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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비둘기 Nov 18. 2022

뮌헨 (1)

옥토버페스트, 그리고 김정일




우리 일행 넷은 모두 휴학생이었다. 각자 여행경비만 마련한다면 원하는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당초 여행 시기를 가을로 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옥토버페스트에 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넷 다 술을 적당히 즐기기는 했지만 엄청난 주당도 아니고 술을 유난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거기에 꽂혔는지 모르겠다. 유럽의 거대한 축제에 가 보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옥토버페스트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갔다. 유럽 여행을 하며 기차를 참 많이 탔다. 나는 기차여행을 좋아해서 기차를 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는데, 뮌헨으로 가는 기차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Unsplash @sydneyscape



뮌헨 중앙역에 도착해 짐을 챙겨 내리는데, 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독일 남자애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하얀 폴라티에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하나 둘러메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예쁘게 생겼던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소년이 아닌가? 살짝 구불거리는 갈색 고수머리에 빚어낸 것 같은 이목구비, 천사가 실존한다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얼굴이었다. 플랫폼에 발을 딛자마자 일행 중 유일한 여자 동행이었던 언니에게 그 애를 봤느냐고 물었는데, 그 언니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내게는 이십 몇 년 되는 인생에서 그 아이가 직접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기억임에도 아직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이제는 그 후로 세월이 쌓이며 아름다운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 경험이 더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뮌헨 중앙역은 예쁜 애를 보았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쨌든 뮌헨에서의 추억은 특별했다. 미소년을 보아서도, 옥토버페스트에 갔기 때문도 아니다.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무언가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람이다. 모든 것이 항상 그렇듯.



뮌헨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미 여행에 그럭저럭 익숙해져 있었다. 베테랑 여행자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처음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에 떨어졌을 때처럼 불안하고 허둥거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예전만큼 도움의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난 뒤 뮌헨이 어떤 곳인지 구경해볼까 싶어 구시청사 쪽으로 나왔을 때였다. 어떤 독일인 백인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자신이 뮌헨을 안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어 이름도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김정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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