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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Aug 25. 2022

유모 Noor

수다스러운 미국인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개인사를 나누고 나면 종종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소원을 조심해서 빌어라.”라는 조언을 농담처럼 던진다. 좀 더 해석하면 말이나 생각이 씨가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인데 20여 년 전 철없던 나는 파리가 죽도록 보고 싶었고 살도록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허황된 생각과 막연한 동경심이 현실이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믿지 않았다. 나만의 판타지이기에 구체적 계획이나 실현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없었다. 빛바랜 첫사랑처럼 가슴 한켠에 묻고 아쉬움조차 잊었다.      


유학생의 때를 벗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내 청춘의 염원의 대상인 파리는 해묵은 풋사랑이 되었다. 어쩌다 친구 따라 놀러 가게 되면 읽지도 못하는 꼬부랑글씨 와인을 진탕 마시고 귀국행 비행기에선 내 존재의 이유와 정당성에 불신만 키우게 하는 방탕한 목적지일 뿐이었다. 속살을 모두 훑고 난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처음 만날 때의 설렘과 경외감이 모두 사라지고 원초적인 욕구 해소의 대상이 되는 별 볼일 없는 관계가 나와 파리의 관계였다.       


내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와 장거리를 연애를 장기간 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기대가 없었던 나는 파리 생활을 기대하지 않았다. 파리와 나는 이미 볼장 다 본 사이였기에 마흔 줄에 굳이 말 안 통하고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도시에 살고 싶은 생각이 맹세코 단 1도 없었다. 그래서 남친이 파리에 정식으로 초대했을 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드디어 신이 노망 나서 내 인생에도 장난질을 하네.'

함부로 소원을 말한 나의 경망한 주둥이와 뇌세포를 원망했다.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20년 전 소원을 이제야 발현시키는 신은 직무 유기범이자 악성 채무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리에 도착했다. 이미 달달한 파리의 낭만은 예전 남친과 탕진한 지 오래 이기에 현남친님과는 그다지 할 게 없었다. 짠돌이 구두쇠 남친 성향 때문에 어딜 가자고 해도 핀잔이나 무안만 들을 것도 뻔했기에 그냥 집에서 뒹구는 게 제일 속편 했다. 그의 악명 높은 패션 감각 때문에 사실 현남친님과는 어딜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오늘 Noor(누르)가 올 거야. 누르는 나 어렸을 때부터 키워 준 유모인데 가끔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셔. 모 부탁할 거 있어?

- 뭐? 유모라고?

‘지금 네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그럼 40년 넘는 질긴 인연이잖아. 그 장구한 역사 동안 키워준 분을 어떻게 내가 일을 시켜?'

- 그래 유모. 알잖아. 우리 어머니가 유별난 거, Noor는 지금도 우리 어머니 집에서 일하고 시간 날 때만 가끔 오시는 거야.

- 내가 청소는 그래도 좀 하겠는데 다림질하는 게 제일 싫어. 밀린 셔츠 많으니까 그럼 그것만 부탁해도 될까?

- 정말 좋은 분이셔. 부탁하면 다 들어 주실 거야. 누르의 요리는 정말 기가 막혀.

  그녀는 차라리 셰프가 됐어야 했어. 운 좋으면 너도 언젠가 맛볼 수 있을 거야.


바삐 출근 준비를 하는 남친님이 갑자기 머뭇 거린다.      

- 흠.... 이제 집안에 소문나겠다.

- 무슨 소문?

- 너의 존재가 파리에 있다는 소문

파리에 오긴 했지만 아직 정립되지 않은 관계 때문에 서로 공식적인 대외 행사는 피하고 있었다. 내가 이 고집 센 프렌치들 등살에 버틸 수 있을지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이 남자랑은 정말 백년해로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남친님의 유모 Noor (누르)는 오전 11시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모로코인 이민 1.5세인 그녀는 부모님을 따라 파리에 왔고 평생을 무슬림으로 살고 있다.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현관문을 열어주는 남친은 사려 깊게 그녀를 맞았다. 가정교육 잘 받은 신사답게 누르가 건네는 히잡과 외투를 벽에 걸며 정식으로 나를 자신의 유모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어색한 눈빛 교환을 하며 탐색전에 들어갔다. 설핏 집안 인사 예비전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짝 딸 막한 키에 동그란 얼굴을 한 누르는 초롱초롱한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반겼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누군지 궁금해 죽겠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묻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았지만 언어의 장벽은 두껍고 높기만 했다. 프랑스의 기본 인사말도 익혀두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남친은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부탁할 집안일을 알려 주었다. 무거운 다리미대를 직접 꺼내다 주며 누르가 편히 일할 수 있게 돕는 세심함은 나까지 감동시켰다. 아무리 집안일을 도와주러 왔다고 해도 집안을 찾은 손님이니 음료를 대접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그녀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유자차를 접대하자 서툰 영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고?

