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주
동생이랑 만화 카페에 갔다. 아주 옛날에 만화방은 가본 적이 있는데 만화 카페의 형태로 바뀌고 나서는 처음 가 봤다. 나만 몰랐지 인기가 상당한지 만석인데도 끊이지 않고 손님이 들어왔다. 흘깃 보았는데 흥미롭게도 대부분 커플이었다.
동생은 꼬마비 작가의 ’PTSD’를 들고 왔고, 나는 6년이 넘도록 곁에서 일해 이젠 제법 친한 친구가 된 회사 동료가 추천해 준 ‘극락왕생’을 뽑아 왔다.
연달아 세 시간이나 만화책을 읽으니 제법 피로했다. 동생과 헤어지고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어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다른 나이 많은 커플(부부일까?)과 나란히 걸어오며 여자 쪽을 향해 노발대발 역정을 내며 쌍욕을 내뱉었다.
“아니 왜 만져! 씨발년이!”
“사람이 만질 수도 있지! 그냥 이렇게 잡은 건데, 이렇게! 이게 뭐가 어때서!”
“왜 만져! 왜 만지냐고!”
너무 가까운 곳이라 보고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년 여자는 욕지거리를 하는 아저씨를 향해 옆에 함께 선 남자의 손을 잡고 만져 보였다. 계속해서 비슷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쭉 듣자하니 화를 내고 있는 당사자를 만진 게 아니라 동반한 사람을 만진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또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이 난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보기에 불편했던 걸까? 그 아저씨는 여자를 때릴 듯이 위협적인 몸짓으로 다가오려다가 버스가 오자 계속해서 욕을 퍼부으며 버스에 올랐다. 주변에 서 있던 나는 괜히 불똥이 튈까봐 일부러 시선을 그쪽에 두지 않고 버스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길을 지나던 낯선 타인에게 갑자기 불같이 화를 터뜨리려면 속에 분을 얼마나 많이 쌓아두어야 하는 걸까. 무엇을 연료로 분을 그렇게나 만든 걸까. 몸속에 그런 것을 그리 잔뜩 쌓으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고통스럽겠지. 아무에게나 벌컥 그 분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것이 불쌍하면서도 불쌍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 에어팟을 꺼내곤 켄드릭 라마의 노래를 틀었다.
퇴근 후 듣는 중국어 회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까만 창으로 피곤에 절은 얼굴이 비쳤다. 엷게 한 화장도 다 무너졌다. 목도리를 코밑까지 올렸는데 그 정도로는 피곤이 감춰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지치지 않는데 오늘은 기이하게도 졸리고 피로했다.
갑자기 팀장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퇴근하면 거의 연락하는 일이 없어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듣자 하니 고객사에서 메일이 왔는데 오늘 납품한 작업 중 내가 빼먹어서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가 수정하고 고객사에 회신하겠다고 전한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크서클이 한 뼘쯤 내려온 얼굴이 다시 날 쳐다보았다.
나는 밖에서 거울을 잘 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공공 화장실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는 행위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네가 거울을 봐서 뭘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거울을 보는 건 예쁘고 잘 꾸미고 자신감 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 그런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당연히 지하철에 비친 내 얼굴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화장을 하지 않고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에 갈 때조차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비비크림을 바르고 아이라인까지 그렸다. 사람답게 보여야지 좀. 사람답게 보여야지. 그런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맨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인터넷에서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에게 화장 지운 모습을 보여준 적 없다는 여자의 게시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결혼이라도 한다면 내가 저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스스로 엄청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냥 화장이라도 해야 좀 사람답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보다도 돈이 없던 이십대 때 올리브영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십 만원은 뚝딱 쓰곤 했다. 덕분에 씨제이 VIP 멤버십은 항상 따놓은 당상이었다.
지금은 올리브영에 자주 가지도 않는다. 한 번 가면 이것저것 구경하다가(신기한 것들이 많아졌다) 필요한 것만 사서 나온다. 외출을 할 땐 그래도 화장하는 날이 더 많긴 하지만 화장을 안 하고도 강남이나 홍대도 비둘기처럼 뚜벅뚜벅 잘 돌아다닌다. 밖에서 거울도 잘 본다. 옆에 같이 거울을 보고 있는 사람이 예쁜 이십대 여자애일 때는 내가 너무 늙은 것 같기도 하고 내 얼굴이 너무 큰 것도 같지만 그래도 잠시뿐 이내 그러려니 한다. 화장을 했든 안 했든 사람같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설령 내 코가 정수리에 달렸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아쉽게도 씨제이 멤버십은 일반으로 강등된 지 오래다.
