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49. 마음이 순전해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1,2,3,4,5)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 Bible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1절)”의 말씀은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 이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1:2) 즉 각 지방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하신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신 말씀인 것이다.
베드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1:22)”에서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사모할 것은 진리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갓난아이들 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심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젖은 역시 순전하고 신령하다는 말이다. 어느 어머니가 자기 아이에게 불결한 젖을 주겠는가? 갓난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는 한 점의 의심도 없는 온전한 관계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갓난아이가 어머니를 믿는 것은 온전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이를 믿는 그리스도인도 갓난아이와 어머니처럼 온전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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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같이 마음이 순전하라는 가르침이다. 베드로는 더욱 강조하여 ‘갓난아이들 같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 천사같이 아름다움에 기쁨을 놓지 못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심성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번에 순전하고 신령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사모할 때에 믿음은 자라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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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리를 알아야 한다. 성령은 복음을 깨우치는 지혜의 영이라고 했다. 복음을 깨우친다는 것은 진리를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 때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된다. 이처럼 진정으로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신앙은 구원에 이르도록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듯 믿음이 자라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의 말씀/ 최희원 글>
‘마음이 순전하라!’
이 말씀에 뜻을 얼마나 이해할지 참으로 염려가 된다. 언어란 창조주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주신 선물인 것이다. 창조주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과 대화를 하셨으며, 언어를 가진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까지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자로서 창조된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특권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 인간으로서의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창조주께 자신의 지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즉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생물, 즉 동물들의 이름을 그 특성에 따라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이를 보신 창조주는 매우 만족하셨다.
그러한 인간이 타락한 후에, 즉 아담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창조주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이는 마치 양치기가 목장 주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양들을 처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아담과 그의 여자는 에덴동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그의 속성대로 배반하는 행위를 행하여 왔다. 그 결과 그들은 점점 인간의 자유의지를 파괴하는 음란함에 빠져버렸던 것이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는 최초로 창조된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으나,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그의 후손으로 다시 창조주의 뜻을 펼치시기로 하시고, 그를 방주로 구원케 하셨던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영웅인 니므롯은 사람들을, 민족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는 창조주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바벨탑을 쌓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짓밟고 있음을 보시고, 여럿 언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하셨던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언어에 문자를 만들어서는 다양한 색깔을 입히고는 언어의 순수성을 변질되게 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이란 색깔을 입힌 것이었다.
그런 언어의 색깔로 인해 인간의 순수한 마음마저 상처를 입고 상실되어 간 것이었다. 언어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이러한 언어에 색깔을 입혔으니 진실한 대화를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말을 잘못함으로써 인간사회에서 매장되거나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내게 오는 어린아이를 막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는 이 어린아이와 같이 아니하고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베드로도 역시 예수님을 잘 아는지라, 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을 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그리 고백하시도록 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라고 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깨달았던 것이다. 즉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성령이 깨닫도록 하실 때에만이 진리를 알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갓난아이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사모한다. 그것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그 갓난아이의 사모하는 마음처럼 순전하라는 것이다. 이런 순전한 마음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 볼 수가 있다. 즉 언어에 입혀진 색깔을 베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진실을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색안경을 쓰고 보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가? 언어의 색깔이 인식의 색깔을 입혀 순수하지 못하도록 인간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을 창조주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말했던 것이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홍수이전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고 말했지만, 홍수 이후에는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했다. 즉 이는 사람이 어릴 적부터 악하게 되는 것은 악한 사상으로 세뇌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갓난아이들은 한결 순수하다는 것이기에 갓난아이처럼 순전하라고 한 것이었다.
이 깊은 진리를 아는가? 모든 갓난아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나기 때문에 순전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갓난아이를 세상의 악한 것으로 세뇌시키면서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바로 물리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현상인 것이다. 즉 질서상태에서 무질서상태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과일이 썩어지는 현상, 오래될수록 삭아지는 현상, 이처럼 물질계에서는 분자결합의 붕괴현상, 정신세계에서는 사고능력의 저해현상을 말할 수 있겠다. 즉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잃어가고 점점 세뇌된 이념에 의해 기억된 것을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순수한 자연수가 오염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순전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모하라고 한 것이다. 갓난아이처럼 사모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진리 안에서 사모하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자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겠는가? 이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에 의해서 말이다. 어떤 자가 사모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택함을 받은 자는 사모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진리를 말해주어도 순전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지 않는 자는 부르심을 받지 않는 자, 택하심을 받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전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는 택함을 받는 자요.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따라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진실을 알아보며, 진실된 것을 찾으며, 진실함에 순종하며, 진실을 믿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를 추수하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전도자는 홀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따라다니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한 자를 찾아내어 진리를 알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