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인생-3

[한 장애인을 위한 소설 편]

by trustwons

3. 인터넷 카페에서


잠시 일을 멈추고 혼자서 점심을 하게 된 철민은 누나가 준비해 놓은 야채 셀러리와 샌드위치를 먹은 후 커피를 들고 창가에 가 앉았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초목들이 왕성한 달이 사월이 아닌가. 산과 들에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이 사월이다. 생명이 생동하는 달이 사월이다. 어찌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철민은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바다가 더욱 짙푸르고 간간이 사람들이 해변을 거니는 모습들이 보인다. 따스한 햇볕이 대지를 덮으니 꽁꽁 얼었던 모든 것들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깊은 잠에 들었던 뭇 생물들이 기지개 켜며 일어나는 계절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공허함이 커지는 계절일 것이라고 철민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이성을 잃는 시기가 사월이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사월은 지루한 달이라고,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는 것이겠다고 철민은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그도 역시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무의미함을 느끼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은 달이었던 것이다. 특히 사월은 고객이 적은 달이라서 그에게는 여유가 많은 것이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는 컴퓨터 앞에 가 앉았다. 그리고 세계의 여러 나라에 알게 된 친구들과 대화를 갖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한때는 젊은이들이 채팅이니 대화방이니 하면서 피시방을 찾아다니며 종일 채팅하며 무의미한 시간과 불건전한 관계로 물의를 일으킨 것을 신문지상에서 철민은 많이 보았었던 것이다. 이를 잘 아는 철민은 새로운 인터넷 카페를 구상하였으며, 이를 개발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접목을 시켜놓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카페를 선호하게 되었고,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바람직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채팅과 대화방의 문제점은 상호 간에 신분이 은폐되어 있으니 건전한 대화보다는 불건전한 대화로 음란하고 무책임한 대화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대화의 방식도 격식도 없고, 예의도 없이, 폭언과 은어와 비어와 같은 글들이 난발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것을 잘 아는 철민은 독단적으로 자신의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신의와 존중을 바탕으로 운영하도록 하였다. 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그는 새로운 대안을 제사하게 된 것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적 교류의 매너가 있었듯이 인터넷 사회도 역시 국제적 관계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의 매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 카페에서도 친구와 차를 마실 때에도 서로 잘 알고 있는 관계에서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카페에서도 서로 잘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감 안에서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가 되어야 하겠다고 철민은 생각을 하였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니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대화는 언제든지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상호 간에 신분이 밝혀져서 서로 신뢰와 공감이 이루어질 때에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철민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나름대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터넷 카페인 참카페(chalmcafe.com)를 통해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니터 좌측에 상대방의 얼굴과 그의 얼굴이 동시에 나타나고 간단한 인적 사항을 보여주게 된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함으로 화면에 글로써만 서로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멀리 미국 워싱턴에 사는 조나단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철민은 영어로 글을 보내고 영어로 글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가끔은 서로 중요한 정보나 자료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미국에 날씨와 마을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누고, 미국시민들의 생활에 대한 이모저모의 필요한 정보들을 보내주었다. 철민은 강원도 해변에 대한 일기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이곳 사람들의 생활 모습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들은 대화 중에도 서로 중요한 정보를 묻거나 알려주고 하였다. 시장의 흐름이라든지, 문화와 예술에 관한 것들도 서로 나누었다. 특히 경제적 실태, 예를 들면, 주유소의 기름 값 등, 알려주고 함께 공동 사업 등에서도 추진하기도 하였다.

철민은 한 번도 해외로 나간 적이 없었다. 단지 그는 여러 나라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각 나라의 도시환경이나 사람들의 생활 등의 영상을 받아 봄으로써 이해를 하였던 것이다. 워낙 철민은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의 영상들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소리는 듣지 못하여도 영상에 나타난 모습들과 실태들을 빨리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민은 쉽게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서로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많은 유익이 되는 거래들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반나절을 이처럼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외국의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바다는 더욱 짙푸른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는 듯이 바다로 내려앉으려고 하였다. 그는 잠시 대화를 끝내고는 다시 창가로 다가가 커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멀리 바다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철민에게는 습관이 되어버렸기에 철민의 누나가 창가에다 커피 머신을 설치해 두었던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그는 자신에게도 행복은 있다고 누구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 늘 들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철민은 씁쓸히 커피나 마시며 동해의 바다만 바라볼 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엄마의 품 안과 같은 넓은 동해바다는 그의 모든 생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주고 있다고 철민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출렁거리는 바다의 파도가 그에게 말을 해준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철민은 이런 동해바다의 파도소리를 듣지는 못했어도 파도치는 모습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 듣지 못한다더니 무엇을 듣는단 말일까? 꼭 입술로 하는 말을 귀로 듣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철민은 늘 생각해 왔었다. 철민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을 해왔다. 아니 철민은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했었다.