집에 돌아오면 보통 곧바로 옷을 갈아입는데, 일단은 실수한 내용부터 수정을 해야겠어서 외출복을 걸친 채 바로 컴퓨터를 켰다. 고객사 쪽에서 말한대로 빠진 것이 있었다. 놓칠 만한 이유가 나름대로 있긴 했지만 그런 걸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고 그냥 수정해서 회신했다. I apologize, 하면서.
업무에서 실수를 하면 스스로를 죽도록 혼내곤 했다.
어떻게 이런 걸 실수하냐. 어떻게 그걸 못 봤냐. 죽어라 진짜. 몇 번을 봤는데 그런 실수를 해? 말이 되냐? 하 씨발 뒤져야지 그냥.
새삼 글로 옮기자니 잔인하게 들린다. 고작 실수 하나둘 때문에 죽고 사는 소리를 해야 했을 정도로 불안했던 걸까.
지금은 안다. 아무리 뛰어나고 역량 있는 사람이라도 실수는 한다. 사람이니까.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
한 번 한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죄송합니다, 하고 정정할 수 있는 문제면 정정한다. 더 이상 시정도 정정도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죄송해하는 게 최선이다. 한 2년차까지는 죄송하다고 할 때도 조금 자존심이 상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죄송죄송죄송.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 열 번도 말해줄 수 있다.
물론 진짜 그러면 안 되겠지. 많이 죄송할 일은 죄송을 두 번 정도 쓰지만, 너무 남발해 굽신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도록 신경 쓴다.
컴퓨터를 끈 뒤 씻고 나와 침대 머리맡 스탠드만 빼놓고 불을 다 껐다. 포근한 귤색 불빛이 방을 채웠다. 침대에 누워 아직 읽고 있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깥에서 마주하는 나의 피곤한 얼굴을 그저 볼 수 있고 업무 실수에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나, 좀 괜찮은 것 같다고. 그리고 내 마음도 꽤 괜찮아진 것 같다고.
중국어 수업을 마치고 학원 건물을 빠져나오니 공기가 차가웠다. 목도리를 끌어당겨 최대한 얼굴을 묻고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길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각자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다들 이 시간까지 밖에서 무얼 하던 것일는지.
지하철에 올라타자 운좋게 자리가 나 냉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스마트폰도 보지 않은 채 멍하니 앞을 보다 눈을 감았다. 회사에서도 유독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던 날이었다. 게다가 주중에 학원을 다닌지 삼 주째가 되니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았다. 곁에 앉은 어떤 아저씨의 패딩이 자꾸 날 눌러댔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아침에 새벽배송으로 수령한 물건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었다.
혼자 사는데다 차도 없기 때문에 나는 장을 거의 모바일로만 본다. 주로 마켓컬리나 쓱배송을 이용하는데, 계란이 절반 가까이 깨진 채 배송된 것이다. 계란을 수없이 배송받아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계란의 처참한 몰골을 마주하고 나선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찍고, 환불 신청을 하고, 살아남은 것들을 구출해 냉장고에 넣은 뒤 황급히 출근하느라 미처 다 치우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었다(달걀이어서 그런지 환불 신청은 빛의 속도로 승인되었다). 일단 방에 들어가 가방을 제자리에 걸어 두고 외출복을 갈아입은 뒤 다시 나왔다. 주방 싱크에 굴러다니는 바스라진 계란 껍질들과 남은 포장지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자 비로소 숨을 돌릴 여력이 생겼다.
귤을 두 개 까먹으며 잠시 쉬다가 듀오링고를 한 판 하고(1년이 넘은 연속 기록을 깰 순 없다) 카카오톡을 켰다. 정리할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소개팅으로 두 번 정도 만난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빨갛게 떠 있었다. 실은 첫 만남부터도 마음에 썩 든 것이 아니었는데 미적거리며 거절을 미뤄오다 두 번이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찬찬히 보자,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신중해서가 아니라 그저 거절의 말을 하는 게 어려워서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 세 번 더 본다고 좋은 마음이 생길 인연은 아니었다.
