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주
언어를 게임처럼 공부하는 앱인 듀오링고를 연속 471일째 하는 중이다. 하루 빼먹고 넘어가도 기록을 얼려 주는 아이템인 Streak Freeze(한국어 이름을 모르겠다)가 없었다면 결코 달성할 수 없었다.
내 프로필을 보면 2013년에 가입했다고 나오는데 십 년이 넘게 이런 기세로 공부를 했던 건 결코 아니고, 설렁설렁 프랑스어 코스를 하다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앱 하나로 언어를 마스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하루 5분씩이라도 해당 언어를 떠올려 보는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은 된다.
나는 듀오링고를 항상 무료 버전으로만 사용하는데, 무료로 사용하면 한 판당 5회 이상 틀릴 경우 그날의 기록을 채울 수 없다. 문제를 풀 때마다 더 신경 써서 풀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페널티가 있는 편이 더 좋다. 가끔 유료 버전을 하루이틀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때마다 신이 나서 경험치를 열심히 쌓으면서 리그 내 순위를 확 올리곤 한다.
오늘은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듀오링고 앱을 여니 이제는 친숙해진 마스코트인 듀오(귀여운 초록 부엉이)가 갑자기 앱을 유료 버전으로 전환시켜주는 게 아닌가? 분명히 유료 버전 체험을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일 년가량 서로 팔로잉을 해 온 친구 한 명이 나를 자신의 패밀리 플랜(다른 유료 버전) 프리뷰에 넣어준 것이었다.
말이 친구지 자동 추천으로 무작위하게 팔로잉했던 사람이었고, 닉네임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사이였다. 어느 나라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정말 하나도 몰랐다. 닉네임은 Edward Paul이라 적혀 있었는데 이게 본인의 이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온라인에서 본명을 쓰는 데 거부감이 덜한 서양 문화 특성상 본명일 확률이 꽤 높다). 그리고 그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런 생판 남에게 유료 프리뷰를 선물하다니….
너무 고마워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듀오링고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다른 SNS와 연동되지도 않는다. 그의 프로필에 들어가 보니 2023년에 가입했고 노르웨이어 단 하나만 공부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어를 공부하는 에드워드 폴…그것 말고는 내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얼마 전 세운 기록을 축하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밖에 없어서 축하를 보냈다.
고마움의 의미로 축하를 보냈다는 걸 알려나?
슬로울리라는 앱을 써 본 적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참 창궐하던 때였다.
슬로울리는 이를테면 모바일 편지를 보내는 앱인데, 전 세계 어디로나 편지를 보낼 수 있고 편지를 주고받는 데에는 실제 우편처럼 얼마간 시간이 걸린다. 거리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지는데 같은 한국에 있으면 편지를 받는 데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먼 곳에 있으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시대에 오히려 오래 걸리고 길게 써야 한다는 아날로그 감성이 흥미를 자극했다.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심심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편지를 교환했다. 두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본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국인 한 명과 포틀랜드에 사는 트랜스젠더 요리사 한 명.
한국 사람은 남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많이 잊었지만 아주 섬세한 사람이었다. 나이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2년 동안 사귄 연인이 있었는데 항상 ‘애인’이라 지칭하고 단 한 번도 여자친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가 동성애자는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도 묻지 않았다. 몇 주인지 몇 달정도 느슨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을 결코 넘지 않았고 언제나 정중한 태도로 대화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그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계기랄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지친 것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모르는 그가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평안하게.
포틀랜드에 사는 요리사는 당시 새로운 업장에 취직한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활달하면서도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한식이 입에 맞는다고 하면서 자연적인 맛을 선호한다기에 우엉차를 추천했다. 나중에 아시안 마트 같은 곳에서 구했는지 우엉차를 마셔봤는데 맛있었다고 했다. 폴리아모리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만나는 사람은 세 명이었고, 본인은 애정 관계에 불안정한 편이어서 일대일로만 만나는 것보다 이 편이 더 안정적이고 좋다고 했다. 나의 연애사에도 꽤나 관심을 보였는데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지를 더 주고받다 보니 그는 이따금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것은 뭐랄까 남에게까지 얼마간 영향을 미치는 부류의 어두움이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이후 슬로울리에서 두어 명의 트랜스젠더와 더 마주쳤는데 그들에게서 비슷한 결의 강한 우울감을 느꼈다. 훨씬 시간이 지난 이후 미국 내 통계상 트랜스젠더의 자살률이 일반인의 몇십 배 수준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요리사에게는 내가 먼저 답장 보내기를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이지만, 또 좀 더 예의를 갖춰 마무리지었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때의 나도 지쳤던 것 같다.