이른 아침에 바닷가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난 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기운을 돋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그의 마음에 간직해 두었던 희선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 그 여자 아이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모래사장, 작은 후진해변의 끝자락에 있는 후진항에 있는 몇 안 되는 슬래브 지붕들을 유심히 살피는 철민은 아침에 만난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파도치는 모래사장을 눈으로 더듬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고 가는 속에 꼬마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한 철민은 다시 커피를 따라 단숨에 마셨다. 방안 가득히 채우는 원두커피 향이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깜빡깜빡 컴퓨터에 장착된 점등에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철민은 물끄러미 컴퓨터에 점등이 빤작이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천천히 커피잔을 테이블에 놓고는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와 앉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독일인 친구 마르크가 소식을 보내온 것이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며 한국에 대한 소식 등을 물어왔다. 철민은 간단하게 이곳 소식을 독일어로 전하고 독일어의 글로 대화를 가졌다. 요즘은 독일에서도 한국 못지않게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노인들 사이에서도 인터넷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면서 독일 정부도 퍼스널 컴퓨터 활용에 대해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미 인도나 필리핀도 그리고 중국 등은 상당히 정부의 지원으로 젊은 인력을 아이티(IT)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국제 간에 무역산업으로 국가의 국력이 좌우되었었지만, 이제는 국제사회도 많이 변화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세계화의 바람(A Globalization Wind) 속에 정보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력은 정보활동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자 정보기술에 필요한 인력이 상당히 부족함을 인지한 국가들은 인력양성과 인재확보를 위한 국제적 경쟁이 불붙듯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자동차 수출이니 봉제품 수출이니 하면서 저임금 상품들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달러 확보가 바로 국력을 상징한다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모든 정보가 상품화되면서부터 아주 작은 정보라도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상품화가 되어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80년대부터 일본은 이미 문화 정보의 가치를 깨닫고 젊은 세대들에게 해외여행을 권장하면서까지 하여 음성적으로 지원해 온 것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다른 국가들의 이모저모의 정보들을 확보해 놓았으며, 문화의 저변에 깔려있는 정보들을 이용하여 각 나라에 신선한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서 국제경제의 저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었다. 일본은 자원이 부족한 나리이며, 역사적 문화도 짧은 나리인 것이다. 그런 일본은 미래의 대국(大國)화를 위한 정책을 남몰래 실천해 온 것이었다. 그 정책 중에 하나가 각 나라의 문화 저변에 대한 자료 입수였던 것이었다. 이미 교육에 있어서도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외국어와 외국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교육을 하였으며, 수학여행을 해외로 보내어 일찍이 해외에 관심을 갖게 하였던 것이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통해 각 나라의 저변문화에 대한 정보를 본국에 보냄으로써 정부로부터 여행자금을 지원받아 계속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겉보기에 일본은 경제대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일본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것도 일본을 홍보하는 정책 중에 하나인 것이었다.

그러니 각 나라마다 일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간단한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고, 곳곳에 일본어로 표시된 이정표나 상품들이 눈에 자주 띄는 것이다.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일본 사람?’하고 묻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이러한 현상 때문인 것이었다.

이제 일본은 이런 정보자료를 확보해 놓고 인터넷 정보사이트로 또다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정보화 시대가 활성화되어 가는 이때에 철민은 다행하게도 인터넷으로 여러 나라의 언어를 터득한 덕분에 그리고 인터넷 검색 능력이 있어서 각 나라의 정보를 쉽게 찾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철민은 세계의 나라들에 인터넷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놓았던 것이었다.

이러한 철민의 능력이 서서히 세계정보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정보를 찾아주고 판매하면서 작은 사업을 하였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자 정계와 기업에서 그를 활용하게 되었으며, 세계의 친구를 갖고 있는 그에게는 역으로 해외로 정보를 팔기도 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정보에 대한 국가적 법률에도 상당히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철민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세계의 모든 정보와 소식들의 이야기들을 소리 없이 듣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미국과 독일뿐만 아니라 작은 나라에도 인터넷 친구들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에게 많은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종일 인터넷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철민은 배고픔을 느껴왔다. 배속에서는 어서 음식을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가 앉아 토스트와 커피로 허기를 메우려고 했다. 깜빡깜빡 파란 점등의 빛이 방안을 널리 비추었다. 시내에 나갔던 누나가 돌아온 것이었다. 스르르 방문이 열리면서 누나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손짓을 하고, 곧 식사준비를 하겠다고 손짓을 했다. 철민은 토스트 한 조각만 마저 먹었다.

어두움이 동해바다에 깔리니 또다시 해변에는 야간 등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해변의 차길에는 자동차들이 꼬리마다 옅은 불빛으로 선을 그리며 지나쳐 갔다. 철민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스쳐가는 자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유일한 여자 친구였던 희선이를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해변에서 만났던 여자아이를 생각하며,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항구 쪽을 바라보면서 그 여자아이의 집은 어떤 집일까, 그 아이의 부모는 어떤 분일까 하며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언젠 한 번 해변에 다시 가봐야지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추신>

1> 21세기에 들어와서 현재 중국의 대국정책으로 국제사회에 용(龍)머리를 틀고 있는 것도 일본의 대국화에서 정보를 얻었을 것이며, 일본처럼 중국인을 해외여행으로 파견해 정보를 입수하거나 중국화 포섭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비추어볼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위기돌파를 위해 COVID-19 시대를 연 것도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술이라 보아진다.

2> 80년도에 일본에 갔을 때에 공보관에서 컴퓨터로 한국에 대한, 정보가 한국에 있는 공공기관에 컴퓨터보다 더 상세하게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의 중국이 그럴 것이다. 온갖 수단방법으로 각 국가에, 특히 한국과 일본과 미국에 대한 정보입수를 이행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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