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15년 만에 찾은 수영장

by 종말

15년이 지나 다시 찾은 수영장은 군데군데 그때의 기억이 묻어있었다.


수영장이 보이는 창을 지나 들어가면 락커들이 줄을 서있고, 길게 늘어선 락커를 따라가다 보면 탈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익숙한 길을 따라 탈의실에 들어가 드라이어가 줄줄이 놓여있는 화장대를 보자마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수영이 끝나고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던 날. 수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엄마가 탈의실로 내려와 내 머리를 말려주었다. 나는 아직 젖어있는 반대편 머리끝을 롤빗으로 돌돌 감쌌다 풀었다 장난을 치다 일을 쳤다. 롤빗에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엉켜있는 모습을 보고 말없이 빗을 가져간 엄마는 초조한 눈빛으로 시계와 내 머리카락을 번갈아 보다 나에게 호통을 쳤다. 안 그래도 바빠죽겠구먼! 결국 엄마의 손에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엉엉 울던 그런 기억이. 돌이켜보니 그저 웃긴 에피소드인데, 그땐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샤워실은 처음 온 것처럼 낯설었지만, 수영장에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구조에 반가운 마음이 마구 일었다. 유아풀에 걸터앉아 수업이 시작하는 아홉 시 정각을 기다리며 수영장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다섯 개의 레인과 레인 위 깃발. 키판과 폴부이가 놓인 선반, 그 옆에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태워주시던 넓은 판이 세워져 있는 것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단체수업은 처음이라 그런지 낯선 것도 많았다. 유아풀에 몸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은 아홉 시 정각이 되자 하나둘 수영장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수영장 가운데 선 선생님이 준비 체조를 시작했고, 나도 눈치껏 동작을 따라 했다. "오늘 처음 온 분 계세요?" 하는 선생님의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는 물음에 아직 접영 발차기까지만 할 수 있다고 답하자 초급반을 배정받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홉 시 타임이라 그런지 어르신들도 많았다. 원래부터 다니던 분들인지 익숙한 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저도 여기 처음 아니에요. 예전에, 진짜 한 15년 전쯤에 이 수영장에 다녔었는데요..' 하고 털어놓고 싶은 걸 아주 간신히 참았다. 두리번거리다 앞뒤 사람들과 자꾸 눈이 마주쳐 몇 차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오전수영반은 초급 레인 하나, 중급 레인 두 개, 상급 레인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지금의) 상급레인에서 수영했었는데, 하며 그쪽을 힐끔댔다. 나는 괜히 다른 반 선생님들 얼굴을 살펴봤지만 당연하게도 15년 전에 날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안 계셨다. 수영이 끝나고 집에 가니 엄마도 그 선생님은 안 계셔? 하고 물었다. 그분은 어디로 가셨을까, 아직도 수영강사를 하고 계실까? 하는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수업이 끝난 뒤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탈의실을 나섰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수영장 샤워는 스피드가 생명 이랬는데,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샤워를 마쳤다. 머리뿌리만 대강 말리고 나니 벌써 열 시 반이었다. 간당간당하게 열한 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수영장 다녀오는데 장장 세 시간이나 걸린다니,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확인하며 수영장 건물을 나서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문득 수영이 끝나고 종종 사 먹곤 했던 간식이 떠올랐다. 수영장 매점에서 미니약과를 팔았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 한껏 진을 뺀 뒤 당충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혀끝이 짜릿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 가보니, 매점은 온데간데없고 수영이 끝난 아주머니들만 모여 앉아계셨다. 혹 다른 곳으로 옮겼을까 싶어 안내데스크에 여쭤봤지만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내 기억과는 달라진 모습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그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을 수도, 매점에서 약과를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섭섭하면서도, 아직 젖어있는 머리에서 나는 수영장 냄새에 가슴이 두근댔다. 이젠 접영발차기에 머물러있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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