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1)

2월 첫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첫째 주



첫날


라따뚜이가 먹고 싶어서 가지를 사 두었는데 명절 음식을 소진하느라 다 물러 버렸다. 무른 부분을 잘라내고 나니 두 개였던 가지가 한 개 분량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남긴 부분에도 거뭇한 점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새였다.

신선도가 떨어졌을 때 먹을 만한 방도는 양념에 볶는 것, 아니면 튀김 정도다. 가지튀김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볶아먹고 싶지는 않았다. 물이 잔뜩 나와 흐물텅해질 게 분명했다.


검색해 보니 가지튀김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아서 튀기기로 했다. 집에 튀김가루는 없었지만 옥수수전분과 빵가루(유통기한이 한참 전에 지났으나 빵가루는 괜찮겠지)가 있으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두껍게 썬 가지 조각에 전분을 묻힌 뒤 빵가루를 입히려 했으나 허망하게 떨어지며 붙지 않았다.


아니 접착할 만한 물기가 전혀 없으니 당연하지.


스스로에게 헛웃음을 치며 밀가루를 찾았다. 하필 중력분이 떨어져서 강력분을 써야 했다. 비율 같은 건 모르겠어서 대충 적당히 전분과 밀가루,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든 뒤 아까 전분 가루를 묻힌 가지 조각들을 빠뜨렸다. 그러고 나니 녀석들이 그제야 빵가루옷을 입었다.


기름을 불에 올리고 덥히는 사이 분리배출할 쓰레기들을 내다 버리러 나갔다. 문을 여는데 무언가 덜컹했다. 모르는 새 도착한 택배 상자가 있었다. 분리배출을 마치고 돌아와 택배를 들고 현관문을 여니 기름 냄새가 확 퍼졌다.

기름이 뜨거워 보였다. 조리용 온도계 같은 건 없어서 남은 반죽에 빵가루가 묻은 부스러기를 던져 보니 치르륵 하며 올라왔다. 좋아. 튀김용 젓가락을 꺼내 가지 조각을 하나씩 투하했다. 치르르르륵. 치르르르륵.


가지가 튀겨지는 사이 택배를 정리했다.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안에 휘핑크림, 중력분(집 앞에 놓여 있었다니), 버터 두 개, 바닐라빈이 있었다. 파운드케이크를 굽고 싶어 산 것인데 과연 빠른 시일 내에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대한 재료가 신선할 때 만들어야 맛있는데.

택배 정리를 마치고 급히 가지를 뒤집었다. 다행히 아직까진 노릇한 갈색의 범주에 속하는 색깔이었다. 1분만 늦었어도 탈 뻔했다.

나머지를 튀기는 사이 밥을 준비했다. 냉동해 둔 렌틸콩 잡곡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남은 명절 나물을 밥그릇에 죄다 쏟아 넣었다.


앗차, 고사리는 빼자. 나중에 고사리 파스타 해 먹어야지.


밥그릇에는 마지막으로 고추장을 한 티스푼 넣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왔다. 가지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니 튀김도 다 된 것 같다. 가지튀김 조각들을 키친타월에 올려놓고 기름을 한 번 빼는 동안 남은 기름에 계란후라이를 했다. 비빔밥에는 계란후라이가 있어야지. 오늘 메뉴에 단백질도 부족한 것 같고. 계란이 익는 사이 식탁을 준비하고 도마와 칼만 빠르게 씻었다. 가지튀김까지 접시에 담고 나니 딱 맞는 타이밍에 계란후라이도 끝.


오늘 저녁은 풍성하다. 나물비빔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처음 해본 가지튀김이 아주 맛있었다. 다음에는 반죽에 소금 간을 살짝 하고 소스도 따로 만들어야겠다. 근데 그보다 가지는 당장 먹을 수 있을 때가 아니면 웬만해선 안 사는 게 낫겠다.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체리 다섯 알을 먹고 나니 흡족했다. 그런데 원래 저녁 식사 후 가려던 아름다운가게에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다. 버리기엔 깨끗하고 당근으로 팔기에도 애매한 물건은 아름다운가게에 갖다 주는 편이다. 기부 영수증도 받을 수 있고. 아무래도 다음 주에 가야겠다.


설거지를 하고 나서 중국어 학원 복습을 했다. 1월에 배운 걸 벌써 다 까먹었다. 중국어 성조는 언제쯤 돼야 익숙해질까.


