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진)
나는 타고난 맥시멀리스트다. 주변에 한두 명쯤 있지 않은가, 오래된 물건 쟁여두고 쓸모는 없지만 보기에는 좋은 소위 '예쁜 쓰레기'를 모아두는 사람.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내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때의 시절과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물건을 차마 버릴 수는 없다. 또 이 물건이 언젠가 분명히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이제껏 6살에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고장 난 스피커 인형, 대학 입시 때 공부했던 문제집, 심지어는 학교 다닐 때도 잘 보지 않는 부도책들까지 남아있었다. 그런 나에게 청소는 '쓰레기'인 쓰레기를 버리고 쌓인 먼지를 쓸고 닦는 정도의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장 5시간에 걸친 대청소를 했다. 공간은 그 공간의 주인을 대변한다는 말이 나를 일으켰다. 예전에는 들어도 별 감흥 없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아 불편하게 하더라. 수많은 물건들에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어질러진 공간을, 오랜 기간 손때 묻지 않고 방치된 물건들과 과하게 부여된 의미들로 가득한 방을, 깨끗하게 비웠다.
비록 아직까지도 미련이 남은 책과 추억 몇몇은 남아있지만 꽤나 만족스럽다. 넓은 책상이 생겼다. 앞에 노트북을 놓았는데도 일기 쓸 공간이 넉넉하다. 책상이 너무 좁아 '새로 사야 하나', '넓은 책상 둘 공간도 없는데 이사 가고 싶다'하는 불평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내가 불평하던 좁은 책상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넓은 책상은 이미 내게 있었고 내게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단 책상뿐이 아닐 것이다. 분명 갖지 못해 불평하고 외부에서 구하려 애쓰지만 사실은 이미 가진 것이 있을 것이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닌 주어진 것에 대한 만족, 대청소가 준 교훈이다.
싹 버리고 비워봐야 어떤 게 진짜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구분할 수 있다며 미니멀리즘을 추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막상 버렸는데 나중에 필요해지면 어떡해?' 하는 걱정에 반문했는데 대청소를 마친 지 한 달 즈음 지난 지금, 어떤 물건을 버렸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했을 땐 그것들까지 굳이 보살피며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했던 것 같다. 비우고 나니 정말 필요한 것에만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됐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비워진 공간엔 더 좋은 것들이 나의 공간을 새로이 채워주고 있다.
전에는 빽빽한 책장에 차마 다 들어가지 못 한 책들이 책상 위에 줄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딱 읽고 있는 책들만 올라와 있는 넓은 책상이 너무도 좋다. 언제든 새로운 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듬성듬성한 책장도 마음에 든다. 많이 갖고 있어야 행복할 줄 알았는데 더 좋은 것을 맞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끝판왕 맥시멀리스트였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글까지 쓰게 되다니. 아직 미니멀리스트까지는 한참이지만 미니멀리스트(진) 정도까지는 온 것 같다.
미니멀리즘을 한 번쯤 꿈꿔본 맥시멀리스트들에게, 그 물건을 버리는 건 생각보다 아깝지 않으며 넉넉한 공간은 생각보다 공허하지 않고 대청소는 생각보다 많은 교훈을 남긴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