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도 찡찡대고 싶어요] 공기로 흩어질 말
두 가지 선택지, 너는 뭐야?
하나의 실험이 있다.
팔팔 끓인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살기 위해 튀어 오르고, 개구리가 물에 들어간 상태에 조금씩 열을 가하면 그대로 죽는다고 한다.
잔존했던 영역에 있던 나는 후자와 닮았다.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에 아쉬워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도 한편에 남아있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 이곳이 언젠가는 내가 떠날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나도 이곳을 나갈 거야. 언젠가.'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창업으로 그다음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순리에 해당하는 부분이기에 생각의 가장 옅은 곳 한편에 두고 가끔씩 들여다본 말이었다.
그 언제가 내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들어온 지 1년 차가 되어갈 때의 일이다.
같은 파트의 업무를 보던 선생님과 딱 3개월 차이로 먼저 입사한 것 외에는 차이랄 것이 없는 완벽한 업무 파트너였다. 스타일이 비슷해 스케줄을 정리하고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다음 말은 선생님이 이어갈 정도로 죽이 맞았다. 코로나로 전에 없던 살인적인 업무량도 함께라면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부서의 선생님이 한 말이 다음은 없다는 것을 예고했다.
"쌤, 인원을 감축할 건가 봐."
높으신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전해주는 말이라며 그 말의 신빙성을 더했다. 솔직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따금 생각하던 말이 급작스럽게 일어날 줄은 몰랐고 어떤 사유로 한 명은 안녕을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업무상황으로 보면 일은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업무량이 넘쳐 들어왔고 개인역량을 묻는다면 누구 하나 태만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쳐냈기에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리면 이렇게 좋은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함께 일하던 선생님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원래 선생님의 계획은 1년만 일하는 것이었기에 괜찮다고 했다.
이야기 해준 선생님도, 같은 파트에서 일한 선생님도 그리고 또 다른 선생님의 자리가 텅 비었다.
오래전 나보다도 앞서 들어와 일하다 퇴사한 선생님이 늘 내게 이야기한 말이 떠올랐다.
"여기 예전에 3년을 일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일을 진짜 잘하셨었어요. 근데 나가게 되셨죠. 진짜 일 잘하는 분이었는데."
"왜요?"
"진짜 일을 잘해도 계약이 만료되고 연장이 없으면 그렇죠. 정말 배울 게 많은 분이었는데."
배신감을 닮은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내 허망했다. 회사와 직원이라는 입장 차이라는 현실을 모르는 어린 어른은 아니었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과 이론으로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묵묵히 맡은 바 일을 잘하고 다른 부서에서 못한다는 급한 건들도 다 여기서 해결했는데도 결과가 이럴 수가 있구나.'
남은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야기 흐름에 반전을 주고자 한다면 남은 사람이 연필을 들고 다음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하고, 남는 것을 선택하면 다음 장이 넘어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미지근한 물속 개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