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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Aug 24. 2022

다마스커스의 사모곡

<정말 갈 거야?>

<그럼 꼭 가야지. 이미 운전사도 찾았고 접선책도 구했어>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하겠지. 그래도 가야지. 가족이니까>

<돌아올 수는 있는거야?>

<모르지....인샬라, 신의 뜻에 맡겨야지>      

무거운 결론에 목이 잠겼다. 어색한 분위기에 나와 피터는 말 없이 술잔을 홀짝 거렸다. 평일의 호텔 바는 지나치게 조용했고 가족의 생사 문제를 서슴없이 이야기 하기엔 너무나 보는 눈이 많았다.      


<그럼 행운을 빌께. 꼭 다시 연락 할꺼지?>

<그럼. 무슨일이 있어도 꼭 연락할거야. 걱정마>      

피터가 경쾌하게 답했지만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 고고미술학자인 그는 자신의 조국 시리아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발굴하며 고대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조상들의 모습을 깊숙이 묻힌 흙속에서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보람이 있긴 하지만 늘 부족했단다. 바래고 퇴화된 조각품들은 찬란한 역사의 비밀을 담았지만 색을 잃은 모습은 생기 없는 골동품일 뿐이었다. 가난하고 어지러운 자신의 고국이지만 한 때는 가장 강한 강대국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 그는 자신의 조각품을 만들고 채색을 시작했다. 약 5천년전의 조각상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그의 연구와 작품은 대영 박물관의 관심을 샀고 유망한 아티스트로서의 삶도 보장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는 포화속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한다. 갑자기 발발한 전쟁은 시리아를 살아있는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고 팔순이 다된 노모는 물과 전기도 없이 혼자라고 했다. 특히나 자기네 가족은 다마스쿠스에서도 몇 안남은 카톨릭 집안이기에 전선이 더 깊어지면 자신의 노모가 당할 고통은 상상할수도 없다고 한다. 참혹한 전쟁에 대한 부연 설명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의 안위가 걱정 되었고 그의 위험한 여정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쟁중이라 비행노선과 국경이 막혔기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까운 레바논 근처로 이동한 다음 접선책을 통해 3일 밤낮을 걸어야 한단다. 성인 남자가 쉴새 없이 쏟아지는 총알과 포탄속을 요령껏 피하는 것은 어쩜 영화속 주인공처럼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80살의 노모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제임스 본드의 엄마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모질게 들리겠지만 나는 피터와의 진심 어린 우정으로 ‘울엄마 탈출작전’의 불가능성을 상기 시켰다.   


<인간은 죽고 죽이는 끔찍한 존재야. 아이러니는 그만큼 살겠다는 생명력도 끔찍할 정도로 강해. 걱정말라니까>      

피터는 호기롭게 장담하며 작별을 고했다. 일주일이면 돌아올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것도 있지 않았다. 친구의 삶과 죽음이라는 중대한 문제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관자로서 드는 죄책감이 나를 무겁게 눌렀지만 죽음의 행진이 될 수 있는 그 길을 따라 나설 용기도 말릴 권리도 내겐 없었다.      


<딩동>

한가한 오후 갑자기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피터가 다마스커스에 잘 도착했다며 문자와 인증사진을 보내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폐허 위에 자신의 분신인 형체가 또렷한 조각상을 올려 놓고 잘 있단다. 다행스런 소식에 안도했지만 전쟁 속 인증샷은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심지어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인터넷이 된다니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다시 한번 남의 불행에 초연한 방관자인 내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며 조심히 돌아 오라고 답장을 했다.          


며칠후 예상보다 일찍 돌아 온 피터가 지난번에 만난 호텔에서 만나자며 전화를 했다. 반가움에 그를 찾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잘 살아 있구나. 괜찮아? 어머님은?>

<..... 다마스커스에 ....떠나지 않겠대. 빌어먹을!!!>

<내가 죽을 고생해서 찾아 갔는데 오히려 나를 쫓아 냈어.

이 나이에 외국 가서 살아서 무엇하겠냐며 그냥 내 나라에서 죽겠대.

망할 노인네가 고집만 늘어서 들어 먹질 않아.>

피터의 전화를 받고 그의 금의환향이나 ‘시리안 효자의 극적 상봉기’를 기대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의 작은 속알머리로는 그녀가 전쟁통에서 구세주처럼 나타난 아들을 두팔 벌려 환영할줄 알았다. 어미의 들끓는 모정을 모르는 나는 그녀가 주저 없이 아들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설 줄 알았다. 효자 아들 피터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거의 전재산을 털어서 탈출 브로커를 구했고 가짜 여권도 이미 만들어 둔 상태였다. 무사히 런던에만 도착하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냥 떠났어?>

<그럼 어떻해? 그녀는 곧 죽을거야.>       

피터는 오열에 가까운 탄식을 날렸다. 다마스커스엔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기 위한 조건과 시스템이 예전에 모두 파괴 되었다. 인도적 차원으로 하루에 한시간 남짓 공급되던 전기랑 수도는 얼마전부터 모두 끊겼다. 전쟁의 공포는 죽음만이 아니다. 생과 사가 갈리는 아비규환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모두 잃어도 살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죽음의 진짜 공포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내리는 건 삶의 축복이 아니라 삶의 형벌이다. 전쟁의 광기는 내 옆의 이웃을 총을 겨눈 적보다 더 잔혹한 밀고자로 만든다. 그래도 운 좋게 살아지면 살기 위해 구해야하는 최소한의 식량과 식수를 악마보다 탐욕스러운 암시장 매매꾼들의 자비에 맡겨야 한다. 나날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가격은 곧 피터 가족의 모든 재산을 앗아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계속 오를 것이다.      


80의 노모는 3일 밤낮을 걸어 온 아들에게 물 한잔 대접하지 못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폐헉 속에서 숨죽여 울며 아들에게 빨리 떠나라고만 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장례는 필요 없으니 절대로 되돌아 오지 말라는 유언 같은 다짐을 받았다.  


내가 아무리 어미의 정을 모른다 해도 평생 아들을 낳아 기른 다마스커스의 그 어머니는 고집 때문에 폐허에 남은게 아닐거다.

불안전한 미래의 기약보다 아들의 무사생환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기에

그녀는 그 험한길을 아들 혼자 돌려 보냈다.      

전쟁중이 아니었다면 분명 자신의 아들이 잘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따라 나섰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일지 타살일지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신의 손에 후회 없이 맡겼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눈물이..... 사랑이.....

그리고 또 헌신이.....  

그렇게 가끔 나에게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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