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섬 소녀의 이야기 편]
제법 바람이 차갑다. 아침엔 진눈깨비가 내려왔기에 시카고대학교 교정에는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무직한 가방을 멘 소녀는 기숙사를 나오다 말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두툼한 반코트를 입고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다시 기숙사를 나왔다. 칼바람이 빌딩 벽을 박차고 불어와 소녀의 뺨을 야무지게 내리쳤다.
“아이코~ 뭔 바람이 이리 매섭냐?”
소녀는 가방을 멘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소녀의 발걸음은 매우 빨라졌다. 마치 바람과 경주라도 하려는 듯이 보였다. 시카고 대학교 도서관을 들어서면서 소녀는 뒤돌아 쏘아보며 말했다.
“네까지 것에 내가 기죽을 줄 알았냐?”
소녀 소라리자는 곧바로 자리를 잡고, 항상 그러했듯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소녀는 가방 속에서 책과 노트북을 꺼내어 표시해 두었던 부분에 대해 열심히 기록하고 쓰고 있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소녀는 꼼짝을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쓰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에 지아가 도서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아는 창가부터 훑어보고 있었다. 아마도 지아는 소라리자를 찾았는지 모른다.
“역시 창가에 앉아 있군.”
지아는 곧바로 창가에서 뭔가 몰두하고 있는 소라리자에게로 다가갔다. 지아는 바로 소녀의 테이블 앞에 서서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한참이나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 소라리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소라리자! 넌 내가 안 보이니? 어찌 이럴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서 있어야 하니?”
“응? 자아야~ 반가워!”
“웃긴다. 엎드려 절 받기네. 넌 뭘 했다 하면 몰두하는 거야!”
“몰두라니, 집중하는 거지. 하여간 미안하다. 과제물 제출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너, 점심을 했니?”
“점심? 그렇게 됐구나!”
“너, 정말 한심하구나! 기다려 내가 먹을 거 가져다줄게.”
지아는 소라리자의 테이블 앞에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소녀는 여전히 뭔가를 노트북에 쓰고 있었다. 잠시 후에 지아는 커피와 햄버거를 가져왔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으면서 말했다.
“자, 좀 쉬고 이거 먹어!”
“넌?”
“난 먹었지. 지금 몇 신줄 알아? 난 커피면 돼!”
“고마워!”
소녀는 노트북을 덮고 지아가 가져다준 햄버거와 커피를 마시며 지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에 소녀의 가방 안에서 폰이 울렸다. 지아는 소녀의 가방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전화가 왔나 봐!”
소녀는 한 손에 햄버거를 들고 다른 손으로 가방 안에서 셀 폰(cell phone)을 꺼냈다. 결국 소녀는 햄버거를 내려놓고 폰을 열었다.
“파파!”
“오늘 집으로 올 수 있겠니?”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응, 광일 아빠가 사무실에 찾아오셨단다. 함께 집으로 갈려고 하는데, 네가 왔으면 해서.”
“어머, 사무실에 광일 아빠가 오셨어요? 일찍 갈게요.”
“쌩크, 그럼 저녁에 보자!”
“파파 전화야?”
“응, 오늘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
“왜?”
“광일오빠의 아버지가 찾아오셨데.”
“광일오빠도 같이?”
“당연하지.”
“좋겠다. 나도 끼면 안 될까?”
“음……. 좋아! 같이 가자.”
소녀는 지아와 함께 도서관을 나와 소녀의 차로 파파의 법률사무소로 갔다. 사무소에는 광일오빠가 혼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소녀와 지아는 파파의 법률사무소에서 광일오빠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소녀와 지아 그리고 광일오빠는 소녀의 차를 타고 샴버그에 있는 집으로 왔다. 이들은 집안으로 들어서자 벌써 파파와 광일의 아빠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소녀의 마더 엘리자는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맘~ 우리가 왔어요.”
“오~ 소라리자! 지아도 왔구나? 광일이도 왔군요.”
“안녕하세요!”
소녀와 지아 그리고 광일은 엘리자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거실에 계신 스미스와 광일이 아버지께로 가서 인사를 하고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스미스와 광일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때 스미스가 혼자 말하듯 말했다.
“애들이 곧 내려오겠죠.”
그랬다. 스미스의 말대로 애들은 곧 내려왔다. 스미스와 광일 아버지 앞에 소파에 앉았다.
