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연예인들 가운데 왜 중독자가 많을까? 저들은 자기들의 인기에 명멸하는 스타들이다. 그런 외적인 인기 관리에 전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다보니 순수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팬들은 인기가 있을 때까지다. 명성도, 젊음도, 돈도 없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나에게 그토록 열광하는 팬들은 나 때문이 아니고 명성이나 미모, 돈, 그것 때문이다.
오늘 너무도 많은 사람이 마치 무대에 선 배우들처럼 자기 자신을 감추며 인기 유지 차원에서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관계의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막이 내리면 그 뒤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관찰이다.
(월간 시조 2013년 3월호/ 윤원길 글)
직장에서 은퇴한 나는 모처럼 사람들이 많은 종로 거리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바쁘게 다닌다. 그 속에 있는 한가한 나는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처럼 느꼈다. 그들에게는 아무 관계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무관계적인 것을 느꼈을까? 나는 이 사회에서 버려진 아니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은퇴한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또는 죽음을 택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관계의 흐름 가운데 흘러가는 일시적인 존재일 뿐인가? 윙윙 돌아가는 기계 속에 한 부품처럼 쓰이다가 언젠가는 버려지는 생각 없는 부품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다. 결코 인생은 허무한 것도 아니며, 스쳐 사라지는 바람도 아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도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라고 강조를 했다.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의 창조자는 무모한 짓을 했거나 무지한 일을 벌인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이 진리일면, 반드시 이유가 있거나 뜻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농부가 추수할 날을 기다리며 농사를 하듯이 말이다. 그것을 깨닫는 자만이 창조주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수가 말한, “너희는 진리를 알라.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아니 희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