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해도 똑같을 거야, 넌 안될 거야. 그런 말들 속에서...
"재수해도 똑같아. 재수하면 성적이 무조건 오르는 줄 알아? 성적 오르는 사람은 10프로야, 10프로. 아깝게 최저등급 미끄러진 학생이나, 1등급 차이로 대학 떨어진 학생들이 하는 거야. 차라리 일단 대학 가서 편입을 해. 전과를 하든."
수능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오던 선생님들의 말들을 종합하면 이랬다.
"지금은 자존심 상하고 충격받아서 그러는 거야."
재수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입시 담당 선생님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재수를 말렸다.
나는 이과였고, 국어‧수학‧영어 등급이 6, 5, 4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돼서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입시를 한 번 더 도전하기엔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학생… 내 위치는 그 정도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주변의 말들은 틀리지 않았다.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만 보고 성적이 나쁘면 재수를 하면 안 되는 걸까? 노력한 시간이나 태도는 재수 결정에 가치가 없어 보였다.
대체 어떤 사람이 재수를 '기꺼이'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미 결정해 버렸다.
저는 그냥 합니다!
그 치기 어린 마음으로 모든 조언을 밀어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깡이었다.
엄마는 재수학원을 가라고 했다.
독학 재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사실 나는 고3이 끝날 때까지 학원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사교육이라 해봐야 수학 과외 몇 달, 학교 특강 정도가 전부였다.
재수학원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정이 계속되었다. 주 5일 간 오후 6시까지 수업이 있고, 저녁식사 이후엔 자율학습시간이었다.
토요일은 자율학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등원하면 되는 날이었다.
내가 학원을 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그 비싼 돈을 주고 다녀도 될까?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아주 단호한 태도로 학원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수도 고집해서 하는 마당에, 방식까지 내 맘대로 할 순 없었다.
여러 학원을 둘러보고 하나를 결정한 뒤, 개강 첫날부터 바로 출석했다.
우리 집에서 학원은 집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1시간 반을 가야 했다. 왕복 세 시간 거리였다.
그 학원은 이과, 문과가 수준별로 나뉘어 총 여섯 개 반이 있었고, 건물 전체를 쓰고 있었다.
맨 아래층엔 데스크, 맨 위층엔 급식실이 있었다.
수능이 끝난 직후에는 함께 재수를 결심했던 친구들도 몇 있었지만, 정시 입시까지 끝나고 남은 건 A와 B 뿐이었다.
둘 다 독학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재수가 끝날 때까지 A는 독학을 고수했고, B는 잠깐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 몇 달 다니다가, 통학이 힘들고 시간이 아깝다며 다시 독학 재수로 돌아갔다.
나는… 주 6일, 열 달 넘게 학원을 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엄마는 늘 그렇게 책임감을 가르쳤다.
"네가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해!"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
그것 때문에, 그것 덕분에,
그해 내 재수는 끝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