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도 찡찡대고 싶어요] 공기로 흩어질 말
그대로라는 착각
처음에는 완전한 부정을 택했다.
나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위화감은 뭘까.
나의 모든 것을 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겉표면 정도만 아는 인간도 아니었기에 의아함, 의문들이 난무했다.
'툭.'
고요한 마음속 숲에 불이 나는 건 이렇게 의문을 마주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는 불씨 정도였다가 애써 무시한 나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아무런 시도도 없이 묵혀둔 마음은 아니었다. 치히로에게 조력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가마 할아범이나 하쿠같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같이 일하는 동기에게 물으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생기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 말에 나도 이제 얼추 사회생활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긍정적인 성장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점은 같이 회사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모두 밝고 솔직한 사람들이라 같이 설명회를 준비하거나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유쾌해서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을 보일 수 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작은 의문들이 생겼어도 지나가는 의문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회사라는 좁디좁은 시야에서 속에서 생활하다 나온 지금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닐 수 있던 원동력은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한쪽 면만 있지 않아서 반짝이는 긍정이 지나가고 난 부스러기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남을 때면 휴대폰의 메모를 켜서 글을 썼다. 지금 내가 가진 감정을 시각화하고 싶었다. 만질 수는 없지만 말로 묘사는 가능한 어른이기에 이성적으로 직시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현재 상태나 생각을 잘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자주 애용했다.
"그래, 이렇게 관리하면 괜찮을 거야."
솔직히 그랬다. 메모.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쓰고 다시 읽어보면 그 글이 꽤 훌륭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았기에 뿌듯하기도 했었다.
"아잇, 누구야. 누군지 몰라도 글 좀 쓰네. 꽤 멋져."
주인공 치히로는 유바바의 마지막 질문에 정답을 말하고 부모님을 구해내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와 달리 현실은 자의든 타의든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탈출했다. 모두가 웃고 일에서의 고민을 나눴지만 각자가 가진 나아지지 않는 문제들이 낳은 결과였다.
그 이후 부서는 나간 사람의 컴퓨터 몇 대와 잔존한 사람만이 채워지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서로에게 위안을 받는 분위기도 한차례 우르르 나가고 나니 특유의 명랑함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균형감도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