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도 찡찡대고 싶어요] 공기로 흩어질 말
나 지금 꽤 나답지 못하구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부모님을 구해내기 위해 유바바 밑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상황.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바보 같은 얘기는 그만해. 비실비실한 애가 뭘 할 수 있다고?"
유바바의 말에 줄곧 같은 답변을 내놓자, 열받은 유바바는 치히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압박면접을 한다.
"내가 널 왜 고용해야 하지? 응석받이에 머리 나쁜 울보한테 줄 일은 없어!"
큰 언성이 오고 가자 유바바의 아기가 칭얼거린다. 유바바도 고용주이자 언젠가 어른이 될 아기를 가진 엄마 그 두 가지 입장을 가진 사장이었다.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유바바는 결국 계약서를 치히로에게 들이민다. 유바바는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적어낸 종이를 유심히 본다.
"치히로? 과분한 이름이군."
종이 끝에 유바바는 자신의 손을 뻗어내다가 콱하고 주먹을 쥔다.
손 안에는 종이에 있던 세 글자가 담긴다.
"앞으로 네 이름은 센이다."
그렇게 계약이 끝나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아이인 치히로가 부모님을 구해내는 이야기 속에 어린 친구의 어려운 사회생활 한 숟갈이 담긴다.
이 씬은 내가 회사와 계약하던 날로 돌아가게 한다. 종이에는 계약사항과 월급 등의 내용이 상세히 쓰여있고 똑같은 종이 두 개를 나란히 둔 상태에서 그 중간에 서명하고 하단에 또 서명을 했다. 나는 그날 부로 내 성씨를 붙인 쌤으로 자주 불리게 되었다. 그것이 내 사회생활에서의 이름의 형태였다.
처음에는 뭐가 무엇인지 모르며 그저 건강하고 드라이브에 회사생활에 대한 데이터가 제로에 수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손에 익지 않아 일을 해도 어수룩하고 내 전공과 관련된 일이어야 그 일의 모양새가 조금 잡혀 보이는 정도였다. 이 때는 누군가 나를 부르면 방방이를 타고 있는 것처럼 튀어 올라 대답하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넬 때는 잔뜩 긴장이 되어서 큰 형님께 인사드리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곤 했다. 쉽게 말해 많이 뚝딱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이전의 나라고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의 업무환경과 누가 누구와 사이가 안 좋은 지도 알게 되고 화풀이를 내게 하던 이도 생겼다. 회사생활이 인간관계가 전부인 세계로 봐도 어렵지 않은데 매번 선을 넘나드는 말들이 오가면 아무리 명랑한 사람도 특유의 유쾌함이 퇴색되고 만다.
한 날은 화장실 가는 길에 상사가 하는 웃기지 않은데 웃기려 하는 말에 한 껏 웃으며 문 밖을 나섰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상기된 얼굴 근육을 풀어 무표정을 지었는데 그 순간 놀라 얼굴을 매만졌다. 갑자기 풀어내니 중력을 느껴서였을까. 확실한 것은 이전의 나라면 없었을 기술이었는데 차츰 내가 알던 내 모습은 옅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의 한 씬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원래 이름을 잊어버리고 일하는 모습이 마치 그때의 나 같다.
무언가 놓치는 게 분명한데 무엇인지 명확히 할 수 없는데 대부분이 성장이라는 단어로 그 의문에 장식을 더해 공간을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