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도시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
스위스에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히도, 알프스였다.
인터라켄에 도착하자 다른 유럽 도시들과 이 도시의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기서는 산이 보였다. 그것도 깎아지른 듯 높고 거친 산.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전에는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인 나라에서 평생을 살다 산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서유럽 도시로 가니 더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기차에서도 가끔 산등성이는 보았지만 둥근 언덕에 가까웠다(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유럽의 산과 한반도의 산의 차이에 대한 내용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산이 보이는 도시로 오고 나니 그동안 몰랐던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스위스는 괜스레 친숙하게 느껴졌다. 물론 산 말고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인터라켄은 여태 여행했던 모든 도시를 통틀어 가장 흰 곳이었다. 이건 그 이후로 가 본 곳을 전부 포함해 여태까지도 유효하다. 눈이 내려서 하얗다는 뜻이 아니다. 온통 백인뿐이었다는 말이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이삼일을 있으면서 흑인은 단 한 명, 아시아인 관광객은 융프라우에서밖에 보지 못했다. 그나마 융프라우는 대부분이 관광객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었지만 인터라켄 시내에서는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도 이따금 느껴졌다. 그렇지만 독일이나 런던에서처럼 다소 노골적인 경멸은 경험하지 않았다.
융프라우로는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이곳이 얼마나 높은 산봉우리인지는 이런저런 수치 따위가 아니더라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인터라켄 시내에서는 분명 맑은 날씨였는데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고(제주에서도 유독 한라산에만 비가 자주 오는 것이 비슷한 이치일까?), 조금 더 올라가니 비는 눈이 되기 시작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눈은 눈보라가 되었다.
가이드북에는 융프라우 정상에 올라가면 개썰매를 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개썰매라니! 다른 건 못해보더라도 개썰매는 꼭 타야지 했었는데, 개썰매는커녕 건물 바깥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 통유리로 된 바깥은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그저 뿌옇고 허옇기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어떤 백인 남자 한 명이 나가보겠다며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가 정확히 5초 뒤에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걸 보고 모든 사람이 바깥에 나갈 의지를 상실했다.
우리는 가이드북에 붙어 있던 쿠폰으로 건물 내의 매점에서 신라면을 먹었다. 이 매점이 프라하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등산을 가서 라면을 먹어야만 하는 한국인의 기질은 알프스 산맥에서도 버릴 수가 없나 보다. 나는 무언가 색다른 게 하고 싶어서 신라면을 먹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색다르다면 색다른 경험은 그 다음에 하게 되었다. 기억이 맞다면 3층까지 있던 건물의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려는데, 계단을 올라가려는 순간 술에 취한 것처럼 온몸의 힘이 죽 빠지면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 억지로라도 올라가 보려 했지만 힘을 내려 한다고 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억울하게도 나만 그래서, 혼자 아래층에 남아 있고 다들 위층을 구경하러 올라갔다.
당시에는 너무 놀라서 이게 뭔가 했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고산병 증상이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히말라야에 트레킹을 가 보고 싶은 꿈은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날은 캐녀닝을 했다. 나는 아웃도어형 인간이 아니지만 스위스에서는 액티비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우리 네 명과 미국인 세 명이 함께 했는데 백인과 아시아인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다. 나와 다른 언니 한 명은 여자이니 그렇다 쳐도, 동행한 남자 둘까지도(심지어 군대를 전역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미국인 여자의 체력조차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체력 차이가 어찌나 압도적이던지 남자 둘, 여자 하나로 구성된 미국인들이 계곡을 넘어 멀어져가는 것을 낑낑거리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캐녀닝을 마치고 다 같이 맥주 한 잔과 치즈를 조금 먹었는데, 그들이 맥주 한 병을 말 그대로 2초 만에 꿀꺽 마시는 걸 보고 또 입을 쩍 벌렸던 기억이 난다.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캐녀닝은 재밌는 체험이었다. 4미터쯤 되는 계곡 절벽에서 물로 첨벙 뛰어들기도 하고, 낭떠러지 비슷한 곳에서 발을 헛디뎌 정말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안 했을 것이다.
거기서 먹은 치즈는 태어나서 먹어본 치즈 중 가장 맛있었다. 동네의 로컬 소에게서 직접 짜내 만든 치즈라고 했다. 나중에 인터라켄 시내에서 퐁듀를 먹었지만, 그래도 캐녀닝 후 먹은 그 치즈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