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읽어도, 읽어도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32. 읽어도, 읽어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인간들이 하는 것이란 모두 다 헛된 장난이에요. 모두 공(空)이 고, 무(無)이고, 허(虛)이고 ……. 「솔로몬」이 그랬나요? Vanity of vanities : all is vanity.』

『그랬지.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랬지.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만물이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 지혜의 왕, 예루살렘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랬지. 유명한 말이다,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를 한문으로는,

空之又空, 虛之又虛 (공지우공, 허지우허)

라고 그러지. 「空之又空, 虛之又虛!」 참 멋있는 표현이다.』

백운암에는 어느 절에나 있는 것처럼 찬 샘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白雲庵>이란 참 좋은 이름이라고 하시면서 돌 위에 앉으시고는, 우리들이 올랐던 산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창조 이래 유구 세월은 흘러 흘러 그 몇 날 며칠. 그동안 이 봉우리를 찾아오고 간 사람은 또 기천· 기만. 오늘 우리들도 그 무수한 사람들 중의 두 사람으로서 지금 이 산에 올랐다 내려가려고 하고 있다.』

이때 내가,

『참, 이 고개 위를 오르고 내린 그 사람들은 그 후 다 어떻게 됐을까요? 그 사람들이 누구며,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 기쁨 또는 설음을 안고 왔다 갔는지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 후 다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이 땅 위에 아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라고 했더니, 이때 선생님은, 선생님이 깊은 사색에 잠기실 때는 흔히 하시는 것처럼 아득한 시선을 던지시면서,

『왜? 마음의 적막을 느끼나?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몹시 인생의 적막을 느껴본 때가 있다. 땅이 꺼질 듯이 한숨도 쉬어보고 하늘이 무너질 듯이 탄식도 해봤다.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잊었으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는 두 눈에 눈물이 스며들곤 하였다. 해 아래 인간의 수고가 무슨 유익함이 있는고? 헛되도다. 바람을 잡는 거와도 같도다였다.』

가끔 눈을 감았다 떴다 하시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검은 두 눈동자 속에는,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무언지 모르게 신비로운 힘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날, 그 순간 말씀하고 계시던 선생님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유달리 그런 힘이 강한 것처럼 느껴져 못 견디었다. 아마도 그것은 영겁을 응시하는 동광(瞳光) 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혼자 생각해 봤다. 나는 그때의 선생님의 눈동자를 일생 잊을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은 일어나 천천히 내려오시면서 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계속하셨다.

『지금은 안 그러세요?』

『지금은 안 그렇다. 동요하던 인생관이 지금은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았다. 과거에는 고독에 울었지만 지금은 고독에 울지 않는다. 과거에는 무상한 인생을 해결할 길은 자살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인생무상과 유형자필멸(有形者必滅)과 만물유수(萬物有壽)의 허무감에 젖어 헤어날 줄을 몰랐다.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를 누구보다도 찬양했다. 그리고 그 허무감에서 벗어날 길은 비록 고식적이나마 불교적인 인간도피의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나는 달빛을 밟으며 대문을 나섰다. 「삼계만령십류고혼」(三界萬靈十類孤魂)의 외로움을 안고 산으로 들어갔다. 절을 찾았다. 눈을 감았다. 목탁을 쳤다. 열심히 쳤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아 사바아…….》백팔번뇌를 벗어나려고 만뢰(萬籟)가 구적(俱寂)한 밤, 이슬을 맞으며 쳤고, 서리를 맞으며 쳤다. 그러나 다시 내려왔다. 과거에는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미운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복을 빌고 싶다. 과거에는 남에게 속고는 분하여서 흔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속음은 속임보다 낫다 고 생각하면서 남을 속여야 하였던 그에게 도리어 동정이 가기도 한다. 과거에는 며칠을 두고 노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해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행복이란 남이야 어찌 됐건 내가 배부르고, 내가 잘 입고, 내가 잘 살면 그만인 것 같이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만일 사람이 서로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노력은 반드시 서로 충돌하게 되므로 도저히 행복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이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함보다는 보다 더 많이 이성과 양심의 명령인 사랑과 선으로써, 짧은 인생의 목숨이 다하기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남을 위한 봉사를 함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맹목적인 인간의 운명 앞에 견딜 수 없어 오뇌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지금은 이 우주 간에는 한 <의지>가 있다는 것과, 그 의지는 <신>이라는 것과, 그 신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리고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과 민족의 영고성쇠와 국가의 흥망은 그 여호와 하나님의 지정하신 공의 가운데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기 때문에, 이제는 살아도 불안이 없고 죽어도 두려움이 없다.

