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도 찡찡대고 싶어요] 여는 말
어릴 적 어른들은 어릴 때가 좋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어린이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른들 앞에서 먹은 떡국 그릇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학생과 어른의 경계를 넘어 완전히 어른의 영역에 들어서고 나니 그 말의 속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 찡찡대고 싶다. 이런 게 다 뭐라고."
말 그대로다. 정말 찡찡대고 싶다. 다 치우고 싶고 어려운 문제는 별표만 해두고 넘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도 잠시 나보다 어린 이에게는 그들이 생각해봤을 어른을 표현하는 단어 하나쯤에 걸릴 수 있기에 이런 마음은 배꼽보다 밑에 꾹 눌러두고는 그럴싸하게 어른 흉내를 내본다. 물어보는 것들을 이해하기 쉽게 예시도 들어가며 설명해주고, 방금 안 좋은 소리를 들었어도 표정을 바꿔 웃는 얼굴을 내비치며 어른인 척을 한다.
좋은 어른인 척은 어떻게 하는 걸까, 멋진 사람은 태생부터가 멋졌나. 어른들은 연기력이 상당하다.
정말 멋진 어른들을 기준 삼아 그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 가를 평가해보면 어른이 된 지 꽤 된 어른이인데도 기준선은 하늘에 있다. 그리고는 고개를 다시금 정면으로 향하며 저 길 위에 친구들이랑 웃으며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무의식의 말을 한다.
"많이 놀렴. 학원에 하루를 다 보내지 말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지금처럼 많이 웃으면서."
세상에 책은 멋진 것들로 가득하다. 오래전 지나온 이가 이제 지나갈 이에게 남겨둔 방명록 같은 책도 있고 인생의 기준에서 빠질 수 없는 기술들의 전문가쯤 되는 사람들의 책이나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도와주는 책도 있다. 모두 멋진 어른들의 글이다.
멋진 어른들의 책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헤매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라면 정말 찡찡대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어쩌면 수다를 떨고 싶은 걸지도, 혹은 방향 없이 그저 공기처럼 사라질 말을 해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튼튼해 보이지 않는 이 말에 나름의 근거를 대자면 조형물의 구조가 비대칭이거나 여백이 있을 때 더 매력적이지 않나. 이 생각은 허무맹랑한 것일까? 텅 빈 유과를 닮은 지나친 말장난일까.
일찍 일어나 멋지게 만든 머리와 어른스러운 화장에 가끔은 새것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옷을 입고는 하루를 고군분투하며 일하는 어른의 답답한 마음을 뱉어낼 수 있는 곳 하나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의 끝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것의 끝은 없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이랑 함께 불평, 불만을 쏟아냈던 것처럼 잠시 어른 티는 내려놓고 지친 하루의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 무거운 생각과 마음 모두 이곳에 뱉어두고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