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

2월 둘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둘째 주



화요일



회사에서 또 (같은 사람에 의해) 열받는 일이 일어났다.


척 보기에도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았는지 중국어 학원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서 피곤하냐고 물어보셨다. 다른 수강생 분도 왜 지난주에 안 왔냐고 물으시기에(줌으로 참석했다) 별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퇴사욕구를 와르르 털어놓아 버렸다. 다들 잘 들어주셔서 한 차례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에 올라타서는 조지(ChatGPT)에게 화내달라고 해서 같이 화를 내며 돌아왔다.

집에 와서 유튜브로 ‘개빡칠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허공에 쉐도우복싱을 했다. 뭐라도 씹고 싶어서 냉장고 속 하바티 치즈를 꺼내서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영상의 댓글을 읽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웃었다.



수요일


눈이 와서 재택근무를 했다. 번역회사는 전면재택을 하거나 하이브리드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월요일, 금요일이 재택이고 화수목을 출근하는데 날씨에 따라 재택하는 날이 늘어나기도 한다.


점심에는 지난 번에 냉동해두었던 고사리, 그리고 냉장고에 한 팩 남은 낫또를 넣어 고사리 낫또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고사리가 오독오독 씹혀 맛있었다.


저녁에는 퇴근한 뒤 오랜만에 거울 명상을 했다.

거울 명상은 내가 시도해 본 명상 중에 가장 효과가 빠르고 좋은 명상법이다.

아마도 2, 3년 전쯤, 유용한 명상법에 대해 구글링하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아티클에서(이런 정보는 대부분 영문이다) 찾아낸 것인데 글쓴이가 본인은 거울 명상을 15분 하면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진정된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었다.


방법은 별것 없다. 어쩌면 눈을 감고 하는 일반적인 명상보다 더 쉽다. 그냥 전신거울 앞에 앉아서 날 쳐다보는 것이다. 단지 화장할 때나 차림새를 확인할 때처럼 거울 속 나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평가와 비판을 하지 않고 그저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니 쉽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쳐 말하자면 쉽다기보다는 직관적이다. 어쨌든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니까.


처음 거울 명상을 시도했던 2, 3년 전에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어려웠다. 도무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추악해 보였다. 혐오스럽기도 했다.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싫었다.

화장실에서 세수할 때 거울로 얼굴을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 어째선지 마음을 다잡고 온전히 내 앞에 앉아있자니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액션 영화 속에서 멋있는 척하는 남자들처럼 맨손으로 거울을 깨부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붙들고 그 앞에 버틴 채 한참 울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거울 명상은 한 번 할 때마다 내가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체감될 정도로 효과가 엄청났다. 매일 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했다. 거울 속 나를 보는 것이 점점 편안해졌다. 아티클의 저자가 한 말마따나 거울 명상을 하고 나면 마음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언젠가부터는 거울을 보며 약간은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글로 표현하자니 우스울 것 같은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번 생에 입은 몸은 너구나. 너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자세를 하고 있구나. 좀 친해져 보자. 이 몸으로 기왕 받은 삶 잘 살아 보자.“


새삼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으로 울고 웃는지, 무표정할 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무언가를 씹을 때는 얼굴이 어떻게 되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내 얼굴이 어떤 형상을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내 얼굴과 몸에 대해 나는 남보다 아는 것이 없었다. 마치 내 이름을 나는 거의 부를 일이 없는 것처럼.


거울 명상을 하면 뭐랄까, 머릿속에 모호한 이미지와 생각으로만 존재하던 나라는 대상이 실체화되는 느낌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상에 대이란, 흐릿하고 뭉개진 사람 그림자 비슷한 상상도 위에 온갖 형용사(대부분 부정적인 것들)가 검정 텍스트로 덕지덕지 점철된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거울을 봄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비로소 확인하게 된 거다.


“아, 이 녀석 진짜로 살아 숨쉬는 인간이었구나. 그냥 이미지나 상상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사람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그렇지만 거울을 보며 비평가가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피부에 생기가 없어 보이네, 난 코가 너무 큰 것 같아, 자세가 왜 이리 구부정하지, 거북목 너무 심한데 추나 같은 걸 받아봐야 하나, 눈이 좀 더 크면 좋겠다, 트임 수술을 하면 예뻐질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남을 볼 때는 누구든 그저 예쁘게 보이고 멋지게만 보이는데 나를 볼 때는 이리도 혹독한 심사위원이 되다니.


