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세밀화 강좌를 통해 배운 자기 위로
작년에 수목원에서 진행하는 식물 세밀화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5개월 정도를 매주 월요일에 가서 2시간 남짓을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칭찬을 아주 많이 해주시는 분이었다. 선 하나만 그어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회사를 마치고 수목원까지 가서 밤 9시까지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하기로 했으니 하는 것이 맞았다. 중요하긴 하지만 지겨운 선긋기가 지나고, 처음으로 그려본 것은 체리였다. 선생님은 까맣게 익은 체리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게 무슨 색으로 보이냐고 물으셨다. 사진 속 체리는 아주 잘 익어서 검정에 가까운 꽤 짙은 갈색이었다. 나는 진한 갈색이라고 답했지만 선생님은 진한 갈색처럼 보이지만 3가지의 색이 섞여 이런 색으로 보이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진한 갈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색으로만 칠하면 아무도 그것을 체리라고 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제일 기본 바탕이 되는 색을 알아보고 그 색을 칠한 뒤 그 위에 색을 더하고 마지막으로 또 색을 더해 사진 속 체리가 가진 색을 구현해야 한다고 하셨다.
난 그 순간 식물 세밀화가 좋아졌다. 내가 겪은 힘들고 아린 일은 어두운 색으로, 기쁘고 웃음이 나는 일은 밝은 색이 되어 나라는 사람의 색이 된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일은 나를 그 일을 겪지 않은 나와 겪은 내가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일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슬펐던 일이 좀 덜 슬퍼졌다.
내가 마지막에 완성한 그림은 동백이었다. 식물세밀화는 식물의 일대기가 한 그림 안에 있는 것이 특징이라 동백의 꽃이 핀 가지와 꽃봉오리가 달린 가지가 같이 붙어 있는 것을 큰 그림으로 그리고, 동백의 열매를 빈 공간에 배치하여 그렸다. 왜 동백을 택했냐면, 1~2년 전쯤 가족끼리 제주도에 동백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아직 겨울이라 눈이 펑펑 왔었다. 눈이 굉장히 많이 와서 못 갈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도착해 찬란하게 반짝이는 진분홍색의 동백을 끊임없이 보았다. 그때 좋아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마음이 어지러운 일이 생기면 꽃이나 열매 그림을 그린다. 이 일 또한 나의 일부가 되어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