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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무엇인가?

[茶時]

by trustwons

인생은 무엇인가?


知希야,

사라져 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수없이 해 왔단다. 그러나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구나.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그것의 존재를 알고자 하였지만, 그것들의 가치는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구나.

오늘날에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다면, 소유를 위해 쟁취하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란다. 생물의 약육강식을 대자연의 섭리로 바라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한 삶의 철학으로 진화론을 믿게 되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런 철학의 바탕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인간사회를 살아가고 있단다.

어느 날, 은행을 다녀오던 중에 언덕 위에서 젊은 엄마가 태연하게 한 돌은 조금 넘은 아기에게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데, 아기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면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단다. 아기가 언덕을 오르는 것보다는 엄마가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주는 편이 훨씬 싶고 아기도 안심을 할 것이 아니니, 이 아기는 잠재적으로 약육강식의 원리를 배우고 있는 것이란다.

어느 여름날, 할머니가 큰 물통에 앉은 손녀를 목욕시키며 때를 밀고 있었단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일어나라고 하고 손녀는 싫다고 하며 서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단다. 그러자 할머니는 최후의 수단으로 손녀의 빰을 철석 때리며 잡아 일으켰단다. 손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어른들은 이 할머니처럼 쉽게 자녀를 무력으로 해결하곤 하였지. 그러나 이 장면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단다. 그것은 바로 강자론(强者論)이란다. 이와 같이 인간사회는 강자중심의 원리로 움직이고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단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관계에서 사소한 것들이 엄청난 인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란다.

그래서 인간의 사회와 가정에서 모든 일이 어른 중심으로 해결해 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단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해결방법을 보고 자라면서 강생약멸(强生弱滅)의 인식을 품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만단다. 그러니 초등학생 사회에서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려고 하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붙어살려고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강자는 약자를 괴롭힘으로써 지배하려고 하다 보니 폭력문제가 신문에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의 일부분을 행동할 뿐이란다. 아이들의 문제가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하다면, 어른들의 사회는 엄청난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바캉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로써, 음식 찌꺼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채, 한쪽 구석에서는 남자어른들은 화투를 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철 모르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많이 듣고 보았단다. 이와 같이 어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둔감하고 너그럽단다. 그러나 아이들의 행동에 있어서는 예민하고 냉혹하단다. 그 이유는 교육이라고 말한단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때이니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 어른들은 성숙한 사람이니 교육은 끝났다고들 말한단다.

도대체 어른의 성숙이 무엇인가? 성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숙한 인간들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들을 하고 있단다. 어른들에게서 배울 것이란 악(惡) 한 것뿐이지 않겠니?


앞에서 말한 요지는 바로 ‘인간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살다 보니,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고 동물을 마구 죽이고, 인간과 인간을 구별하려 하니 자연히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교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란다. 따라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인간사회는 계층사회를 만들고, 약육강식이라는 원리를 세워 사회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란다. 첨단기술을 도입하면서까지 인간관리의 사회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최상의 인간관리 사회라는 것은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란다. 21세기의 인간사회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로 나아가면서 경제우선주의와 복지국가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란다. 그리고 존재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와 생산의 가치로 변화해 갈 것이란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는 생산과 노동의 가치로만 판단하고 구별하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란다. 이러한 가치 기준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단다.

그러나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어 간다면, 존재의 가치보다는 생활의 가치를 우선 둘 때에 인간 개개인의 존재의 의미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도 그 생활의 가치에서 발전되어 계층사회나 지배사회가 아닌 공존과 공리의 사회, 또는 공공사회가 바로 이루어질 것이란다. 또한 동물에 대한 인식도 약육강식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조화로 보아지게 될 것이란다.

종교에 있어서도 ‘인간은 무엇인가?’에 둔 종교적인 인식은 인간이 신이 되기를 갈망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려는 제도가 발전하게 되지만, ‘인생은 무엇인가?’에 둔 종교적 인식은 신과 인간과 동물의 존재의 가치를 바로 인식하게 되고,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란다.

지희야, 깨달아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말함이 아니라, 생활(삶)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란다. 종교에서 예수를 닮는다는 것과 부처를 닮는다는 것을 계층적(階層的)으로나 지위적(地位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목사나 스님들이 신도들보다 위에 있는 것 같이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란다. 참 종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한단다. 그 진리란 존재의 가치를 말하지 않으며, 생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진리는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되고, 삶의 가치를 가르치게 된단다.

그래서 지희다애(知希茶愛)의 시를 통해 인생을 깨닫고 나면, 바람이 오고, 바람이 있는 사람은 참다운 사랑을 베풀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즉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서 녹차를 마시며 내면의 세계를 살펴보아야 한단다.

우리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스스로 인격을 높이고자 함이 아니라, 고상한 품위를 지니려는 것도 아니란다. 차를 마시는 것을 통해서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삶의 일면을 살펴보는 것이란다.



-차를 마시는 마음(茶心)-


해 저무는 산을 바라보며

마루에 홀로 앉아 차를 끓이고

다기(茶器)로 차를 마시니

차향이 가슴에 가득하구나.


검둥이는 마당 끝에 앉아

심심풀이 꼬리를 흔들고

은은히 들려오는 기적소리

지희(知希)는 하루를 달래는구나.


땅거미 내리는 마을

곳곳에 불빛 드러내고

피어오르는 연기에

오순도순 가족을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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