“소라리자를 두 번째로 보네요. 호텔에서 보고 오늘이 두 번째지요.”
“제가 집으로 모시려고 했었는데, 파파가 집으로 모셨네요.”
소녀는 스미스를 쳐다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스미스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광일이 아버지께서 내 사무실에 오셨지. 그렇잖아도 언제 찾아봬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오셨잖니? 그래서 집으로 모신 거야.”
“저도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특히 소라리자를 광일이 할머니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제서 시간이 있었네요. 그리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광일의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당기면서 말했다. 이때 엘리자가 애들의 커피들을 쟁반에 담아 오셨다. 엘리자는 커피를 내려놓으면서 광일의 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잘 오셨어요. 우리도 광일을 만나고는 광일의 아버지를 뵈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엘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라리자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좀 있다 와서 도와줘!”
소녀는 엘리자의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는 식당으로 가고, 소녀와 지아 그리고 광일이는 스미스와 광일의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지아, 부모님은 잘 계시지? 만나 뵌 지가 꽤 됐구나.”
“네, 저의 부모님은 늘 그러시죠. 뭐~ 항상 낙천적이셔요.”
“부럽군! 두 분 참 멋쟁이시지~”
지아와 스미스가 서로 대화를 나누자 소라리자가 끼어들었다.
“파파! 그러지 말고 한번 찾아가요.”
“그럴까? 농장 일은 잘 되시겠지?”
“네, 말도 들었어요. 각자 하나씩 타도 될 거예요.”
“어머, 그래? 그땐 말이 두 마리뿐이었는데……. 빨리 타고 싶다.”
소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 타는 폼을 하고는 상상하며 말했다. 모두들 웃었다.
“소라리자는 말도 탈 줄 아는군요! 참 재간도 많아요.”
광일의 아버지는 부러운 듯이 말하면서 광일이를 바라보았다. 광일은 눈을 휘둥그레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절 보셔요? 저도 배우면 잘 타요.”
“아니, 내가 못 타니깐 한 소리지…….”
“아버님도 배우시면 잘 탈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지아와 소라리자는 합창하듯이 동시에 말했다. 스미스도 광일이도 웃고 말았다. 그러자 소녀는 지아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조금 후에 대화를 나누던 광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광일의 아버지가 말을 했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가 거북스러웠겠죠? 제가 우리 아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었지요.”
“그게 아닐 겁니다. 소라리자랑 있고 싶은 거지요. 제가 같이 일을 해보니 매우 영특합니다. 책임감도 있고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보다 제 아들을 잘 아시는군요.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렇게 잘 키우시지 않았습니까? 머지않아서 둘은 커플이 될 겁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대 환영이지요. 둘이 잘 됐으면 합니다. 광일이도 소라리자에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그래요? 저도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서로 남매지간이라고 말하지만요.”
곧이어 저녁식사가 준비되어서 모두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응접실에서 늦도록 이런저런 대화를 가진 후에 광일이와 광일의 아버지는 소녀의 할머니가 쓰시던 방에서 자고, 지아는 소라리자와 함께 이층에서 잤다. 엘리자는 잠자리에서 스미스에게 말했다.
“엘리자, 오늘 수고 많았어요. 저녁식사가 일품이었어!”
“다 우리 소라리자와 지아가 도와준 때문이지요. 당신은 멋져요. 광일의 아버지를 모셔올 생각을 하셨다니 너무 잘하셨어요.”
“싶지 않았지, 처음엔 사양하시더라고…….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으면 된다더군. 그래서 강제이다시피 해서 모셔온 거지.”
“잘했어요. 그렇잖아도 광일 부친을 뵈었으면 했어요.”
“당신도 그 생각을 했었어? 당신도 눈치챈 거군.”
“꼭 그런 생각인 것은 아니고……. 할머니의 고향친구 손자이잖아요. 허니 남 같지는 않아서요.”
“그래요. 지금 같이 계시지?”
“네, 노후에 얼마나 좋아요.”
“우리 한번 찾아뵐까?”
“정말? 좋죠! 곧 기대해요.”