슬로울리에서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 중 많은 이들에게서 무거운 외로움의 냄새가 났다. 그 앱에 유독 그런 이들이 많았던 것인지, 그런 시기여서 그랬던 것인지, 둘 다일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샌가 그 외로움이 화면을 뚫고 나까지 잠식할 것 같아 앱과 서서히 멀어졌다. 비록 함께하기는 어려웠지만, 부디 포틀랜드의 요리사와 슬로울리의 외로운 이들이 모두 평안한 삶을 영위하기를.
어쩌면, 듀오링고의 에드워드 폴과도 초록 부엉이가 입력해 준 응원 문구만 주고받으며 지내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몇 년이고 함께 언어 공부를 해 나가는 사이란 것도 꽤나 괜찮지 않나?
회사 화장실에는 제법 큰 창이 있다. 손을 닦고 나서 무심코 창밖을 보니 일몰의 햇빛이 멀거니 선 아파트 건물들을 감싸안고 있었다. 아파트의 이름이 쓰인 하얀 외벽이 주홍빛 볕을 입어서 포근한 연노랑색으로 물들었다. 병아리색과 상아색 그 사이 어딘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펼쳤을 때 마주하는, 노오랗게 변색된 종이 같은 색깔.
겨울이 살금살금 물러나고 있다.
새해에는 절약을 좀 하면서 저축을 늘려야지, 마음먹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오늘의 집을 들락거리며 예쁜 조명을 구경하고 있다.
대체 세상에는 왜 이렇게 예쁜 것들이 많은 거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반 고흐전 전시회에 다녀왔다. 얼리버드로 구매한 티켓의 날짜가 만료되기 직전에 간신히 갈 수 있었다. 인파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픈하기 삼십분 전에 갔는데도 전시장은 로비에서부터 사람으로 발 디딜 데가 없었다.
이십분 정도 기다려 전시회장에 입장했다. 대학생 시절 유럽 여행을 다니며 고흐를 비롯해 인상파 작품을 잔뜩 봤기 때문에 대단히 영감을 준다거나 새롭고 특별한 작품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진품이어서 그런지 혹은 진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여전히 대단했다.
처음 들어갈 때 적당히 붐비던 전시회장은 점점 사람으로 가득 차 북적이기 시작했다. 흡사 출근길 지하철 같았다. 작품을 보려고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려는 사람, 일행을 찾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쳐댔다. 아무렇지도 않게 밀쳐내고 밀려나는데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의 사람이 없었다. 전시장이 어두웠기 때문에 그런 것에 더더욱 둔감해진 것 같기도 했다.
도쿄에서 단 일 년을 지냈던 것 이외에는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 왔는데도 한국인들의 사회적 거리감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어딘가에서 줄을 설 때에는 뒷사람이 입 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붙어 화들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물건 치우듯 내 등이나 어깨, 혹은 심지어 허리를 움켜잡고 갑자기 홱 밀어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겪는다.
그런 공간에 삼십 분만 머물러도 영혼이 무슨 디멘터한테 빨아먹히기라도 하는 기분이 든다. 거대하고 깜깜한 청소기 같은 것이, 구우우우 소리를 내며 나의 활력과 안위를 죄다 앗아가는 느낌. 간신히 청소기 앞에서 도망쳐도 꽁지 빼고 달아난 의식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제정신을 차리려면 조용하고 마음 편한 공간에서 삼십분은 머물러야 한다.
내가 예민한 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그것을 더 잘 느끼는 것뿐이다. 남들이 전혀 느끼지 못할 리는 없다. 서울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은 예민하고 비관적이며 캘리포니아나 하와이에 사는 사람은 여유 있고 낙관적이라는 등의 이미지가 괜히 생겨나는 게 아니듯이.
나는 평소 10시까지 출근하는데 아주 가끔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요즘은 10시까지 출근한다거나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도 많아졌지만 아직까진 9시 출근이 기본인 회사가 더 많은 것 같다.
9시에 브리핑이 있어 일찍 출근해야 하는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자 이미 지하철이 도착해 있었고 문까지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 찼다는 사실은 내가 지하철을 탈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상관없다는 걸 일찍 깨우치게 된다. 나도 급한 마음에 얼른 뛰었다. 브리핑에 늦을 순 없지.
달려가 올라타려는 순간 내심 깜짝 놀랐다. 터질 듯이 들어찬 차량 내 모든 사람들이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 피로와 비애, 고통 같은 것이 시꺼멓게 뒤엉켜 있었다. 마치 전동차 전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며 설 공간을 확보했고, 간신히 올라타 지하철이 출발했다. 그날 지하철에서 내리기까지 숨을 옥죄어오던 공기를 아직 기억한다. 10시 출근 열차와 다른 점이라면 단 1시간 이르다는 것뿐인데도 그 안에 감도는 불행과 절망의 농도는 몇 배는 더 짙고 두터웠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든 미술관에 가든 사람이 켜켜이 들어찬 이 도시에서, 어쩌면 우리는 어깨를 붙이고 마주 선 채 이따금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