사람들은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보여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눈을 밝히시고 믿음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우리 눈에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1분 간에 열여덟 번이나 우리의 폐장 속을 들락날락하는 공기를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전파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거미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전파를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밤하늘의 별이 우리 육안으로 6천 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 밖에의 부지기수의 별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인간의 눈이란 불완전한 것이다. 너무 멀어도 보지 못한다. 너무 가까워도 보지 못한다. 너무 작아도 보지 못하지만 너무 커도 보지 못한다. 너무 어두워도 보지 못하지만, 너무 밝아도 보지 못한다. 눈뿐만이 아니라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이 그렇다. 귀를 보라. 방앗간의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는 들어도 우주가 회전하고 있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 가지에 부는 바람을 보고 알 수 있다고.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참으로 그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같은 입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또한 그들의 어리석음에 보다 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나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마음의 양심을 통하여 나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나는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을 통하여 나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신 하나님에게 울고 싶도록 감사한다.』

높은 하늘에선 열 시간 나는 동안에 5분밖에는 땅에서 쉬지 않는다는 독수리 한 마리가 크게 고(孤)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산골짜기 우리가 걷고 있는 발부리 앞에는 어느덧 걸음마다 어스름 땅거미가 소리 없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 백운대의 환혼에서>


~ b ~


그토록 정무심 선생이 임석영 선생과 함께 황혼의 때에 백운대를 산행하면서 나눈 대화들은 마치 나도 거기에 함께 있는 느낌으로 읽었다. 그 후에 나도 홀로 백운대를 수 없이 오르고 내려왔다. 비록 내 옆에는 임석영 선생님도 없고, 대화도 없었지만, 나는 홀로 산행을 즐겼다. 역시 임 선생님도 젊은 시절에는 많이 방황하였었구나. 나는 더욱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역시 나도 사춘기 시절에는 많이 방황하였기 때문이다. 못된 것은 다 했다고 할 정도였지만, 여자만을 범하지 않았다.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너는 세상에 모든 것을 배워도 도둑질하는 것과 여자를 범하지는 말라고 하셨던 것이 내 마음을 지배해 왔었던 것이다. 나는 방황의 끝에서 「젊은 날의 노오트」가 인연이 되어서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독서로써 위로를 찾았던 것이었다. 여기서 임 선생님의 고뇌와 믿음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신 두 분은 어찌 되었겠는가? 다음날 새벽에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랴부랴 피난길로 갈 때에 임 선생님을 찾아온 지영미는, 결국은 세 사람은 피난길에 나서지 않았고, 인민군과 반동분자 숙청의 바람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선생님의 집 천장 속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후퇴하는 인민군에 잡혀, 사실은 임 선생님의 가까운 학교 동료가 밀고함으로써, 임 선생님은 제자 지영미와 함께 북으로 끌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글 속에서 임 선생님의 초연한 모습을 연상할 수가 있겠다. 선생님은 믿음으로 생애를 마감하였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역시 제자 지영미도 선생님의 뒤를 따라갔으리라 믿어진다. 멀지 않아 하늘나라에서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진주를 발견하고 논밭을 사듯이, 참으로 진실한 사람을 보면 진주처럼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아서요. 더욱 요즘 같은 세상, 거짓이 판치고 거짓이 의를 입고 행세하는 시대에는 더욱 진실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그런 분을 발견할 때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과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왜 사람들은 선하게 살기를 힘들어할까요? 그 마음속에 교만과 탐욕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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