내 외모를 뜯어보며 낱낱이 평가하는 건 아직도 완전히 그만두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여태까지의 거울 명상 중 가장 평가적 발언을(내면으로) 덜 한 날이었다. 거울 명상을 하면서 안 울게 된지 오래되었는데 오늘은 조금 울었다. 고마워서 운 것 같다. 이만큼이 되기까지 버텨준 내게 고마웠다.


신비스럽게도 회사 일과 사람에 대한 고민도 사라졌다.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다시금 돌이켜보고 나니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과 마음을 써 고민할 정도로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자원을 그런 일에 쓸 여력이 없었다.

상대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남들이 어찌 보든 상관이 없어졌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더는 그에 대해 화가 난다거나 사과를 들어야 하는 건 내 쪽인데 왜 내가 먼저 웃으며 손 내밀어야 하지 하는 식의 억울함이 들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거기에만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도 부족할 지경이었으니. 이미 터진 일을 붙잡고 늘어지기에는 내 순간순간이 너무 아까웠다.


명상을 마치고 나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운동도 조금 하고 두 번이나 밀린 중국어학원 복습을 했다.


본가 가족들에게 선물로 보낼 장어를 주문하고(이따금 장어를 보낸다) 대학원에 붙은 동생을 축하하려고 평소 가보고 싶던 레스토랑에 예약을 했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컴퓨터 전원을 끄고 가습기 물을 채웠다. 자기 전에 마실 라벤더 차를 준비했다. 침대 스탠드를 켜고 집안의 불을 다 끈 뒤 누웠다. 오늘의 책은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이다.

내게도, 또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도, 평안한 밤이 되기를.



목요일


고단한 하루였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서 시간이 늦었지만 견과류를 야금야금 먹었다.

그래도 아늑한 내 집에 돌아와 몸을 누일 수 있어 감사하다.



일요일


실은 이번 주 내내 긴 편지를 한 통 쓰고 있었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동생이 대학원에 붙었다. 내달이면 학기를 시작한다. 엄마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본가에 함께 살고 있지 않는 나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대학원에 갔어도 저렇게 좋아했을까? 가나보다, 별 걸 다 하네, 그러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터진 회사 일과 겹쳐서 감정이 증폭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K-장녀로 자라왔다. 내가 온전히 자식이었다기보다는 함께 이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자3 정도가 아니었나, 그런 느낌. 성장과정에 대해 구구절절 적고 싶지는 않다. 여하간 섭섭한 점이 많았다. 나도 응석부리는 어린애처럼 자라고 싶었으니까.


몇 년 전 심리 상담이 종료될 즈음이었다. 마지막 회기였나, 마지막 전 회기였나.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


"저는 OO씨가 꼭 한 번은 부모님한테 편지를 썼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어떤 의도인지는 알았다. 부모를 향한 뒤엉킨 감정 덩어리를 풀어내면 내 과거와 진정한 화해, 융합을 이루고 완전히 치유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부모와 화해하고 하하호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설령 내가 간절히 바란다 해도 나 혼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나의 모든 마음을 드러내며 대화를 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오랫동안 억눌러 온 감정의 덩어리를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살펴 보려는 제스처인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나를 수용하는 일환인 셈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겠지. 성장 과정 중에 품게 된 감정 덩어리란 내 마음의 아주 깊고 큰 부분을 차지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는 도저히 그런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편지 같은 건 전혀 쓰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앉아서 부모에게 편지를 쓴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같이 2시간만 앉아 있어도 가시방석인데 편지라니. 그런 노력을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전 그건 잘 모르겠어요, 했다. 선생님은 그냥 웃으셨던 것 같기도, 그래요,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아마도 3년쯤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야 편지라도 써 볼 마음이 든 거다.

