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4)

마지막 주

by 글쓰는비둘기

1월 마지막 주



설 연휴는 조용히 지나갔다. 내 마음은 조용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쉬는 연휴여서 며칠 전부터 계획을 잔뜩 짰다.


집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별러두던 퍼즐을 맞추고, 추천받았던 영화인 ‘먼 훗날 우리’도 보고, 클래스101에서 보고 있던 강의도 완강해야지, 그리고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Atomic Habits도 마저 읽어야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도 반납일이 되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데.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다 했다. 게다가 새로운 중국어 공부용 중드를 시작했고 클래스101 강의도 추가로 들었다. 게임도 했다(The Case of The Golden Idol이라는 추리 게임이다). 넷플릭스에 새로 나온 ‘중증외상센터’도 봤다(웹툰을 좋아했기 때문에 안 볼 수 없었다).


부지런하기 이를 데 없는 연휴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질책했다.


계획한 걸 하는 건 좋은데,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냐? 계획한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넌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 이게 정상인 것 같아? 사람이 그리고 가만히 쉴 줄도 알아야지.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지? 불안하니까 자꾸 뭘 하는 거지?

너 가만히 쉴 줄 모르잖아. 무의미하게 시간 보내는 거 할 줄 모르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쓸데없이 시간 좀 보내고 그래. 무슨 자기계발하려고 태어났냐? 재밌게 살아야지. 기왕 주어진 삶, 좀 즐겁게 지내야지. 그게 사람답게 사는 거지. 안 그래?


머릿속에 질책의 말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면서도 엷은 죄책감이 들었다. 종아리까지 오는 냇물에 다리를 담그고 서 있는 것처럼, 뭔가 잘못 하고 있다는 기분에 애매하게 잠겨 있었다.


부지런해도 죄책감이 들고, 가만히 있어도 죄책감이 들곤 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에 본가에 다녀왔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뒤 동생과 둘만 나와 카페에 갔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십 대 때는 얼굴만 보면 죽도록 싸웠고, 이십 대 때는 나는 대학 생활을 즐기느라, 동생은 고등학생이라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제대로 말을 트기 시작한 것은 내가 이십 대 중후반쯤부터였다.


이십 대가 된 동생은 희한하게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했고 나만큼은 아니었으나 이따금 책도 읽는 녀석이었다. 취미가 비슷하니 말이 잘 통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와 친해져 보고 싶어서 대체 저런 게 뭐가 그리 좋나, 하며 영화와 책에 입문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감동받았다(티는 전혀 내지 않고 아주 덤덤한 척을 했다).


그렇게 나는 동생과 서서히 그러나 깊이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남자 친구와 이별하면 엉엉 울면서 전화해서 와 달라고 할 정도로.


커피를 마시며 부모님 이야기, 최근의 업무 고민거리, 그리고 다시 찾아오곤 하는 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무겁지 않게 나누던 중 문득 동생이 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치유 중이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싶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의사와 상담사 선생님들이 “치료 종료”라고 말하는 순간 내 인생의 치유는 모두 끝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대단한 사람들이 “끝”이라고 말해주니 당연히 끝난 거라고, 그렇게 받아들였나 보다.

그리고 어쨌든 이제는 자살 생각도 웬만하면 들지 않았으며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잘 했으니까. 남들이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도 좋게 풀릴 만한 부분을 금세 찾아내곤 했으니까(영어론 Blessing in disguise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변장한 축복’쯤 된다). 힘들면 명상을 하든 뭘 하든 스스로 다독일 줄도 알았으니까.


그런데 실은 아직 치유가 끝나지 않았던 거다. 정신과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치유는 아닐지라도 평안한 삶을 위한 치유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것이었다. 치유가 끝나지 않았으니 힘든 것도 당연했다. 불안한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까 내가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이어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치유가 덜 돼서 힘든 거였다.


동생에게 스스럼없이, 거의 즉시 대답했다.


“맞아.”


그렇게 입을 떼자 무언가를 하나 내려놓은 듯 가벼워졌다.


우습게도 연휴 내 시달려 온 죄책감과 자기 비난의 말들이 고작 하루 지난 지금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들린다.

나는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고 원래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한다. 계속 배워나가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니까 하는 것뿐인데 왜 쉬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나무라야 했던 걸까? ‘제대로 쉬는’ 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느긋하게 바닷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이탈리아 아저씨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건 자명하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지를 않은 것이다.

내 부지런이 불안에 근거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겠다.

만약에 뭐, 잠재의식 속에 진짜로 불안이 있었고 그게 기어 나온다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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