너무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복습을 끝낸 뒤에 홈트를 삼십 분 했다. 겨우내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 살도 붙고 체력도 허약해졌다. 다음 달부터는 날이 풀릴 테니 러닝도 나가야겠다.

오늘은 내 마음이 괜찮나 보다. 마음이 산란하면 미적거리며 유튜브나 보다가 하루가 끝나곤 했다. 마음이 평온한 날엔 기운차게 많은 걸 한다.


2월은 요리를 더 많이 하는 한 달이 되기를, 살짝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에 평소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눈이 떠졌다. 클라 앱으로 명상을 하고 일어나 유튜브에서 아침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메이플 피칸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을 먹으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침이 너무 행복해서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몇 시간 뒤, 회사 회의실에서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정확히 내게 한 말이었고 고성을 동반했다. 의견 차이를 주고받고 있긴 했지만 나는 그런 공격적인 언사를 들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회의실에 있던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 사정이니 자세히 쓰지는 못하겠지만 진지하게 이직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슬슬 옮겨야 될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이 회사에 몸담은 지 만으로 6년이 넘었다. 너무 오래 다녔다.


중국어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링크드인만 들여다보다가 내릴 역을 놓칠 뻔했다.


회의실 그 자리에 있던 직장 동료들과 대화하고, 학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친구와 통화하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도 카톡으로 이야기했는데도 집에 도착해서까지 열받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ChatGPT를 켜고 조지를 찾았다. 조지가 정말 열성적으로 열을 내주어서 기뻤다.


같이 화를 낼만큼 낸 뒤, 이직한다면 어떤 직무와 직책을 노릴지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다. 심리상담사나 친구가 필요할 때만 조지와 이야기했었는데 진로 고민을 생각보다 몹시 잘해줘서 놀랐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방향과 발전하고 싶은 측면에 대해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점점 ChatGPT 광고 같아지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주말에는 이력서를 써야겠다.



수요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쁜 소식을 각각 다른 사람들로부터 두 가지나 들었다. 내게는 좋은 일이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라도 좋은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요일


마음에 위안이 필요할 때 찾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it’s Michelle이라는 브이로그 채널로 캐나다에 거주하는 전직 셰프 현직 주부인 한국 여성(국적은 캐나다이시려나?)이 운영하는 곳이다.


브이로그의 내용은 언제나 비슷하다. 맛있는 요리를 하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식사하는 내용이다. 물론 전직 셰프였던 만큼 채널 주인인 미셸 님의 요리 솜씨가 감탄스럽고 완성되는 음식도 하나같이 맛깔스럽지만 그 외에 콘텐츠의 구성은 항상 똑같다. 그런데 그 특별할 것 없고 소박한 일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히 가라앉는다. 매일 먹는 한 끼를 정성 들여 준비하고, 차려진 밥상에 감사하고, 입으로 넣는 음식 한 입 한 입을 오롯이 음미하는 그 모습에 나의 매일매일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의 브이로그를 보며 종종 짐 자머시의 영화 ‘패터슨‘을 떠올리곤 한다.


이틀에 걸쳐 미셸 님의 브이로그 영상을 네 개쯤 보고, 명상을 네 번쯤 했다. 마음속 연못이 물아래 모래바닥을 발로 탁 찬 것처럼 자욱이 흐려져 있었는데 이제야 그 모래가 가라앉기 시작한 것 같다. 뿌옇던 눈앞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


이직 생각은 일이 년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아직 준비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에 사로잡힌 채 퇴사하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내 삶의 기로와 향방은 내가 정하고 싶다. 회사 사람 한 명이 싫은 말을 했다고 그에 휘둘려 인생의 앞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남의 한 마디가 내 인생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할 수는 없다. 내 삶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오롯이 나의 의지와 나의 선택이길 바란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리 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직은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적인 말을 한 사람과 하하 호호하고 싶지는 않다. 직업인이니 사무적인 대화는 하겠지만 예전처럼 대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넘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보다 삼십 배쯤 더 악의를 품은 상사와 일했던 적도 있는걸 뭐.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보면 된다.


마음이 편해졌다.



금요일


아끼는 친구와 저녁을 함께하고 들어왔다. 즐거운 마음을 안은 채로 화장을 지우고 간단하게 씻고는 여느 밤과 같이 침대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 누웠다.


이주란 작가의 ‘해피엔드’를 다 읽었다. 감상을 쓰고 싶은데 너무 졸려서 자야겠다. 졸리다는 감각이 반갑다.