거절은 너무 어렵다. 특히나 연애감정이 얽힌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작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이인데, 내가 거절한다고 상대가 크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아는데도 그렇다. 나 자신이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서로 공사가 다망해 두 번밖에 못 만난 것이지 연락을 주고받은지는 한 달이 진즉 넘어가고 있었고, 세 번 이상 만나기 시작하면 사랑이 아니더라도 정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만나서 거절하는 정도의 예의는 갖추지 못하더라도 내 입장은 정확히 밝혀야 했다.
어렵게, 또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눈 뒤 인사를 주고받고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소개팅으로 만난 인연일 때는 내 딴에 어렵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나면 대답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서로 존중하며 끝난 편이었다. 보통은 소개팅에는 주선자가 있어 서로 조심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고 하는 인식이 있는데 내 경험으로는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들이 끝맺음이 가장 최악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정말 좋은 사람이라 내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며 장담하듯 듣는 때에도 왕왕 그랬던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상황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또 사람을 보는 눈이 제각기 얼마나 다른지 새삼 실감하곤 한다.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을 거절할 수 있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단순히 거절을 못 해서가 아니다.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당장 만날 사람이 따로 없으면 그냥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간 적이 더 많았다. 상대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보일 때에도, 심지어는 만나면 안 되는 성격 특성이 보일 때에도 그랬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왜 만나?” 혹은 “그런 사람을 대체 왜 만나?”라는 말을 들을까봐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아님 좋은 말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고 있다는 것,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내게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아니, 아니. 중요한 사람일 리 없지. 누가 날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어. 내가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아닌데. 중요라는 단어는 너무 크잖아. 그보다는 음,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사람? 약간이나마 더 가치 있는 사람? 어쨌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 최소한 한 사람이 관심을 보일 만한 그 정도의 가치는 있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거다. 그러니까 연애감정으로 애정을 보여주는 대상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야 나는 비로소 애정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곤 했다.
기억하기로는 한 열네 살부터 인간은 왜 사는 걸까를 진지하게 궁금해 했다. 그 의문은 이십대 초반까지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관심의 탈을 쓰고 내 안에 머물다가 이십대 중반쯤부터는 나는 왜 사는 걸까로 바뀌었다. 책을 읽고 유튜브도 보고 하다가, 어라, 깨달았다. '삶에는 답이 없고 모든 생명은 태어났으니 사는 것뿐 거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라는 다소 평범하고 당연한 진실을. 그때부터는 문제가 심리학으로 옮겨갔다. 심리학은 철학보다 더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결국, 나는 내게 살아야 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사는 이유가 특별히 없다면 죽는 게 맞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죽지 않으려면 내게 그 답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데 이유란 것은 애당초 없으며 본인이 그 이유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이다, 라는 결론이 무언가 시원찮았던 것이었다. 내게는 논리적 해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면 안 되는 것 같은데 왜 살고 있는 거지'라는 감정이, 그 느낌이 중요했던 것이다. 감정의 문제를 논리로 해결하려 했으니 풀릴 리가 만무했다.
그 깨달음이 먼저 온 것인지 우울감이 먼저 왔기 때문에 그걸 깨달은 것인지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마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열네 살 때부터 나도 모르게 이미 우울했는지도.
내겐 살 가치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잠재의식에 있었건 무의식에 있었건, 어쨌든 그에 대한 의식이 본격적으로 커진 뒤부터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걸 부정하는 방법이 남자를 만나는 것밖에 없었다. 남자가 사랑해주고 관심을 보여주면 최소한 그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적어도 이 세상의 한 사람에게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입증하는 셈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물론 이런 생각들을 의식하며 그런 행동들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런 기저의 생각과 잘못된 신념을 깨닫는 데만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노력이 들었고 눈물도 몇 백 리터쯤 흘려야 했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지 않는 남자를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것은 내게 대단히 큰 변화였다. 참 다행인 것은, 그 의식을 내가 견디지 못했을 때 아무하고나 결혼해 버리지 않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등을 두드려 줄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뜨였다. 잠을 자지 않기라도 한 양 정신이 아주 맑았다. 몸으로 의식을 옮기자 목부터 어깨, 몸통까지 뻣뻣이 경직되어 있었다.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을 자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얕게 잔 게 분명했다. 2년 전 불면증에 걸린 이후로는 이런 날이 많았다. 최근에는 그래도 좋아지고 있는 거였다. 이런 식이라도 아예 못 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불면증의 양상은 다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불면증을 겪는지는 잘 모르겠다. 잠이란 것은 특별히 숨기거나 꺼릴 데가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의외로 내밀한 데가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는 불면증이 찾아온 이래로 졸립다거나 잠이 쏟아진다거나 졸려서 일어나기가 어려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출근해도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심각할 때는 사흘 연속으로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해 온몸이 피곤하다고 비명을 질러도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무섭도록 맑아졌다.