엘리자와 스미스는 밤늦도록 침대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했다. 점점 밤은 깊어지고, 소녀도 지아와 모처럼 함께 침대에 누워서 쉽게 잠들지 못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잠들었다. 광일 와 광일의 아버지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자, 소녀는 소라 섬처럼 일찍 일어나 발코니로 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렇게 소라 섬을 잊지 않고 있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던 소녀는 무심코 발코니 아래를 바라보았다. 집을 나와 숲길을 걸어가시는 광일의 아버지를 소녀는 발견을 했다.
“어머, 광일의 아버지? 산책 가시나?”
소녀는 벌떡 일어나서는 황급히 이층에서 내려와 집을 나와 광일의 아버지를 쫓아갔다. 새벽 햇살에 판타지 같은 숲길에 걸어가시는 광일의 아버지의 뒷모습에 소녀는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점점 다가가자 광일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시고는 소라리자임을 알고는 반기었다.
“오~ 금소라! 웬일로 일찍 일어났네?”
“아버님은 어찌 일찍 나오셨어요?”
“응, 난 아침 일찍 산책하는 운동을 해왔지. 종일 하늘을 날다 보면 이렇게 땅을 밟고 걷는 게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어머, 아버님도요? 저도 새벽 해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제게 기쁨이 되는 줄 깨달았어요.”
“광일의 할머니로부터 많이 들었지. 소라가 믿음이 크다고 말이야.”
“할머니께서요? 전 광일오빠의 어머니를 잊지 못해요.”
“너도 그랬니? 나도 야.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단다.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단다.”
“어머, 저도 그랬는데……. 어머니를 뵈는 순간 하늘 아버지를 뵈는 기쁨 같았어요. 그래서 자꾸 생각나요.”
“아~ 역시 그랬구나! 할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군.”
“할머니의 말씀이라니요?”
“묘한 말씀을 하셨지. 광일이 엄마가 세상을 떠날지라도 슬퍼하지 말아요. 머지않아서 위로해 줄 소녀를 만나게 된다오.”
“그게 무슨 말이죠?”
“나도 처음엔 뭔 소리인지 몰랐단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할머니의 말이 아니었던 거야. 나중에 할머니도 잊었더군.”
“그럼, 천사가?”
“아니지. 베드로도 예수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에 예수는 네가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고 하지 않았니?”
“맞아요! 아버님도 어찌 그걸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할머니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군.”
“뭐가요?”
“아니야!”
“아버님도?”
“너를 보니 광일의 엄마가 생각나는구나!”
“전 아버님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어떻게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하지도 못하시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어요?”
“그렇지? 나도 몰라! 난 그저 내 어머니를 생각하였던 것이었지. 돌아가신 지 3 개월이 된 쯤에 광일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거든.”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내 어머니? 날 홀로 키우셨지.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오셨지.”
“아~ 저도 그래요. 내 어머니를 상상하다가 동굴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후에 어머니를 뵐 수가 있었어요.”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고? 어떻게?”
“새벽하늘에서요. 광일오빠의 어머니도 뵈었는데요.”
“광일의 엄마도? 어떻게 알 수 있었어?”
“왜 몰라요? 전 광일의 어머니를 생전에 뵀었잖아요. 저의 어머니는 사진에서 뵀고요. 그리고 대화도 했는데요.”
“그랬어! 나도 보고 싶은데…….”
“지금도 보고 계실 거예요.”
광일의 아버지는 소녀의 말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벽하늘은 더욱 선명하고 푸름이 진했다. 두 사람은 어느덧 숲길을 걸어서 호숫가에 이르렀다. 소녀는 평소에 자주 와 앉았던 곳을 발견하고는 광일의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님, 여기서 잠깐 앉았다가 가요.”
“그러자. 여기 누가 왔던 자리 같구나?”
“네. 맞아요. 제가 있던 자리예요.”
“여기서도 넌 새벽마다 여기 오니?”
“네, 저의 하루 시작은 새벽 해를 보는데서 시작해요.”
“그래, 할머니도 그리 말씀하셨지. 새벽마다 해 뜨는 것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고 말이다.”
“절 말씀하신 거네요?”
해가 어느덧 하늘에 오르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지아도 광일도 엘리자도 스미스도 모두 일어나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아는 소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치사하다! 나도 깨우지~ 혼자만 살짝 일어나 가냐?”
“부탁을 했어야지. 그럼 깨웠지!”
식탁 주변에 모두 둘러앉아 즐거운 아침식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