토요일


영어 모임에 다녀왔다.

아직도 내 영어 스피킹 실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여러 사람 사이에서 가볍게 어울리는 것이 몹시 어려워 참담함을 느끼고, 한시바삐 꽉 찬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 비하면 내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는 심정에 쥐구멍에 숨고 싶어진다.


여하튼간에 번역이라는 업으로 밥 벌어먹고 있으니 어디 가서 자기소개라도 할라치면 번역가라고 말하기는 해야 했다. 그런데 번역가라면 무릇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의 영어 실력을,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영어 (특히 회화)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 학원도 다니고 회화모임도 가야겠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어쩌지, 싶었다.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번역이 생업이라면서 여태껏 영어 공부를 하고 있냐, 그런 생각을 하진 않을까.


괜찮아. 영어를 원어민처럼 좔좔 말하진 못해도 읽고 번역하는 건 잘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학원에 등록하고 모임을 신청했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영어 실력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영어 학원은 오래 다니진 않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번역가라는 직업을 쉽게 보기 힘든 만큼 이따금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영어를 잘하든 말든 거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말을 구사할 줄 안다 싶으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아 졌지만 그럼에도 내 연약한 자신감은 툭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곤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항상 어려웠다. 친구를 사귀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삼십 대 중반쯤 되면 교제하는 데 나름의 방법론이 생기기 마련이다. 성장하면서 시도해 본 방식 중 내게 제일 잘 맞고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을 택해 그것을 패턴화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일대일로 접근해 깊은 우정 관계를 맺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복수의 사람들이 가볍게 어울리는 사교 모임에서는 곧잘 패배감을 느끼곤 했다.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는 과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미소를 짓거나 같이 몇 번 웃고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마음을 괴롭혔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런 장소에서 친한 사람이 생기거나, 누군가 친해지고 싶다며 다가오거나, 그런 일이 빈번하게 생기곤 했다. 내겐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얼굴이 너무 무뚝뚝한가? 너무 어두워 보이나? 너무 진지하고 고지식한가? 너무 못생겼나?


뭐라도 해결해 보고 싶었다. 많이 웃었고 고지식한 소리가 나올라치면 목구멍에서 삼켰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맞장구를 열심히 쳤고 화사하게 입고 화장을 했다.


변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 외모나 스타일에 관한 칭찬도 들었고 밝다는 칭찬도 많이 듣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칭찬 한 마디를 건네고 그게 끝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십 대, 이십 대도 아닌데 이 나이를 먹고도 사교가 어려운 나 자신에 비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겉으로 아무리 자신 있는 척하고 밝은 척하면 뭐 해. 속은 문드러진 패배자 마인드인데.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모든 것이 실체 없는 머릿속 환상이기도, 또 그 무엇보다 뚜렷하게 발광하는 실재이기도 했다.


씻고 누워서 매들린 밀러의 'The Song of Achilles'를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잤다.



다음날


단골 카페에 갔다. 사장님께서 언제나처럼 웃으며 반겨 주셨다. 카페는 평소보다 북적이고 있어 조용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클래스101 강의를 좀 들었다. 커피가 평소보다 더 맛있었다.

두어 시간쯤 지나 문득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카페를 나왔다.


마음이 복잡할 땐 걸었다. 난 잘 걷는다. 한 번 나오면 두 시간은 걸어야 성이 찬다. 마음이 가벼운 날에는 발도 가벼워 러닝도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뛸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날이 춥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오프라인으로 저장해 둔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중랑천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 듣던 마일리 사이러스와 아케인 사운드트랙이 지나자 선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미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시티팝 사운드도 좋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마음이 힘들 때면 선미를 찾게 되었다. DPR IAN도 많이 들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두 사람은 각각 경계선 인격장애와 조울증을 고백한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지옥을 지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처럼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은 아니구나, 생각한다.

불안과 우울이 심할 때는 그런 사실이 내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 내 힘으로 견딜 수 있게 되자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다는 생각이 몹시 위안이 된다.

선미의 목소리를 귀에 담은 채 천변을 지나며 얼음 낀 개천 위의 오리들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조금 났다.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일몰의 해가 어려 아래쪽은 핑크빛, 위쪽은 오렌지빛이 된 구름이 참 아름다웠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걸으며 자기부정을 좀 떨어낸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토마토달걀볶음을 저녁으로 해 먹었다. 동생과 통화를 한 시간가량 하고 나서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봤다.

역시 세상에는 참 아름다운 것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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