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뒤 지옥의 시간들.
우리나라의 11월 이벤트는 수능이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그날.
수능...
내게 수능이 끝난 뒤 두 달간은 지옥 같았다.
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재수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과는,
내가 입시를 하던 시절에는 전국 대학 중 11곳 있었다. 그리고 내 성적으로 입학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정말 슬픈 사실은 내가 공부를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 엄마도 자신이 기억하는 내 고등학교 시절 모습은 책상에 앉아있는 뒷모습뿐이라고 했다.
정시를 준비하던 나는 수능을 치고 직감했다.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말 그대로 "망했다!"
수능이 끝난 날, 아는 사람들로부터 축하 연락이 왔다.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는 속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괜찮은 척했다.
가채점을 해본 날, 펑펑 울다가 잠이 들었다.
이건 내 노력에 대한 세상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이 꼭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였다.
어린 날의 나는 그 쓰라린 진리를 처음 체감했다.
그건 정말이지 최악의 절망이었다.
서른이 넘어 떠올려도 그 감정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수능점수가 다가 아니고, 세상은 만 갈래의 길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어도 수능 실패는 끔찍한 악몽이 맞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딱 일주일을 쉬고 혼자 도서관에 수능공부를 하러 다녔다.
부모님께는 일절 상의하지 않고 혼자 그렇게 선택했다.
몰래 학교와 도서관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말하기 두려웠다.
그 과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결단은 내렸지만, 부모님께 말하는 것은 두려웠다.
고3은 나만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도 입시를 한 번 더 치르는 일이었다.
정말 입이 안 떨어졌지만,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에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겨우 재수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웠던 것 같다.
나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결심을 꺾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나는 엄마가 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지만, 그땐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무렇게나 살기 싫었다. 난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자격이 있다고.
하지만 집안형편이 이제 좋아지길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내 재수는 감당하기 힘든 투자였을 것이었다.
그 당시, 재수학원비만 한 달에 100만 원이 넘었다. 특강비나 교재비는 따로였다. 식비나 교통비를 포함하면 엄마가 버는 한 달 월급을 그대로 나한테 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엄마와 큰 싸움 후 며칠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고집도 참 지독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가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재수를 허락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아빠와 상의도 끝냈다고 했다.
대신 힘들어서 중간에 관둔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다시 입시생의 신분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두 번째 시작이었다.
수능이 끝난 해의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모든 것이 결정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