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47. 복음의 말씀을 안다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했을 때에 쫓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돼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4,15,16,1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니,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19,20,21)
~~~~~~~~~~~ Bible ~~~~~~~~~~~
본문의 마지막 말씀에,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벱전1:25)으로써,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는 많은 교인들이 얼마나 이 복음을 알고 깨닫고 있는지 심히 염려가 된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으나, 또한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고 넘어지게 하려는 언사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히 깨달았다고 볼 수 없는 베드로의 고백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복음에 대해 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썼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씀을 읽어보자.
“하나님께 순종하라. 네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14절)에서 얼마나 확신 있는 말씀인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이유를 확실하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겠다. 이전에 네가 무엇인 더 좋은 것인지 분별하지 못할 때,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 행한 일들, 악한 것들을 쫓지 말라고 했다. 그것도 슬그머니 되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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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듯이, 믿음의 시련과 연단으로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신앙생활을 추구해야만 한다. 한편 거룩한 삶을 살려면 세상을 두려움으로 나그네 인생을 살라고 베드로는 가르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들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아버지라 부르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세상을 살 때에 두렵고 떨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살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렵고 떨리는 삶을 산단 말인가? 이에 대해서 깊은 묵상을 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삶은 더욱 영적인 삶이 되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두려움으로 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망령되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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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앙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감을 갖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하나님과 교통함이 생겨날 때에 신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과 교통함을 이루도록 영적인 교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성생활인 것이다.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고 성령이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신앙생활이란 교회에 머물러 있을 때를 말하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의 말씀/ 최희원 글>
어느 날, 나의 사랑하는 지인들에게서 함께 ‘성경큐티’(Bible Quiet Time)를 하자는 부탁을 받고서, 홀로 해온 묵상노트를 책으로 묶어낸 것이 베드로전후서 말씀묵상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어둠이 가득하다. 얼마 하지 않고서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덕이 부족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어둡게 느껴진다. 물론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었다. 오직 성경을 즐겨 읽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를 점검하기 위해 글로 남기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본 지인들은 나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함께 묵상의 시간을 가지자고 했을 것이다. 그 지인들이 많이 그립다. 이제는 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의 글, ‘복음의 말씀을 안다면,’란 제목으로 다시 쓴 글을 읽었을 때에,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그 심정을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게 되리라는 기대와 기쁨이 하늘을 나는 듯하다.
그래서 나의 믿음이 얼마나 거룩하여졌는지, 또한 세상을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한없이 들뜬 심정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부친의 비석에 새겨놓은 글이 다시 떠오른다.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이 말씀을 비석에 써달라고 하셨던 부친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한참 후였다. 이 비석의 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를 못했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성경의 베드로전후서를 묵상할 때에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다. 그렇구나!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나그네같이 살라는 뜻은..., 야곱이 바로왕 앞에서, 자신의 나이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역시 하나님을 아는 민족이나 개인은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베드로가 말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나그네의 삶일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지, 거룩하게 살아야지, 두려움으로 살아야지. 창세전부터 알리신바 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신 그분, 우리 아버지를 더욱 알아가는 삶이라면 오히려 크게 기뻐하기 위해서라도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야겠다.
[추신]
구독하신 분들께, 이 글을 읽을 때에 거부감이나 거북스럽지 않다면...제가 확신을 드린다면...하나님의 자녀이심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꼭 성령이 문을 두드릴 때에 마음문을 열어주시길 간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