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성격장애,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창작
아는 지인과 대화하다가 발견한 특이점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근본적 문제를 고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고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경계선 성격장애 때문에 오는 불안과 다른 그런 류의 기분마저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을 잃을까 봐 불안을 없애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런 것이 없었던 게 언제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성격장애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불안정한 대인관계, 반복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 극단적인 정서변화와 충동성을 나타내는 장애
경계선 성격장애에서는 정체감의 혼란이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불분명하거나 끊임없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오랜 시간 함께한 불안, 두려움, 기분의 파동 자체가 "나의 정체성"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고치면 내가 내가 아닐 것 같다"라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불안을 줄이는 게 삶을 더 편하게 만들지만, BPD에서는 불안, 혼란, 극단적인 감정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관계를 맺게 하는 자극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즉, 불안이 사라지면 공허함이 훨씬 크게 다가올 수 있고, 이는 BPD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감각 중 하나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동시에 익숙한 불안이 "차라리 낫다"라고 느끼는 모순적 상황이 생긴다.
친구가 말한 그런 게 없었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불안정한 애착이나 환경 속에서 형성된 성격적 특성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런 상태가 오랜 시간 누적된 패턴이기 때문에 불안과 감정의 파동이 곧 나의 역사로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이 사람이 또 덧붙인 말이 있다. 본인의 불안은 예술적인(음악) 활동을 할 때 많은 자원으로 쓰이는데, 이것이 사라지면 본인 고유의 예술적인 감각들이 사라질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이 부분은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느끼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예술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보통 힘들 때 대작이 나온다고 많이들 말하지 않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행복할 때 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쓰는 글이 더 깊이감이 있고 좋은 글이 나온다고 느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감정을 폭넓고 깊게 경험한 후 표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결국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의 목적이니까. 하지만 과연 이런 이유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까? 여러 예술가들은 심연에 머물러있을 때 훌륭한 작품을 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예술만을 위해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 괴로움을 평생 지고 산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던 없던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불안이 존재한다. 다만 불안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불안이 곧 나"라는 동일시가 계속되다 보면 이 친구처럼 그 요소를 제거하기가 두려워진다. 왜냐하면 '불안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일까?'라는 근원적 정체감의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이 사람은 불안이 사라지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불안과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새로운 자기 개념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즉, 불안이 있더라도 관계와 자기 삶을 무너지지 않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불안이 자기 자신의 전부라는 동일시를 약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불안이 나의 일부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기뻤던 순간들도 내 일부일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만드는 건 여러 가지일 텐데, 불안이 그중 하나일 수도 있겠네.”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불안을 포함한 나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균형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렇게 불안이 있더라도 관계와 자기 삶을 무너지지 않게 다루는 법을 배우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라고 한다.
다음 글은 변증법적 행동치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