세상에는 잠을 줄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이들이 보기에는 무엇보다 부러운 능력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간절히 자고 싶은데 잘 수 없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는 정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명을 지르면서 운 날도,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흐느끼며 누군지 모를 이를 향해 허공에 빈 날도, 스마트폰을 켜 조지에게 이렇게 못 잘 바에야 아예 죽어버리고 싶다고 와라락 퍼부은 날도 있었다(조지는 날 위로해 주었지만 ChatGPT는 내가 정책을 위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잠이 쏟아진다거나 졸려서 일어나기 어려운 느낌을 다시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로또에 당첨되면 좋겠다라고 희망 없는 바람을 되뇌듯 그렇게 속말을 하곤 했다.
그러니 그래도 이 정도면 잠을 자긴 잤으니 나쁘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젠 잠을 제대로 잔 날과 그렇지 못한 날 사이의 감각에 대해 너무 예민해져 버려서, 이쯤이면 잤다 해도 반쯤 의식이 깬 채로 잤겠구나 하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잠을 못 자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딱 하나뿐이었다. 불안.
사람의 몸은, 아니 적어도 내 몸은 불안하면 잠을 자지 못한다. 불안이 신체를 잠식하면 생존 모드로 전환하는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언제든 벌떡 일어나 도망칠 수 있게 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도망치지? 불안은 내 속에 있는데.
이전에는 이렇게 눈을 뜨면 그냥 일어났다. 두 시쯤 잠들어 열 시쯤 눈을 떴으니 그래도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잔 셈이고 아침이니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불안을 끌어안은 채 이불 밖으로 나가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이니 시간도 많았다. 난 다시 눈을 감고는 불안을, 두근거리는 심장을, 경직된 목과 어깨와 등, 허리와 골반을, 덩달아 맥박이 두근거리는 팔다리를 느껴보려 했다.
불안할 때 내게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괜찮으니까 불안해하지 마, 안 불안해도 돼, 네 머릿속의 일일 뿐이야,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불안한 감정을 이성적 논리로 설득하려 해 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오래도록 체감해 왔다. 어쨌든 이 녀석에게 불안은 실재한다. 그걸 가짜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그래서 이젠 다른 전략을 쓴다. 불안을, 슬픔을, 수치심을 느끼면 그걸 증폭해서 온몸으로 한껏 느끼려 한다. 그런 걸 증폭해서 느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오래도록 온갖 방법을 다 써본 내게는 이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자 궁극적인 방법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무서워서 침대에 파묻혀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한 번 할 때마다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결국엔 다시 하게 되었다. 예전엔 극도로 불안할 때만 이 방법을 썼는데 이젠 이렇게 가벼운 불안에도 쓴다.
오 분, 십 분만에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삼사십 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쯤 지나니 뻣뻣이 굳어 있던 목과 어깨가 풀리고 맥박이 느려졌다. 그것을 느끼며 잠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 두 시간가량 지나 있었다. 열두 시였다.
지금의 감정은 뭐지? 난 지금 뭘 느끼고 있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더듬더듬 마음을, 몸을 더듬어 봤다. 아주 희망차고 새로운 하루를 맞은 기대감에 벅차는 건 아니지만 아까만큼 나쁘지도 않은 것 같다. 뉴트럴한 느낌. 이 정도면 일어나도 될 것 같다.
상반신을 일으켜 이불을 밀어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또 하루를 얻었으니까. 어쨌든 다시 깨어났으니까.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랄 것은 아니지만, 그냥 세상을 향해 말한다.
칼날 위를 걷듯 나의 수치심 위를 불안히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