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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비둘기 Nov 01. 2022

런던 (1)

여행의 시작



런던은 나의 첫 도시였다. 첫 비행기, 첫 해외여행. 그 시작이 런던이었다.     


어려서부터 영국을 동경했다.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의 주역 배우들과 동년배인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해리포터에 미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왜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가 날아오지 않는 걸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 본가의 내 방에서 무늬만 원목인 책상 아래 쭈그리고 앉아 왜 난 머글인지, 마법사가 아닌 건지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어째서 침대 속도 아니고 책상 앞도 아닌, 책상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책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했다.

그뿐이랴. 반지의 제왕(고등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아무도 안 빌리는 실마릴리온까지 독파했다)도 나니아 연대기도 좋아했고 셰익스피어나 오스카 와일드도 좋아했으며 브리티시 락 밴드도 좋아했다. 영국의 모든 게 다 좋았다.      


마침내 대학생이 되었고 휴학을 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다. 그토록 그리던 배낭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시작은 런던이어야 했다.      



유랑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사람과 정보를 모았다. 2010년이었다. 당시 유럽여행을 하는 한국인이라면 유랑을 모를 수 없었다. 론리플래닛은 안 봐도 유랑은 가입해야 했다. 그곳에서 반지원정대 꾸리듯 여행 멤버를 꾸렸다. 이십대 초중반의 여자 둘, 남자 둘. 몇 달 동안 네이트온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서울에서 만나기도 하면서(넷 중 셋은 서울에 살고 있었다) 여행 계획을 짰다. 6주 동안 서유럽을 빙 도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종차별을 당했다.     



출처 나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런던 시내로 가기 위해 지하철 티켓을 사려는데 티켓 부스의 역무원이 퍼킹 차이니즈를 외치며 너희에게는 티켓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이라면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분노하며 따졌겠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것이나 다름없는(그때의 나라면 스물두 살은 성인이라고 화를 냈겠지만) 어린애였다. 그저 정말 이들이 우리에게 티켓을 팔지 않을까 겁이 나 어색하게 실실 웃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안이라고 열심히 해명했다. 그들에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한참 동안 우리를 조롱하며 낄낄대던 역무원들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티켓을 내주었다. 휴. 이들이 티켓을 팔지 않으면 런던으로 갈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아찔했는지.


난생 처음 내 발로 떠난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완벽했다.      


반어법이 아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적절한 시작이었다. 여행이란 원래 예상치 못한 사건과 우당탕탕으로 점철된다. 그런 게 없다면 휴양일 뿐, 여행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쨌든 돈이나 여권, 캐리어를 분실한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모욕을 당한 것뿐이다. 그것도 다른 문화권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비로소 몸으로 겪게 되는 모욕이었다. 아무런 트러블이나 고생 없이 여행을 시작했다면 아마 나는 히드로 공항에 어떻게 도착하고 어떻게 런던으로 들어갔는지 지금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 고난과 역경쯤은 있어 줘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후 계속될 여행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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