편지를 쓰면서 두어 번 울었다. 계속 분이 올라왔다. 억울하고 화나는 점을 써내려가다 보니 묻어 둔 기억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올라와 새로운 것이 또 기억나고 또 기억나서 점점 길어졌다. 그걸 읽고 또 읽으면서 덧붙이고 덧붙였다. 읽을 때마다 다시 열이 올라왔고 자꾸 화가 났다. 편지를 쓰는 내내 목과 가슴 안쪽이 홧홧했다.

편지를 안 쓰고 있을 때는 조금 미안해졌다. 이렇게 분노 가득한 편지를 읽을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그러나 쓴 것을 다시 보면 또 역시 엄마가 이건 좀 알아야지, 내가 얼마나 죽도록 힘들었는지 좀 알아야지, 싶어졌다.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머릿속으로는 편지를 썼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럴 만도 한 게 엄마는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맨날같이 자살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도 몰랐다. 어디 집 누구는 정신과에 다닌다더라, 무슨 엄청난 비밀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끔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비난했다. 당신 자식도 병원 다녔어요. 하지만 절대 그걸 입밖에 낸 적은 없었다. 난 항상 그들 앞에서 멀쩡한 척, 잘 살고 있는 척을 했다. 난 언제나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 사는 애였다(난 마음이 지옥의 밑바닥을 긁고 있어도 웃으며 멀쩡한 척 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갖고 있다. 병원에 가기까지 더 오래 걸린 이유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편지 한 통을 장장 일주일 가까이 썼다. 마침내 다 썼다, 더 이상은 쓸 게 없다, 싶어지자 동네 도서관에 가 프린트까지 했다. A4 용지 여러 장을 접으니 너무 두꺼워서 맞는 봉투가 없었다. 그래서 갈색 빵 봉투에 넣었다. 영화 속에서 범죄자들이 돈뭉치를 넣어 다니는 것처럼 빵 봉투가 두둑해졌다.

그리고 오늘 엄마를 만났다. 만나자고 해서 만난 것은 아니고 원래 식사하기로 약속한 날이어서 만났다. 나는 빵 봉투에 든 편지를 가방에 넣어둔 채 이걸 언제 줄까 내내 고민했다. 처음엔 만나자마자 주려고, 집에 가서 읽어 봐, 하려고 했는데 못 했다. 그리고는 식사가 끝나면 주려고 했는데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또 그 다음에는 카페에 가서 주려고 했지만 그때쯤 되자 엄마가 불쌍해졌다.


엄마는 이제 너무 작았다. 너무 늙고 작고 약했다. 원래도 큰 편은 아니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작아졌다. 이렇게 조그만 엄마를 내 편지에 꾹꾹 담은 분노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으려니 불쌍했다. 엄마는 분명 그 감정의 폭풍에 휘말려 어쩔 줄을 몰라할 것이었다. 그런 걸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야 내가 그토록 분을 눌러안고 있을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편지를 줄 수가 없었다.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편지를 다음 번에 줄까? 아니면 동생한테 전해 달라고 할까? 직접 주는 것보단 그게 쉬울 텐데. 역시 그게 좋으려나. 달리며 흔들흔들하는 버스 안에서 나도 흔들흔들거리며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정했다.


그냥 주지 말자.


어차피 사람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쏟아내고 싶은 감정을 다 쏟아내며 사는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다. 부모니까 응석을 부릴 수도 있겠지만...부모라 해도 모든 말을 다 할 필요는 없기도 했다.

게다가 어린 시절에 생긴 결핍 몇 개쯤은 삶의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결핍에 잡아먹히고 있을 때는 그 점을 보지 못했지만 거기서 떨어져 나와 보니 그랬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결핍이 있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은가. '열두 발자국'에서 정재승 교수님도 그랬다. 결핍 덕분에 사람은 더 노력하며 살 동기를 얻는다고. 결핍이 없는 사람은 노력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그러니까 그냥 결핍 몇 개 있는 사람으로 그냥 살자고, 당신 때문에 결핍이 생겼다는 말을 구태여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잘 살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잘 살 수도 있다.


집에 돌아와서는 화장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치고는 내게 주는 보상으로 커피를 또 한 잔 마셨다.

오늘은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조리식품으로 파는 닭백숙죽을 데워 저녁을 간단히 먹고 산책을 나갔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들었다. 또 눈물이 조금 났다.


작년 가을 이후로 소설을 한 자도 쓰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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