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11] 어른으로 성장하려 노력 중입니다.
두 번째 어른은 대학생일 때 만났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 강점인 학교였는데 이 학교에 들어간 뒤 반드시 이 프로그램은 참가하여 미국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한데 학교에서 100명을 선발했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1년 동안 영어와 문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이유가 있었죠. 또 하나의 이유는 등록금 뽕 뽑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바라던 직업군의 전공을 배울 수 있다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에 너무 기뻤지만 낸 만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얻어가자고 생각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100명이 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굉장히 체계적이었습니다. 1차 면접, 2차 수업과 발표, 3차 개별 인터뷰라는 과정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체계적인 만큼 저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1차 면접을 위해 전공수업을 열심히 들어 좋은 학점을 준비하고 개인적으로는 저녁 이후에 시작하는 외국어교육원의 회화수업을 들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나갔고 100명 중 1명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와 늘 아래에서 위로 보던 하늘을 마주하며 신기한 기분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도착한 미국은 많은 것들이 남달라 보였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고 짐을 챙겨 밖에 있는 대절 버스로 향했는데 습기가 없이 뜨거운 느낌에 감각들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도착한 학교 숙소에 짐을 풀고 들뜬 마음으로 환영식에 참가하고 반배정을 받는 등의 일정들을 소화하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제 수업을 담당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영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친구들의 선생님 반이었습니다. 흰색, 회색이 섞인 머리에 콧수염이 멋진 키 큰 할아버지 선생님이었습니다. 하루의 수업을 마친 후나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서 여유가 있을 때 마주치면 대화를 많이 시도했지요. 처음에는 중요 단어 몇 개만 들렸고 대답도 주어+동사로 완벽하게 구사하기까지 초반에 시간이 필요했는데 어느 순간 귀가 트이는 시기를 맞이하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자녀는 결혼을 하셨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아기를 두었습니다. 손자의 모습도 보여주시고 따님과 손자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감성이 풍부해진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면 이러한 경우이겠지요. 제가 본 선생님은 세상을 많이 경험한 할아버지이지만 그때의 그분의 모습에서 느낀 것은 순수함을 잃지 않은 분 같았습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하나하나에 진실되게 반응하며 똑바로 마주하는 느낌을 받았지요. 따님의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선생님이 젊을 적 아내분과 가진 아이가 세상에 나와 크게 울었을 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귀한 삶의 한 조각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과 손짓 그리고 눈은 그 모든 것을 전달해서 마치 행복함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내 아이는 계속 내 아이라서, 앞서 생을 경험한 아빠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내가 조언을 해도 될까? 조언이 필요하니?"
"아뇨, 괜찮아요."
이것이 선생님과 따님분의 대화입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합니다. 물론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죠. 의견을 나누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등 선순환이 있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 선을 넘거나 가스라이팅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듣는 사람은 그저 듣는 것에 머물러있습니다.
"시끄러워, 그만 말해!"
이 말마저도 끝없이 말하는 사람의 말이 끝나갈 때쯤 나오게 돼서 찝찝함만 남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책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에 비해 선생님의 대화법은 다른 차원의 것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내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아낌없는 애정을 쏟고 싶지만 그것이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고 오히려 방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할 때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서 습관처럼 유지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많은 연습을 하셨겠지요.
"존중해주렴."
Respect. 이 말의 참 뜻은 선생님께 배운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 한 명이 가진 특색을 뜯어고쳐야 할 것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걔 성격이 원래 그래, 그냥 네가 이해해."
이때 그대로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과함이 없어야 하니까 상대의 삶에 지나친 개입을 삼가라는 뜻인 거죠. 내가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상대를 대한다는 것은 두 마음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진실된 사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일하는 곳에는 근로하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로운 1학년부터 곧 있음 졸업이어서 수업 이외의 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4학년까지 다양합니다.
"우리 OO학생, 이거 저기로 옮겨야 하는데 조금 도와줄래요?"
"OO학생은 이 부분 오탈자 없는지 한번 확인하는 작업 해주세요."
"오, OO이 왔어요?"
의식적으로 하는 제 말의 형태입니다.
이 학생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리고 지금은 학생의 신분으로 있지만 곧 사회에 나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울 것이며 어려움도 만나게 될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존중받으며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저의 이런 말투에 함께 일하는 선생님 한분은 말투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주셨지만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부디 존중받으며 존중할 줄 아는 어른으로서 사회인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적고 많기에 앞서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많은 부분을 부딪히고 보완하는 등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흡수하는 스펀지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볼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에 내가 어른이라면, 그전에 조금 더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말랑한 생각과 한 마디의 말을 신중하게 할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저도 매번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에 벗어날 때가 있어 하루를 다시 재생시켜 보고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내 것을 오롯이 지켜내는 튼튼한 어른이자 존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저의 선생님처럼요.
오늘도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