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12] 그 속에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
사회인.
그 단어 안에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담겨있다.
첫 사회인이 되었던 날을 기억한다.
내 건너편에 앉은 선생님의 말투는 정말 어른스럽고 이상적인 사회인이어서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말투를 나도 모르게 듣고 비슷하게 말해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 공간의 중심이자 핵심인 사람. 어느 것 하나도 모르는 병아리 사회인이 봐도 모든 업무가 저분을 통해서 진행되고 계획된다는 게 느껴졌다. 불쾌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상적인 단어들을 조합해서 정중히 답변할 줄 아는 그런 분이다. 내가 그분의 반대편에 앉아서 건너 듣게 되는 것들 모두가 내게는 공부였다. 물론 너무 전문적인 말들이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떠 있기는 했다.
전공을 살려 업무를 하면서도 익혀야 하는 업무가 너무 많았다. 물론 내 전공을 살려서 하는 업무들은 어렵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 익숙한 작업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처음 접한 것들은 어렵고 아리송했다. 내 머릿속 생각이 말머리 풍선으로 보였다면 물음표가 하루에 100개씩은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들어온 지 3일 만이었을 때 보조업무를 해야 해서 질문사항이 생기면 알려드려야 했고, 일주일이 지난날에는 처음 보는 기기를 다뤄야 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이곳은 굉장히 빠르게 그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익히고 안내해야 했다. 거의 나도 같이 배우는 입장이었기에 누군가를 알려준다는 입장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 스스로 깨우치기 전에 설명을 한다는 게 꽤 난처한 일이었다. 달달 외워 알려드리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추가 질문들이 돌아왔다. 시험 1시간 전 암기한 것을 쏟아내는 수준이었기에 되돌아 서면 잊어버리곤 하는 그 정도의 이해력이어서 몸을 부지런히 옮겨 답을 찾아 다시 안내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우왕좌왕. 주춤주춤. 어리바리. 물음표, 물음표, 물음표...느낌표..아니, 물음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표현하자면 이런 언어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해도 된다.
떼쓰고 화내는 길고 긴 전화에 응답하느라 씨름하기를 여러 번.
부딪히고 부딪히고 괜찮게 해냈다고 생각한 것에 걸려 넘어지고 구르고.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하다가 알게 된 것들이 기반이 되고 나니 조금씩 물음표의 색이 옅어져 이내 마침표를 찍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언어는 전화나 메일로 질문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예상 가능한 질문에 부드럽게 답변할 수 있는 형태로 모양이 달라져갔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능숙히 대응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에는 조금 더 적합하고 명확한 답변이 될 수 있도록 알맞은 단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돼서 검색창에 아는 단어라도 검색해보고 유사한 단어들도 찾아보며 나름 구색을 갖춘 메일을 쓰려고 행동하고 있었다.
한 가지 말에 담긴 숨은 뜻, 번역이 들리기 시작하다
내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면 초반에는 언어 자체를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듣는 귀가 트이게 되면 그 사람은 분명 다른 언어로 말하는데 귀로는 한국어로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회인의 언어 또한 그런 부분을 닮은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한 영향일까, 어느 순간 들리는 말과 머릿속에서 번역되는 말 두 가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대상에게 건네는 말의 겉모습은 굉장히 사무적이고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춘 듯하여 보였으나 그 안에 또 다른 말이 있었다. 말은 개인 고유 말투가 동반되면 시너지를 얻어 진짜 말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게 들려서 마치, 입체적인 언어들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 OO씨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이야기해줬어.”
(“걔, 말귀를 못 알아듣더라, 그래서 내가 친히 설명해줬음! 나 대단하지?”)
“업무의 주요 안건인 이 업무는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거는 간단한 업무니까 A씨가 진행해주고,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닙니다.”
(“사실 무척 귀찮은 일인데 내가 하기는 좀 그래, 네가 처리 좀 해.”)
“A씨가 이런 부분을 보조해주면 B씨가 해당 업무를 진행할 때 어려움이 해소될 것 같은데, 좀 도와주고.”
(“B가 그 일이 어렵다고 징징거려서 귀찮은데 네가 좀 도와주면 되잖아.”)
이상하게도 귀가 트였을 때의 감각을 받았다.
뭔가 이상해서 같은 일을 하는 분께 자문을 구했다.
“선생님, 뭔가 일을 하다 보니 느낀 건데 말이 그대로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번역이 되어서 들려요. 이상하죠?”
그분은 가만히 내 말을 듣다가 이내, 엄청 웃으시며 이야기하셨다.
“쌤, 그거 사회인이 되었다는 뜻이야.”
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