- Yes, Yes.

쉬운 불어 몇 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불어로 대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머리속에서는 열심히 한국어와 영어 단어가 오가고 불어 단어까지는 연결시켰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 파리, 여기, 처음?

- 아니요 5번.

쌍크(Cinq 숫자 5라는 불어)가 기억이 안 나서 얼른 손가락을 펴 보였고 누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 들었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우리는 바디 랭귀지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통하는 사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르는 슬쩍 서재에서 일하는 남친님의 존재를 확인하더니 손가락 8개를 펴 보인다.

- 내가 쟤를 8살 때부터 키웠어. 그때는 요렇게 작았어

용케 알아들은 표시로 나는 까르르 웃음으로 화답했다.


-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잠을 안 자고 매일 책을 읽었어.

’그 버릇은 여전하네. 나보고 책 안 읽는다고 매일 구박하는데 ‘

- 네 남친은 정말 예의 바르고 착해. 여기가 정말 따뜻해

누르는 마치 자기 아들 자랑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담고선 가슴을 가리켰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나는 유모의 정확한 지위를 모른다. 단순히 직업적 계약관계인지 가족의 또 다른 구성원인지 엄마 손에서만 자란 나는 그 단어가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모로칸 특유의 낙천성과 사교성이 누르의 입을 바쁘게 한다. 내가 눈치로 알아듣는 것을 간파한 누르는 본격적으로 남친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들 자랑의 레파토리는 한국 문화와도 꼭 닮아서 새로울 것 하나 없었다. 나의 짧은 불어 실력으론 고개만 까딱 거리며 긍정밖에 할 수 없었다.

- 매일 전교 1등 했어. 머리가 어찌나 좋고 책만 보는지 이 동네에서 제일 똑똑해.

- 예의는 얼마나 발렀는지 아니? 지적받은 잘못은 두 번 다시 안 해. 남한테 듣기 싫은 말도 안 하고

  지 아비를 꼭 닮았어. 쟤 친아버지가 그렇게 점 많고 착해. 양아버지도 있는데 그 분도 완벽한 젠틀맨이야. 아버지는 만나 봤어?

- 아뇨 아직이요.

- 아버지가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아버지가 널 정말 예뻐할 거야.

- 설마요

- 내가 이 집에서 40년을 살았어. 척 보면 다 알아.

수줍어 하는 내 모습에 누르는 무당이 빙의한 듯 호언했다. 그녀의 끊임없는 수다 보따리에 신이 난 나도 열심히 취임 새를 넣자 누르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신나서 떠드는 두 중년 여자의 호들갑이 남친을 주방으로 불러들였다.      


- 사격 중지. 내 흉보는 거 다 알아. 누르, 이제 그만하세요.  

참다못한 남친의 등장에 우리는 훔쳐 먹다 들킨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잘 어우러지는 우리 모습에 안심한 남친님의 얼굴은 그다지 엄하지 않았다. 우리의 작은 범죄를 들키긴 했지만 목청을 가다듬고 딴청을 부리는 것으로 그의 추궁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40년 남의집 살이 삶만큼 쌓인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었고 한 번 풀리면 닫힐 수가 없는 요술 보따리다. 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자기 이야기에 심취한 누르는 나에게 해 줄 말이 너무나 많았다. 어느덧 모든 일을 끝낸 누르가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 파리에 온걸 환영해.

그녀는 진심 어린 환영사를 건네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정 많은 그녀의 마음이 한 없이 따뜻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유모의 지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누르는 이 집안의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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