있구나. 참으로 부럽군!”


노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에 젊은 부부가 씩씩하게 앞서 가는 뒷모습을 노인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혼자 말하듯이 말했다.


“그래, 좋은 시절이지~ 옛 노래가 생각이 나네.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인은 그렇게 옛 노래를 불러보면서 뭔가 씁쓸함을 느꼈다. 그래서 일찍이 인생을 마감하도록 정했나 하는 생각을 노인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그만 둘레 길을 걷고 돌아서 집으로 갔다.

그렇게 노인은 또 하루를 보내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노트북으로 쓰고 있었다. 이제는 노인은 사랑하는 딸에게서 선물로 받은 손녀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아장아장 걷던 손녀는 제법 잘 걷는다. 이제 손녀의 나이도 다섯 살이 되었던 것이다. 노인은 손녀가 올 때마다 함께 놀아주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함께 공원에도 놀러 가고는 하였다. 노인은 공원에서 이리저리 뛰며 노는 손녀를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그래, 아직 나는 할 일이 있는 거야. 그래서 하늘 아버지는 내게 건강을 주셨던 것이지.”


노인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에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그래그래 너도 바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 날, 노인은 눈이 수북이 쌓인 공원에 손녀와 함께 왔을 때다. 노인은 손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 사람도 없었다. 오직 노인과 손녀뿐이었다. 둘은 신바람이 났다. 노인은 눈사람의 몸통을 만들었고, 손녀는 눈사람의 얼굴을 만들었다. 그리고 큰 눈덩이 위에 작은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솔잎으로 눈썹도 붙이고, 솔방울로 눈코를 붙이고 나뭇가지를 가져다 손도 붙이고 했다. 이처럼 눈사람을 손녀와 함께 만들면서 노인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던 성경구절이 생각이 났다. 이때에 손녀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할부지~ 우리가 눈사람을 만들었지? 멋지다!”

“그래, 우리가 사람처럼 눈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처럼? 그래서 눈사람이구나!”

“그럼,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지?”

“하나님!”

“그래, 하나님은 사람도 그렇게 만들었지.”

“난, 엄마한테서 태어났는데?”

“그래, 넌 엄마한테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지.”

“나도? 와~ 난 하나님의 딸이네!”

“그럼, 봐~ 이 눈사람은 너랑 할아버지랑 만들었지?”

“응.”

“하나님도 그렇게 예수님이랑 함께 사람을 만들었단다.”

“알겠다! 나랑 할부지랑 눈사람을 만든 것처럼 이지?”

“허허, 우리 손녀 최고야!”


또 때로는 노인은 손녀를 데리고 박물관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고, 유원지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두루 자동차를 타고 많이 다녔던 것이다. 이처럼 노인은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하나하나 노트북으로 동화처럼 이야기로 남겨놓았다.

노인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난 후에도 백수의 생활을 십 년이란 세월로 보내었지만, 손녀와 함께 지내었던 즐거웠던 일들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같은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갔다. 어느덧 손녀는 자라서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멋지게 자란 손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대견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노인은 손녀를 위한 기도만은 계속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노인은 오래전에 읽었던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Letters to Lily)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노인은 갑자기 미소를 지으시며 노트북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한 기도문’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실은 노인은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하늘 아버지,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노인은 다시 돌아와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에 써놓은 글씨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노인은 손녀를 생각하며 첫 기도문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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